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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회와 천주교 – 전례 개혁의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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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기뻐하십시오…

안녕하세요? 신부님!! 미국에서 고생이 많으시죠?? ^^

한 번도 뵌 적은 없지만 제가 알고 있는 유일한 성공회 신부님이라는 사실에 신부님과의 만남을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저희 수도 공동체에 함께 살고 계신 신부님께서 작년 태백에 있는 성공회 신부님께서 활동하시는 공부방에서 형제들과 함께 며칠 계셨다고 하는데 참 좋았다고 하시더군요… ^^

성공회 신부님과 교류를 하시는 모습이 참 보기 좋던데…저도 신부님과 그런 교류가 가능하겠죠?? ^^

아~~ 주제에서 벗어나는 말을 오랫동안 했군요…

질문의 핵심은 이렇습니다.

가톨릭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통해 전례개혁을 했습니다. 성 비오 5세 미사 또는 트리덴틴 미사라고 일컫는 미사를 대신해서 자국어로 미사를 봉헌할 수 있고, 제대위치도 벽을 보는 것이 아닌 회중을 향하게 되었고 미사가 다소 간소화 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바티칸 공의회를 주도하신 바오로 6세 교황께서는 트리덴틴 미사를 아예 없애는 것이 아니라 그런 전통도 인정하면서 보편적으로 드릴 수 있는 미사를 제정하셨는데요…

성공회와 가톨릭의 미사 형태가 비슷한 시점에서 성공회의 미사는 어떤 변화를 거쳐왔는지요… 어떤 성공회 성당의 제대를 보니 벽쪽에 제대를 붙여 놓은 곳도 있던데…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거치면서 성공회 내에서도 미사전례에 대한 변화가 있었는지, 아니면 독자적인 변화를 거쳤는지…

그리고 가톨릭의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전에도 성공회의 미사는 지금의 형태를 가지고 있는지 궁금하네요… ^^

질문이 많죠?? ^^

주님의 은총이 가득하시길 기도드립니다.

주님 안에서 일치하는 그대의 벗 이정은(요한 보스코)수사 두 손 모음…

+ 주님의 평화

이정은 수사님 안녕하세요? 근래에 이 공간을 통해서 자주 만나게 되어 기쁩니다. 성공회와 로마 가톨릭 교회의 에큐메니칼 대화와 협력은 서로의 전통에 대한 깊은 이해와 존중, 그리고 무엇보다도 하느님 나라를 향한 공동의 발걸음이라는 점에서 매우 의미 있는 일이겠습니다. 무엇보다도 그것이 양 교회의 공식적인 채널뿐만이 아니라 “아래로부터의” 대화와 협력일 때에 그 진정성을 굳건히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늘 새로운 물음과 열린 대화의 태도로 좋은 물음을 던져 주시는 이수사님은 이런 대화를 이끌어 가시는 분입니다. 이수사님의 손에 끌려 다니다가 덤으로 얻는 배움이 크다고 먼저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전례(예전)개혁에 관련해서 말씀드립니다. 아시다시피 그리스도교계의 세계적인 전례 개혁은 이른바 “전례 운동”(Liturgical Movement)이라는 이름으로 19세기말과 20세기 초에 추동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 주제는 역시 형식화되고 화석화된 예배가 아니라 신앙인의 “적극적 참여”(active participation)를 기반으로 한 하느님 백성의 일(레이투르기아)로서 예배를 회복하자는 것이었지요. 그 반세기 넘은 결과물로 바티칸 2차 공의회의 그 유명한 “거룩한 전례에 관한 헌장”(전례 헌장)이 나오게 되었고, 그 영향력은 로마 가톨릭 교회뿐만 아니라 모든 그리스도교계에 걸쳐 지대한 것이었습니다. 무엇보다도 로마 가톨릭 교회의 전례개혁은 “하느님 백성”의 전례에 대한 “적극적 참여”를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 결과로 “라틴어 미사”가 각 지역 언어 미사로 번역될 수 있었고, 기존의 미사와 성사를 대대적으로 개정하여 1969년과 1970년(로마 미사)에 나왔던 것이지요. 즉 전례 개혁의 요지를 바티칸 2차 공의회의 용어로 정리하자면 ‘하느님의 백성이 백성의 일(의무)인 전례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도록 격려하기 위하여 미사와 성사를 개정하고, 미사의 지역어 번역을 허용한다’는 것이겠지요.

