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회 질문 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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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종교가 그리스도교를 비방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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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생략…

+ 주님의 평화

미카엘 형제님, 흥미로운 질문을 만나서 반갑습니다. 나름대로 절박한 심정으로 쓰신 것이 분명한데, 먼저 흥미롭다고 한 것은, 이런 일에 그리 신경 쓰지 말라는 것입니다. 흥미로운 이야기, 혹은 말씀하신대로 그리스도교 신앙을 비방하려고 날조한, 혹은 하나의 픽션으로 생각하시면 됩니다.

다만 이 일로 신앙이 흔들리는 친구나 지인이 있다면, 이를 염려하고 무엇보다 기도해주기를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신앙인으로서 솔직한 대화의 기회를 갖기 바랍니다. 하지만 교리적인 접근보다는 어떤 점에서 신앙 (천주교 신자이든 개신교 신자이든)의 걸림돌을 만나고 있는지, 그리고 어떤 점에서 다른 종교가 그리스도교를 비방하는 점에 수긍하는지, 이런 점들을 경청해 주는 기회를 먼저 갖길 바랍니다.

다른 종교에서 그리스도교를 비방하는 일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고, 길게 따다 놓으신 눈요기거리 내용의 기사와 소설, 루머의 역사는 길고도 깊습니다. 그리고 대부분이 허구이거나 악의적인 왜곡이었다는 사실이 금새 밝혀지고, 실제로 그리스도교 신앙에 손상을 입힌 일보다는 그런 비방을 일삼는 무리들의 신빙성을 의심하는 부메랑이 되는 일이 많았습니다. 제 풀어 못 이겨 스스로 잦아들 터이니 마음 두지 마세요.

이런 사례를 만나면서 한번 숙고할 일을 굳이 찾아 나선다면 이렇습니다. 그 동안 그리스도인들의 신앙이 이런 허무맹랑한 비방에 걸려 넘어질 만큼 허약하고 맹목적인 신앙관 혹은 교리적인 가르침에 너무 기대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반성할 일입니다. 자신의 하느님 체험과는 전혀 관계없는 교리에 대해 맹목적으로 신봉하여, 이를 예수님의 가르침으로 오해하거나, 예수님께서 몸소 보이신 삶에 대한 부지런한 성찰과 명상보다는, 신앙의 지혜마저 단박에 쉽사리 얻어보려는 생각에 편승하여 만든 무슨 무슨 성경 공부 프로그램이나 ‘뜨거운’ 신앙 집회로 얻는 감정으로 신앙의 도를 깨달은 사람 흉내를 내지는 않았던가 하는 것이지요.

이런 일은 성공회를 비롯해서, 천주교, 정교회 그리고 개신교를 망라해서 우리 신앙 문화에 편만한 모습들이라고 봅니다. 오히려 이런 점에서 저런 가십거리의 기사는 도대체 우리가 신앙하는 것이 무엇일까를 되새기게 합니다. 그러니 함량미달의 몇몇 신흥종교들의 비방도 그런 점에선 늘 미운 것만은 아닙니다. 물론 안쓰럽긴 하지요.

오해와 비방을 이겨낼 수 있는 방법은, 늘 예수님께서 하신 것처럼 하느님의 말씀을 그대로 살아가고, 그 삶으로 아름다운 향기를 펼쳐내는 것이겠지요. 진흙탕 싸움에 함께 말려들 일은 없다고 봅니다. 내 삶의 힘으로 신앙을 보여주는데 더 관심을 두었으면 합니다.

주님의 올곧은 길 위에 서기 위하여,

주낙현 신부 합장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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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skhfaq

9월 29, 2004 at 3:14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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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회 질문에 대한 답변 몇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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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님 안녕하세요? 저는 숙명여대 사학과 학생으로 성공회에대하여 공부하고있는 중입니다…^^
사실 오늘이 예배가 있는 날인것 같아서 성당에 예배당에한번 가볼까도 했지만.. 낯설고, 또 공부한다는
명목으로 신도들을 직접 찾아뵙는다는것이 용기가 나지않아 신부님께 먼저 메일을 보내 봅니다..

