성공회 질문 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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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상제사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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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준님의 질문 2

대한성공회에서는 ‘그리스도교인의 제사문제에 대하여’ 어떻게 가르치고 있는 것인지, 사목규정 같은 것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저는 천주교의 상장례 관련 부분의 신학적 토착화 노력은 인정합니다만 신자들의 ‘대사(면죄)’문제와 관련하여 연옥설을 이해하기 어렵고 개신교에서 권하는 ‘추모예배’도 그 명칭에서 알 수 있듯 도대체 예배는 주님께 드리는 것인데 ‘추모’는 죽은 이이고 또 돌아가신 분이 안 믿는 조상이신데 성경에는 지옥간다 했으니걱정은 되는데(?) 죽은이들 위해서는 기도하지 말라 그러고…이렇게 신학적 기반과 성찰이 없는 것도 안타깝고 헷갈립니다. 성공회의 입장은 어떤지요?

답변의 시도 2

성공회는 우리 문화의 전통적인 “제사”를 존중하고 있으며, 그 의미를 교회 예배 안에서도 함께 나누려고 합니다. 그러나 그 모든 종교적인 의미를 받아들인다는 것은 아닙니다. 예를 들어 우리 문화의 제사는 돌아가신 분이 하나의 “신”이 되어 우리에게 은덕을 베풀어준다는 사고가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전통적인 제사가 “조상에 대한 숭배”가 되는 것을 거절합니다. 그러나 제사의 주된 목적은 실제로 돌아가신 분이 자손들에게 베푸셨던 은혜를 기억하고, 추모하며, 이를 계기로 다시 가족 공동체의 친교와 화합을 이루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공회는 이런 점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전통적인 제사의 형식이든, 다른 추모 예배의 형식이든 구별하지 않고 인정합니다. 다만 앞서 말씀 드린 종교적인 의미에 대해서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성공회에서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제사”는 우리를 낳고 길러주신 조상님의 사랑과 은혜를 기억하고, 이를 감사하면서, 역시 이런 조상의 보살핌을 허락해 주신 하느님께 감사하는 예배 행위라고 할 수 있습니다. 대한성공회는 이에 따라 전통적인 양식의 제사를 적용한 추모 예식과 제사 형식과는 전혀 다른 추모 예식을 함께 마련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성공회는 교회 전통을 따라서 조상의 추모 당일에 성당에 가족이 모두 모여서 성찬례(미사)를 드리고, 그 예배 안에서 돌아가신 분을 기억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연옥설과 죽은 이들을 위한 기도에 대한 문제는 이 게시판 다른 곳에서 다룬 적이 있습니다. 아래 검색창에서 검색 명령어로 그 답변을 찾아볼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Written by skhfaq

2003년 10월 6일 at 1:11 pm

연옥과 성도들의 상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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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 싸이트에 들어가보니 천국과 지옥사이에 연옥이 있어 기도를 많이 해야한다고 저 나름대로 이해를 했읍니다..
연옥에 대해 신부님의 견해를 듣고싶습니다..(클라라)

+ 주님의 평화

좋은 질문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지만 이 질문에 제대로 된 답변을 할 수 있을지 염려가 되는군요.

연옥 교리라는 문제는 논란이 많습니다.
하지만 성공회는 대부분 천주교에서 말하는 연옥교리는 인정하지 않습니다. 공식적으로는 그렇지요. 어떤 이유에서든 이 연옥교리에 대해서 편안함을 느끼는 분도 있을 줄 압니다.

논란이 많은 것은 성서적인 근거가 빈약하기 때문이요, 한편으로는 이런 중간적인 요소에 대한 사목적인 필요 때문이라고 봅니다.

이 문제에 접근하는 성공회의 태도는 두 가지라고 할 수 있는데, 그 근거를 그리스도교 신앙인이라면 모두 알고 있는 신앙신조인 사도신경에서 찾고 있습니다.

1. “음간”의 문제

우선 사도신경에서 “음간에 내리사”라는 부분이 있습니다. 이것이 연옥이냐 아니냐며 의견이 분분하지만 성공회는 특별한 교리적인 입장으로 바라보지 않습니다. “음간이란 이 지상에서 인간이 살아 있을 때 육체와 영혼이 결합되어 있는 생명의 삶이 아닌 육체와 영혼이 분리되어 있는 낮은 어떤 상태를 나타낸다”고 볼 뿐입니다.

다른 개신교에서는 이 부분이 천주교의 연옥으로 오해를 살까봐 사도신경에서 삭제하고 있습니다. 천주교에서는 개정전 사도신경에서는 “고성소”로, 최근에는 “저승”으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의미가 성서적으로 명확한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다만 성공회에서는 이른바 죽음의 영역에까지 구원을 위한 그리스도의 수난과 희생이 알려지고 그 빛으로 그 죽음의 세계에 속해 있던 영혼들이 다시 새로운 생명으로 이끌릴 것이라는 보편적 구원사의 한 징후로 생각합니다.

