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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케아 신경 – 4. 사도적인 교회 – 주교의 교회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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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가 “사도적”이라는 말을 통해서는 크게 두 가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고 봅니다. 즉 그리스도의 선교 위임을 받은 사람들을 사도로 불렀던 탓에, 그 사도들과의 관계 속에서 역사적으로 형성된 교회는 이런 선교적 위임을 받은 공동체라는 생각이겠구요. 이것이 사도적 교회의 기본적인 근간이 됩니다. 다른 하나는 이 사도적인 위임은 교회를 통해서 신뢰감있게 지속되어야 하는데, 그것을 보여주는 표현은 바로 사도들과의 직접적인 연관성을 통해서 지속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 맥락은 서로 배타적인 것이 아니라 오히려 상호 보완적이라 생각합니다. 선교 위임이라는 근본적인 정신과, 이를 교회 안에서 권위있게 지탱해 나가려는 구체적인 교회 치리 형태의 구분이기 때문입니다.

교회의 발전 과정에서 후자의 맥락을 매우 중요시한 교회들은 전통적으로 감독(주교) 중심적인 교회 치리 형태를 가졌습니다. 분열되기 이전의 초대교회들과, 로마 가톨릭 교회, 정교회, 성공회가 대표적이며, 서유럽 루터교의 일부도 여기에 포함됩니다. 그러나 종교개혁자들은 사도적인 정신과 감독의 지위를 분리하고자 했습니다. 감독은 이후에 만들어낸 교회 치리에 따른 직제일 뿐 사도적인 계승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는 이유였습니다. 사도로서의 교회의 선교적 위상에 깊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사도계승권 문제는 내내 교회의 일치와 가르침을 위해 중요하게 작용했고, 실제로 성서에도 혼란은 있으나 “주교직”의 존재에 기능에 대한 언급이 자주 등장합니다. 교회가 발전하면서 그 역할이 특화되고, 교회의 행정적 치리와 교리적 일치를 위한 중요한 직책으로 안착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교회의 선교가 자유로워지면서 교회가 확장되고, 이에 따른 다양성이 자칫 ‘하나인 교회’라는 이상과 이미지에 훼손을 줄 염려도 있었던 것이지요. 어쨌든 사도적 교회라는 의미는 그리스도에 대한 교회의 선교 위임, 복음 전파를 근간으로 하여, 역사적인 필요에 따라 구체적으로 주교직을 통해서 그 선교와 사도적인 직무가 지속된다는 생각을 발전시켰던 것입니다.

성공회는 기본적으로 사도적 계승권을 굳이 “주교”의 안수를 통한 계승이라는 식으로만 이해하지는 않습니다. 성공회가 교회 일치 운동을 위해 내 놓은 기준 가운데 “주교직”에 관한 문제가 나오는데, 여기서는 역사적으로 다양하게 적용된 주교직의 형태에 집중하지, 특정한 형태의 주교직에만 제한을 두지 않습니다. 물론 성공회 안에서도 다양한 논란의 여지가 없지 않습니다만, 이와 관련해서 아주 좋은 사례를 미국성공회와 미국루터교회를 통해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 두 교단은 오랜 교회 일치 대화 끝에, 양 교단의 예배와 성직자의 사목을 교류하고, 안수(서품)까지 함께 하는 “완전 상통” FULL COMMUNION의 관계에 들어섰는데, 그전까지 논란의 핵심은 “주교직”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결국 “공동 선교를 향한 부르심”이라는 문서를 통해서, 주교직을 비롯한 성직, 그리고 모든 사목 활동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 분의 삶과 죽음과 부활에 대한 선교적 증언에 종속되어야 한다고 선언했습니다. 주교직은 이런 선교 위임을 받은 공동체를 하나로 묶어 선교에 충실하도록 하는 직책이라고 이해했기에, 전통적인 ‘사도 계승권’ 교리를 갖고 있던 성공회와 이와는 다른 치리 구조를 갖는 ‘감독직’을 갖고 있는 루터교가 서로 이런 차이와 공통점을 받아들였던 것이지요.

다시 말씀드려 큰 맥락 안에 예수님의 선교를 이어나갈 위임 받을 공동체로서의 “사도적 교회”가 있다면, 그 선교를 위한 방편으로서 ‘주교직’이 존재하는 것이지요. 다시 한번 복음서의 선교 대 위임의 말씀을 되새겨야 할 때입니다. (마태 28: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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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skhfaq

5월 27, 2004 at 2:42 오후

캔터베리 대주교에게 순명 서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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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님의 평화

안녕하세요? 게파님

별로 신통치 않은 답변에 고마워하시니 제가 오히려 겸연쩍습니다. 몇가지 보충 질문에 대한 답변을 하지요.

질문 1

성공회의 경우 지역 주교들과 켄터베리 대주교와의 실제적인 관계(즉 가톨릭으로 따지면 교황-주교같은 관계..)는 없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징적, 의례적으로라도 주교가 되실 때 켄터베리 대주교에게 순명을 서약하는지 궁금하군요..

답변 1

세계성공회(The Anglican Communion)에서 지역 주교들과 캔터베리 대주교의 관계는 어떤 하등의 종속관계가 아니라, 병렬적 평등으로 상호의존하는 관계를 갖습니다. 주교의 서품식에서도 캔터베리 관구가 치리하는 교구가 아닌 한 캔터베리 대주교에 대한 순종의 요구는 없습니다. 그보다는 세계성공회의 협의와 동의를 얻은 관구법과 교구법, 그리고 교구 의회(관구의회)의 결정을 따를 것을 서약하지요. 성공회는 기본적으로 의회구조를 통해 의회의 결정 사항을 주교를 비롯한 성직자들과 신도들이 따르기 때문입니다.

질문 2

성공회신부님들의 경우 그 생활비가 교구에서 일괄적으로 정해지는지, 아니면 사목지의 사정에 따라 교구의 감독으로부터 다소 유연하게 정해지는지요? 한 가지 덧붙여 여쭈어보고 싶은 것은 다른 개신교 목사사모님들의 경우 사실상 부군의 목회활동에 뒷바라지하는 일에 전념하는 것이 거의 결혼생활의 전부인 것으로 알려져있는데, 성공회 신부님들의 사모님들도 그러하시지요? 음, 대단히 외람되고 송구스러운 말씀이지만 만일 그렇다면 결혼생활이 한 사람의 철저한 희생이 전제되어야 가능하다는 점에서 볼 때 반드시 바람직하지만은 아닌 것 아닌지 하는 죄송한 생각을 가져봅니다..

답변 2

사례비 지급에 대해서는 교구에 따라 정책이 다릅니다만, 교구는 호봉에 따른 기본적인 사례비를 책정하여 각 교회에 내려보냅니다. 그리고 이에 따라 교회가 사례비를 드리고 그 밖에 교회 사정에 따라 연구비 등을 제공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성직자 배우자(대체로 사모님들 – 여성 성직자도 있으니 이런 표현을 씁니다)의 활동 문제는 답변 드리기 난감한 문제입니다. 교회마다 또는 성직자 가정마다 처지가 다르기 때문이지요. 성직자의 배우자가 사목 활동을 돕는 문제도 여러 사정이 있으므로 이를 곧바로 배우자의 철저한 희생이라고 일반화하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또 배우자의 도움이 성직자에게 매우 의미있고 큰 경우가 많습니다. 이러한 도움은 매우 자발적인 것이라고 봅니다. 또 독립된 직업을 가진 배우자들도 많이 계시지요.

도움이 되셨길 바랍니다.

주님의 사랑 안에서 ^^

Written by skhfaq

8월 19, 2001 at 2:49 오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