바쁘시겠지만… 너무 귀찮아마시고 조금만 관심을 기울여 주세요~~~^^
저는 종교학과도 아니고 사학과이기때문에 성공회는 물론 다른 교에대해서도 그리 알고 있는게 별로 없
고 아직 종교를 가지고 있지 않기때문에 더더욱 공부하기가 더욱 힘이드는것 같습니다… 부제님의 조언이 필요합니다..^^
우선 몇가지 항목이 있는데요,,,,

성공회같은 경우는 불교나 기독교 혹은 천주교 처럼 우리나라에서는 그다지 신도수가 많지 않은 종교라 할수 있는데요..
대부분의 혹은 특별히 성공회를 택하게 된 신도들의 이야기에 대해서 알고 싶군요… 그리고 신부님의 경우에도 어떻게
성공회를 믿게 되셨으며 신부님까지 하게되신 이유도요,,,

그리고 제가 신문이나 매스컴에서 듣기로는 이슬람 같은 종교(아랍권의 종교라 더 그렇겠지만)는 아무리 신자라해도
한국 사람의 경우 대부분이 자신의 종교를 다른 사람이 알기를 꺼려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성공회의 신자들은 어떤지..
(제가 가끔씩 길거리 같은 곳에서 만나는 분들은 그렇지 않은것 같았지만,,,혹시나해서요..^^)
또 기독교나 이슬람 종교와 하나님에 대한 생각이 같은 것인지…. 또 어떤 차이가 있는것인지….
또 다른 종교(우리나라에서 대다수가 믿는 종교)인이나 무교인 사람들에게서 혹시나 특별하다는 인식이나 소외감 같은것을
느껴 본것이 없는지….

음..그리고 마지막으로 앞으로 성공회가 어떤 형식으로 발전하고 사회에 이바지했으면 좋겠는지…^^
너무 질문이 많았나요?^^ 너무 벅차시면 몇가지에만에 대해서 만이라도 답변해 주셨으면 감사하겠습니다…
힘드시면 제가 직접 찾아가서 만나뵈도 저는 더 영광이고요~~^^: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주님의 평화

안녕하세요? 이름을 알 수 없으니 어떻게 불러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제 홈페이지에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질문을 던져 주시 것도 감사하구요.

공부하는 사람의 특권은 누구한테나 부끄러움 없이 물어볼 수 있다는 것이지요.
성공회 성당을 찾으셔서 경험을 하고 여러분들을 만났으면 더 좋았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신앙에 관련된 이야기는 무엇보다 교리적인 태도나 신학적인 입장보다는 경험이 어떤 점에선 더 중요할테니까요.

질문하신 내용에 대해서 간단히 답변드리겠습니다.

1. 성공회는 교인이 적은 그리스도교의 한 교단입니다.

성공회는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고백하는 그리스도교의 한 교단입니다.
그리스도교에는 천주교와 개신교로 분류되는 장로교 감리교 성결고 침례교 등 아주 다양하지요.
성공회는 16세기 종교개혁과 함께 나온 3대 교단 가운데 하나입니다.
즉 루터교, 장로교, 성공회가 종교개혁을 통해서 형성된 개신교의 주요 3개 교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3개 교단은 이후 개신교 발전의 뿌리가 됩니다.
예를 들자면 성공회에서 감리교나 구세군 등이 형성되어 독자적인 교단으로 발전되었던 것이지요.

성공회를 “택하게 된 동기”랄까, 이런 것은 다른 종교인들과도 그 모습이 비슷하다가 할 수 있습니다.
가족이나 부모님이 신자여서 그대로 그 신앙을 물려받은 경우가 있는가 하면 (물론 이런 경우가 대다수입니다만)
저처럼 장로교에 있다가 신학적인 이유나, 다른 어떤 요인들에 의해서 자발적으로 선택해서 오는 경우도 있습니다.
물론 성공회에서 다른 개신교나 천주교로 이적하시는 분들이 있는 것처럼요.

현재 한국성공회 신자들은 “아마도” (공식적인 통계가 없으므로, 제 느낌으로)
성공회에서 나고 자란 신자가 40% 그리고, 개신교에서 온 신자들이 약 35%,
그리고 천주교나 다른 종교에서 온 분들이 약 10%, 나머지는 종교가 없던 분들이라고 생각합니다.

2. 성공회 신자는 성공회 신자인 것을 드러내는가?