한편 성공회는 흥미롭게도 이미 종교개혁(16세기) 이래로 이러한 전례 개혁의 원칙들을 발전시켜 왔습니다. 즉 영어(지역어) 성서 번역과 함께, 성서에 기초하면서 초대 교회와 중세 교회를 아우르고 영국 지역에서 발전된 예전 전통(대체로 사룸 미사)를 종합한 성찬례(미사)를 영어(지역어)로 만들어 냈습니다. 아울러 성직자 혹은 수도자 중심으로 되어 있던 성무일도를 개혁하여 “아침기도”와 “저녁기도”로 이루어진 공동 예배의 틀을 마련하여 사용했습니다. 아울러 방만하게 나뉘어져 있던 여러 예전서들을 취합하여 성직자와 평신도 모두가 함께 사용할 수 있도록 예전과 성사, 그리고 사목 예식들을 간소화하고 이를 한 권의 기도서로 만들어서 접근이 쉽도록 했습니다. 즉 1549년으로부터 1662년에 이르는 공동기도서(The Book of Common Prayer)의 개정 과정을 통해서, 1) 성서에 근거한 전례, 2) 초대 교회 전통에 부합하는 전례, 3) 교회의 일치를 위한 전례, 그리고 4) 모든 신자들이 쉽게 접근하여 사용할 수 있는 전례라는 전례 개혁의 원칙을 마련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성공회의 공동기도서는 성공회가 어떤 교리적 혹은 신학적 선언에 기초한 교회가 아니라, 기도서의 영성에 기초해서 끊임없이 기도하는 교회 (Church in Prayer)라는 점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성공회에는 이런 공동기도서에 기초하면서 여러 신학적 성향과 교회의 흐름에 따라 다양한 경향의 예배를 발전시켰습니다. 그러다가 19세기 말 로마 가톨릭에서 일어난 전례 운동과 비슷한 전례 운동이 19세기에 “의례주의”(Ritualism) 운동이라는 형태로 영국 성공회 안에서 발전되었고, 이러한 흐름은 당시의 신학적 운동 가운데 하나였던 옥스퍼드 운동과 만나면서 세계성공회 내에 교회 역사 전체를 아우르는 전통적 전례에 대한 깊은 관심을 불러일으키게 됩니다. 실제로 당시 영국 성공회의 경우 전례복이나 전례 지침 혹은 행위 등이 매우 간소화되어 있었고 성찬례도 일년에 네 차례, 혹은 한달에 한번 꼴로 이뤄지는 것이 대부분이었고, 주일 예배는 공동 예배 의식으로 마련된 “아침 기도”를 통해서 드리는 것이었기에, 이러한 흐름은 매우 새롭고도 획기적인 운동이었습니다. 이런 움직임에 힘입어 성공회는 초대 교회의 다양한 예배들을 다시 연구하고, 중세의 전례 관습을 비판적으로 복원하면서 현재의 로마 가톨릭과 비슷한 형태의 전례가 급속하게 퍼지게 되었던 것이지요. 그러니까 성공회가 현재와 같은 매우 전례적인 교회의 모습을 일반적으로 회복한 것은 이제 겨우 100여년 된 현대적 현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편, 성공회는 앞서 말씀드린 대로 자국어 전례와 전례 개혁의 자율성을 전통을 갖고 있었던데다, 세계 성공회의 구조 상 각 관구 교회가 독립된 교회로서 치리의 자율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자국어 전례와 전례 개혁(대체로 기도서 개정)의 자율적 권한을 자연스럽게 발전시켰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1958년 람베스 회의(세계성공회 주교회의)에서는 이러한 전례 개혁의 자율성과 전례 토착화의 필요성을 처음으로 공식화함으로써, 당시 그리스도교 전체에서 일고 있던 전례 운동의 흐름에 협력하며 서로 영향을 주고 받게 되었습니다. 이후 세계성공회의 각국 성공회는 대대적인 기도서 개정과 전례 개혁을 시도하게 되었는데, 이 과정에서 로마 가톨릭 교회와 정교회의 유산, 그리고 다른 개신교 전통 교회들과 깊은 교류를 얻게 되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바티칸 2차 공의회의 “하느님 백성의 적극적 참여”라는 개혁의 원칙은 역시 성공회의 원칙이기도 했습니다. 이것은 다시 말해서 전례 개혁에 관하여 이제는 로마 가톨릭, 성공회, 개신교회들이 모두 함께 연구하고 이 연구의 성과를 각 교단의 전통에 따라 반영하고 있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이러다 보니 이제는 전례의 구조적 특징(특별히 성찬례)과 관련해서는 거의 일치된 형태를 보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세계성공회는 영국성공회의 기도서인 1662년의 기도서를 모본으로 삼아서 기도서 개정을 진행하였고, 이후 세계성공회 국제 전례 위원회를 통해서 함께 전례 개혁의 신학적 원칙을 연구하고, 각국 교회에 권고하는 전례 문서를 발행하고 있습니다. 각국의 성공회는 이를 원칙적으로 존중하지만, 그 교회의 전례는 그 교회에서 결정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세계성공회의 전례는 그 형태 상의 특징이 서로 다르게 나타날 수 밖에 없습니다.