2. “성도들의 상통”

사도신경에는 “성도들의 상통”(혹은 통공)(communio sactorum)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쉽게 말하자면 성도들의 교제 혹은 친교라고 할 수 있겠는데, 문제는 “성도”에 대한 해명입니다. 성공회는 기본적으로 이 “성도”(saints)는 지금 이 세계에 살아있는 신자들과 이 세상에서는 돌아가셨지만 부활을 기다리는 모든 별세한 신자들을 포함한다고 봅니다. 그래서 성공회 성찬례에서는 별세한 신자들을 위한 기도가 있습니다. 오해의 여지를 없애기 위해 부연하자면, 이 때 별세한 신자들을 위한 기도는 이 세상에 살아있는 사람들의 기도로 그분들의 죄가 덜해지거나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 신자들이 서로를 위해 기도하듯이 그렇게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찬례가 끝나고 나서 사제는 “별세한 신자들의 영혼이 평안히 안식하기를” 위해서 기도합니다. 성찬례의 모든 과정 속에 지금까지 이 세상에 왔다가 돌아간 모든 신자들과도 함께 주님을 찬양하며 그 안에서 친교를 나누었다는 뜻이지요.

그렇다면 믿지 않고 그저 착하게 살았던 분들은 어떤 것일까? 이 때문에 클라라 교우님이 걱정하시는 것인가요? 이 때문에 연옥이라는 편리한 장치가 있었으면 하는 사람들도 있었던 것 같고 그래서 연옥 교리가 형성된 것 같습니다. 하지만 성공회는 이에 대해 확실히 말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그분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은 가능합니다. 이분들 역시 주님의 직접적인 복음은 듣지 않았을망정 하느님의 크신 섭리의 세계 속에서 살아오셨고, 이제 자비하신 하느님의 마지막 날에는 모두 그분 앞에 서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때에 판단하실 분은 우리가 믿고 있는 교리나 성서 지식이 아니라, 전능하시며 자비하신 하느님이십니다. 그분들은 그 하느님께 맡겨드리면 될 일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역시 하느님 앞에서 모두 서게 될 사람들(산 이나 죽은 이나)로서 서로를 위해서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클라라 교우님, 돌아가신 분을 위해서 기도하시는 일은 깊은 정성과 사랑이 없으면 할 수 없다고 봅니다. 그것은 연옥이라는 공간의 존재 여부나 교리에 얽매일 일이 아닙니다. 그저 하느님의 크신 자비와 예수님의 넘치는 사랑을 감사하며 기도하십시오,

예쁜 아가타와 루가, 클라라 교우님, 그리고 모시는 어머님 모두 주님의 크신 자비로 화목하시길 간절히 기원합니다.

주님의 사랑 안에서 주낙현 드림 ^^

Written by skhfaq

2001년 6월 28일 at 2:04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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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회와 성모 마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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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님의 평화

좋은 질문 주셔서 감사합니다.

나그네 wrote :

성모님에 대하여 궁금한 것이 있어서 질문 드립니다.

성공회도 성모님을 공경하나요?

성공회는 몇몇 특정한 교리로 통일된 교회가 아닙니다.

그러다보니 성모 마리아에 대한 견해도 조금씩 다릅니다.

신학적으로나 교리적으로 성공회에서는 성모 마리아에 대한 “신심” – 이것이 신앙의 하위 개념인가요? – 를 보장하거나 확인해주지는 않습니다. 다만 여러 성인들처럼 공경하고 그분의 삶을 화두처럼 여기며 모본으로 삼고 따르고자 하는 것이지요. 그리스도교는 성인들과의 친교(Communion of Saint, 혹은 성도들과의 친교)를 신조 속에서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성공회는 이미 이 세상을 떠나 하늘에 있는 성인들과 성도들과도 친교를 이룬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

그리고 성모님에 대한 교리 중 영원한 동정녀의 교리는 수용합니까?

성공회는 기본적으로 성모 마리아가 동정녀인 상태에서 성령의 능력으로 예수님을 잉태하셨다고 믿습니다.

하지만 그분이 이후에도 동정녀로 사셨다거나 요셉과의 결혼 생활을 통해 아이를 낳아 길렀다고 하는 대립적인 주장에 대해 어떤 확실한 말도 하지 않습니다.

또한 천주교에서 주장하는 마리아의 무염수태 교리나 마리아 몽소 승천 교리는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이 교리들은 19세기 중반 계몽주의의 위협 속에서 천주교가 만들어낸 교리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독일에서는 천주교는 다시 구파 가톨릭 교회의 분열을 낳았습니다.

그리고 다른 것이지만 묵시록에 나오는 창녀 바벨론을 어떻게 이해합니까?

구약성서에서 바빌론은 강력한 세속적 힘의 상징이요, 지배의 상징입니다. 이스라엘은 이 강대국 바빌론에 의해 포로 생활을 해야 하는 수모를 겪기도 했습니다. 신약시대에 바빌론은 이미 생명을 다한 후였으니, 묵시록에 나오는 탕녀 바빌론은 상징적인 표현이라고 하겠습니다. 묵시록에 나오는 음행한 탕녀 바빌론에 대한 언급은 요한묵시록 14:8, 16:19, 17:5, 18:2,10,21 등에 나옵니다. 논란이 있긴 하지만 묵시록에 나오는 바빌론은 당시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고 박해했던 로마와 로마 황제라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당시 로마의 도덕적인 타락이나 황제들의 성적인 탐닉과도 연관이 있어 그렇게 표현한 것이라고 봅니다.

도움이 되셨길 바랍니다.

주님 안에서 하나된 형제 주낙현 요셉 부제 ^^;

Written by skhfaq

2001년 1월 21일 at 12:14 p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