말씀하신, 자기 종교를 드러내는 것을 꺼리는 것과 숨기는 것의 차이를 잘 모르겠습니다만,
그리고 이슬람교와 관련한 내용은 잘 모르겠습니다만…
성공회는 스스로를 매우 훌륭한 그리스도교 신앙적 전통의 하나라고 믿고 있고
그에 대한 자긍심이 강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한국 개신교 신자들과는 그것을 드러내는 모양과 태도가 좀 다르긴 하지만,
대부분의 성공회 신자들은 성공회 신자가 된 것을 기쁘고 즐겁게 생각합니다.

3. 다른 종교와의 관계…

질문하신 내용 가운데는 몇가지 오해가 있는 것 같습니다.
성공회는 앞서 말씀드린대로 그리스도교 신앙 전통 가운데 하나입니다.
같은 그리스도교 안에서 천주교 혹은 다른 개신교들과 약간의 차이점들이 있는 것이지요.
우선 같은 그리스도교 안에서는 차이점 보다는 공통점이 많다는 것을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이 선후 관계가 매우 중요하지요. 사람들은 쉽게 공통점보다는 차이점에만 관심을 두는 경우가 많은데
이것은 전체 맥락과 그 대상을 오해하기 매우 쉬운, 위험한 방법이라고 봅니다.
여느 교단처럼 성공회도 다른 교단들과 교리와 그 교회의 모습에서 차이가 조금씩 있습니다.
특히 성공회는 다른 개신교와 비교할 때, 예전(전례 혹은 예배)에서 많은 차이를 보이고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는 천주교와 흡사한 모양을 갖고 있지요. 그러나 그 이면에 있는 신학적인 태도는 오히려 개신교와 더 가깝습니다.
하지만 성공회는 한국에 있는 많은 개신교와는 달리,
사회 문제나 윤리, 교리적인 문제 등에 대해서 매우 개방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 성공회가 수적으로 소수이고, 한국의 천주교나 개신교 등과는 달리 매우 개방적인 교리적 태도를 갖고 있기 때문에
이로 인해서 많은 사람들의 정형화된 눈에는 이상하게 보이는 것도 사실입니다.
성공회 신자들은 이에 대해서 매우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소수에 대한 한국 사람들의 이러한 태도는 어떤 사태와 사건, 그리고 무슨 문제를 판단하는데 매우 협소한 시각을 줄 가능성이 많다고 봅니다.
그러나 점차로 지각있는 분들은 성공회가 갖고 있는 신앙적 태도와 교리적, 예전적 성향들이
우리 사회에 좀더 필요한 가치들을 담고 있는 매우 중요한 그리스도교 신앙 전통이라는 것을 새롭게 발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요즘은 새로운 성공회 신자 가운데 대부분은 개신교 혹은 천주교에서 온 분들입니다.

4. 성공회 사회적 기여

성공회는 그리스도교 교단 가운데서도 무엇보다 “신앙의 생활화”를 강조한 전통을 갖고 있습니다.
성공회가 예전(예배와 기도)를 강조하는 이유도 바로, 신앙을 우리 몸에 배게 해서
몸으로 “살아가는” 신앙 생활의 중시하기 때문입니다.
그 탓에 성공회는 “교회”에 대한 개념을 아주 폭넓게 적용하고 있습니다.
즉 교회는 신자들만 모여 있는 곳이 아니라,
하느님의 일하시는 모든 곳이라는 신념과 신앙을 갖고 있습니다.
특히 현대 사회 속에서는 많은 사람들의 사회적 관계와 경제적 관계 안에서 소외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성공회는 이런 소외된 사람들이야 말로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가 절급한 분들이라고 보고
이 분들을 위한 선교와 도움에 누구보다도 앞장 서왔습니다.
특히 80년대 부터 도시 빈민 선교로 시작된 “나눔의 집” 운동 등은
이러한 신앙의 생활화의 중요한 면모라고 할 수 있습니다.