또한 같은 나라에서 같은 기도서를 사용한다 하더라도, 그것을 실행하는 다양한 전례 관습을 강제하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에, 교구에 따라 혹은 심지어는 같은 교구 안에서도 개별 교회에 따라, 다른 전례 관습이 온존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여러 다른 조건들이 관여하는 바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한국에는 여전히 벽에 붙은 제대를 사용하는 교회가 있는데, 이는 현존하는 성당의 구조상 그런 것일 뿐인 경우가 많고, 새롭게 지어지는 성당에서는 신자들을 향한 제대 배치가 대부분입니다. 또 기본의 벽에 붙은 제대가 있다 하더라도 이를 보존하고 새로운 제대를 신자를 향해 마련하여 미사를 드립니다.

전례에 대한 에큐메니칼 연구가 확대되는 것이 세계 교회의 현실이지만, 한국의 경우는 그렇지 않은 것 같아서 아쉽습니다. 전통적인 전례의 구조와 형태를 강조하다 보면 왜 로마 가톨릭 교회를 따르냐는 핀잔이 개신교 측에서 우세하다면, 좀더 자유롭고 현대적인 예배의 모본을 전례 전통의 교회에 도입하려 하면, 왜 개신교적 ‘악습’을 도입하려 드느냐는 또 다른 핀잔이 다른 쪽에서 나옵니다. 그러나 다시 한번 생각해야 할 것은 성공회의 전례 개혁 선구자들과 로마 가톨릭의 바티칸 2차 공의회 교부들이 올바르게 밝혔듯이 “하느님의 백성”이 하느님을 경배하고 그분과 대화하며 호흡하는 “하느님의 일인 전례”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이야 말로 전례 개혁의 원칙이 되어야 하겠지요.

함께 하느님의 백성인 것을 기뻐하며,

주낙현 신부 합장

기도서 성찬례의 다양성과 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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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낙현 신부님께

신부님께 예전학을 전공하신다기에, 또한 감리교와 성공회는 역사적인(예전적인) 유산을 공유하고 있는 부분이 많기에 용기를 내어, 주의 만찬례(성찬예배)의 성찬기도 양식에 대한 저의 견해를 몇 자 적고, 관련된 질문을 드리고자 합니다.

제 질문은 미국 성공회 공도문집 (The Book of Common Prayer) 1979년도판 323쪽부터 시작되는 The Holy Eucharist: Rite One (성찬기도/축성경 제1양식?)과 355쪽부터 시작되는 The Holy Eucharist: Rite Two (성찬기도/축성경 제2양식)의 차이에 관한 것입니다.