특별히 성공회는 이러한 신앙의 생활화 안에서, “자기 교회”라는 울타리를 벗어나서
사회에 보살핌의 손길을 펴는 일에 앞장서고 있지요. 이것은 다른 종교에도 귀감이 될만 한 것이거니와,
성공회도 다른 종교의 이러한 훌륭한 신앙적 실천에서 배우기를 주저하지 않습니다.
이런 점에서 성공회는 좀더 개인적 구원뿐만 아니라 사회의 변화에 따른 사회적 구원이랄까,
어떤 총체적인 구원에 좀더 신경을 쓰고 있으며, 이 때문에 다른 종교와의 대화에도 매우 적극적인 교단입니다.

아울러, 성공회는 천주교와 개신교 사이에 놓여 있는 갈라진 틈을 잇은
다리 역할을 오랫동안 해왔습니다. 이른바 교회 일치 운동 혹은 에큐메니칼 운동이라는 것이 그것인데,
성공회는 이런 교회의 화해와 일치를 위해서, 나아가 분열된 사회의 치유를 위해서 힘쓰는 것을
교회의 사명이요 소명이라고 알고 실천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5. 만남은 항상 좋은 것이지만….

좋은 질문에 허튼 대답이 되지 않았나 염려스럽습니다.
한번 만나서 이야기 할 수 있다면야, 저로서도 하고픈 말을 많이 나눌 수 있을텐데요.
하지만 이를 어쩝니까? 저는 지금 태평양을 건너서,
한국 사람들이 그렇게도 싫어하고, 저 역시 싫어하다 못해 증오하고 싶지만, “원수를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말씀때문에
참고 있는 바로 “미국”에 살고 있으니 말입니다.

하도 덜 떨어져서, 다시 공부하라는 명령을 받고, 작년 가을부터 미국 버클리에서 공부하고 있거든요.
만날 수는 없더라도, 좋은 대화가 지속되기를 희망합니다.

하여튼 부족한 답변이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 간절합니다.

봄볕처럼 따사로운 주님의 사랑과 자비를 기원하며…

주낙현 신부 합장 ^^

Written by skhfaq

3월 19, 2003 at 12:49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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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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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번에 증산도엘갔습니다.거기선 예수가 구세주가아니며 증산상제님이 선천시대에 내어놓은 성자에불과하구 부활은 그제자들이 그를 받들기 위해지어낸것이라합니다.

저는 그에반박하기위해 성서에서 예수의부활,구약에서 그리스도의탄생 예언한부분을읽었고 그를 진실로 믿으나 오늘 그들과 만나기로했습니다.그들을 어떻게 뿌리며, 도대체 강증산이 진짜 하느님인지,그의 인생에대해알고싶습니다.글구 그서적을 읽었으나 자꾸 유혹을당하고 예수님을 가슴아프게하는 짓거리(그들을 만날때마다)를하는거 같아 죄책감이듭니다…(아! 그리구 저번에 답장주신거 감사합니다 진정 주님의 사도가 되시길빌구여.궁금해서 묻는건데 영세명이 어떻게되시나여?)

+ 주님의 평화

답변이 상당히 늦어졌군요.
곧바로 답변하겠다고 생각하다가도 다른 종교에 대한 질문에 대해서는
좀더 공정한(?) 답변을 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에 마음에 묵힌다면서
결국에는 때를 놓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좋은 결론을 내는 것도 아닌데… ^^

증산도에 대해서 물어보셨지요?
종교 전반에 걸쳐 많은 관심과 고민이 있으신 것 같군요.
증산교에 대해서는 저도 딱히 이렇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지식이 있거나
전문가가 아니라서 적절한 답변을 할 수 있을까 고민스럽습니다.
다만 오래 전에 한국종교사를 배우는 과정에서 증산교에 대해서
조금 살펴보고, 제 고향이 증산교의 발생지인 곳이어서
증산교의 종교적 사회적 발생 상황에 대해서는 관심이 있었습니다.
그러니 이런 부분에서만 간단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증산교는 기본적으로 19세기 한국의 동학운동과 관련이 깊습니다.
19세기 말 외세의 강점에 따라 우리나라의 주권은 그 의미를 상실하고
더욱이 민중들의 삶은 피폐해졌습니다. 이 때 등장한 것이 바로 동학사상입니다.
동학은 기본적으로 종교적 사상이었지만, 그 급진적인 종교적 인본주의로 인해서
사회 운동에 깊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특히 민중의 삶에 대한 깊은 애정을 갖게 되었죠.

그 결과 동학운동은 갑오농민전쟁을 통해서, 그 힘을 발휘하게 이릅니다.
그러나 일본군이 가세한 조선관군에 의해서 갑오농민운동과 동학은 철저하게 짓밟히게 됩니다.
동학도는 모두 잡혀 처형당하거나, 체포되고,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이제 농민들, 민중들에게는 어떤 희망도 없었습니다.
바로 그때 동학사상과 동학운동의 근거지인 전북 지역에서
증산 강일순이라는 분이 나타나서, 자신이 하늘에서 내려온 상제라고 주장했습니다.
지금까지 상제로서 수많은 예언자들을 보냈고, 특히 동학의 전봉준을 보냈으나
이른바 “천지공사”를 완수하지 못해서 상제인 자신이 직접 내려왔노라고(강생) 주장하고는,
흩어지고 실의에 빠진 농민들과 민중들을 치료하고 보살피며
흩어진 동학도를 규합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새로운 종교로 등장하게 되었던 거지요.
이후 증산교는 동학과 같은 정치적 색채는 거의 상실하고, 한국의 기복 신앙을 기반으로 급성장하게 되었습니다.

현재 증산교는 약 20개의 교파를 가지고 있는데
그 중 최대교파가 대순진리회입니다.
길거리에서 “혹시 도에 대해서 들어보셨습니까?”라고 묻는 분들은 대부분
증산교 그 가운데 대순진리회 신자들인 경우가 많습니다.
저도 몇몇 분들을 길에서 만나 한참이나 이야기를 나눈 경험이 있는데,
이 분들의 특징은 다른 종교에 대해서 무척이나 배타적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다른 종교에도 ‘도’가 있을 수 있지 않겠느냐고 물었더니,
그런 일은 없다는 거지요. 우리나라 종교문화의 특징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대목입니다.

최근 이 대순진리회는 몇 가지 사회적인 물의를 일으키고 있는 것으로 보도되고 있습니다.
특별히 헌금에 대한 강조가 지나쳐서 재산을 다 바치도록 강요하는 경우가 있고,
미래에 대한 염려가 지나친 우리들의 마음을 이용하여 불길한 예언을 하면서
자기네 종교로 유인하고 기부하게 하는 경우가 많아 사회적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는 것이지요.

어떤 종교에 대해서 판단을 내리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증산교, 특히 대순진리회와 같은 경우에는
우선 종교의 ‘사회적 공익성’이라는 점에서 큰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그런 문제는 대순진리회만의 문제는 아닌 것 같습니다.
하여튼 이런 종교들은 여러모로 그 진실성에 의심을 하기에 충분합니다.

개인적으로 양승우 형제님께 부탁드리는 것은,
다른 종교에 대한 관심과 연구는 매우 중요하지만,
우선 자기가 갖고 있는 신앙에 대해서 좀더 열심히 탐구하고 기도하는
성실한 자세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도대체 예수 그리스도가 ‘나’에게 어떤 분인가에 대한
끊임없는 물음과 도전 속에서 신앙의 길을 감지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이것이 밑바탕에 없다면 다른 종교들과의 대화는 반목으로 끝나거나
서로 이해하지도 못하는 논리적인 교리 논쟁에 휘말려서
스스로를 파괴하게 됩니다.

특히 역사가 긴 종교일수록 실수도 많고
수많은 주장들이 교차하는 관계로 논리적인 결점도 많은데,
신흥종교들은 이를 파고드는 경우가 많지요.
이런 함정에 빠져들면 금방 넘어가기가 쉽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한국의 그리스도교의 전도 운동도 이런 방식을 많이 채택했기 때문에
이런 싸움에서 깊은 신앙적 식별로서 이를 이겨내기보다는
다른 종교에 대한 무조건적인 적대감이나 배타심으로 무시하려고 하지요.
어쩌면 이것은 동전의 양면입니다.

그런 점에서 자기 신앙에 대한 깊은 헌신과 식별이 중요합니다.
그것은 자신의 신앙 경험에 대한 깊은 신뢰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이런 점들을 잘 이해하시면서 다른 종교에 대한 관심도 넓혀 나가시길 바랍니다.

홀로 주님이신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

주낙현 요셉 신부 합장 ^^;

Written by skhfaq

5월 27, 2002 at 10:55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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