다 아시는 것이겠지만, 제1양식은 토마스 크랜머 대주교님등이 중세의 전통적인 로마미사경본을 성서적인 원칙에 따라 개정하여 공도문 제1판에 실으셨던 최초의 영어 미사/성찬례에 그 역사적 기원을 두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 후 여러 차례 공도문집의 개정에도 불구하고 그 기본 정신과 의식문의 표현들은 오늘날까지도 유지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제가 이 역사적이고 전통적인 제1양식에 관심을 가지는 이유는 그것이 존 웨슬리를 통해 감리교회에도 전해져서 미연합감리교회가 1988년 성가집과 1992년 예배서를 개정할 때까지, 그리고 한국 감리교회도 최근 들어 새 예배서를 내기 전까지, 적어도 의식문(감리교는 “예문”이라고 부릅니다)에 있어서는 근간이 되어왔기 때문입니다. 물론 실제로는 그 예문을 전해준 존 웨슬리 목사님의 의도대로 주의 만찬례가 집례/집전되지는 않았습니다. 한국 감리교회의 경우는 1970년대 이후, 더 축약된 (Sursum corda 와 Sanctus 등이 생략된) 예문만으로 진행되었습니다. 그 사정은 새 예배서가 나온 지금도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이에 비해 최근 널리 사용되고 있는 제2양식은 성공회, 미연합감리교회, 로마 카톨릭을 막론하고 히폴리투스의 사도전승 재발견 이후, 20세기의 Liturgical Movement의 성과를 반영한 것이라고 여겨집니다. 신부님이 번역해서 올리신 성찬기도도 이 제2양식을 더 발전시킨 것 같습니다. 잘 아시겠지만, 제1양식이 성찬/성체에의 참여를 통해 그리스도의 속죄의 은총과 그에 따른 여타의 축복과 은택을 받아 누리는 다소 개인적인 경건/신심에 초점이 맞춰진 것에 비해, 제2양식은 하느님의 창조섭리와 우리 인간의 타락과 배반에도 불구하고 구세주를 보내시어 우리를 구속하시는 하느님의 화해의 은총 및 성령의 내림을 통한 Sanctification(축성.성화)과 친교에 강조점이 두어진, 한마디로 우주적인 구속사의 vision 안에 공동체적인 일치의 신학을 잘 표현한 것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최근에는 환경/생태적인 의향도 더 부각되는 듯합니다). 제2양식이 지닌 이러 저러한 장점 때문인지, 제가 참예해 본 미국 성공회 성찬예배는 거의 100%가 이 제2양식으로 집전되었습니다. 이건 여담인데, 저와 교분이 있던 말레이시아 출신 성공회 신부님은 기숙사 방에서 아침에 혼자서 조도를 드리실 때, 공도문집 1양식도 아닌 로마 카톨릭의 제1양식으로 하신다는 말씀을 들었던 바, 저로서는 납득하기 힘들었습니다.[고교회 경향의 종착점은 역시 로마인가? Like J. H. Newman?]

이건 질문인데, 성공회에서도 로마 천주교처럼 교중미사가 아닌 사제 혼자 드리는 사적인 미사가 가능한가요?

진짜 궁금한 질문은, 미국 성공회 또는 한국 성공회에서 이 성찬기도 제1양식으로 드려지는 미사가 몇 퍼센트 정도 되나요? 물론 개개 본당의 분위기나 사제들의 선택에 따라 다르겠지만요.

그리고 신부님은 개인적으로 성찬기도 제1양식에 대해서 어떤 입장이신가요?
[예컨대, 시대에 뒤진 것이므로 폐지하거나 되도록 사용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보시는지, 성공회의 독자적인 것이므로 역사적 차원에서 보존하는 것이 좋다고 보시는지, 좀더 그 가치를 살려야 한다고 보시는지?]

솔직히 저는 제1양식의 개인적(?) 영성이 제2양식의 보편적, 공동체적 영성에서 다소 간과되는 듯한 자기 성찰의 겸비함과 참회의 깊이를 잘 표현해 주고 있기에 좋아할뿐더러, 제2양식과 병행하여 더 널리 사용되어야 하리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제가 속한 감리교회의 컨텍스트에서 말입니다.

혹 제가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이 있다면 깨우쳐 주심 감사드리고요, 또 불쑥 던지는 무례한 질문에 널리 해량하심 기대합니다.

루시안 올림

+ 주님의 평화

루 시안님 반갑습니다. 좀 복잡한 일들이 겹쳐 일어나고 있는 통에 빠른 답변을 마련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 탓에 더 늦기 전에 시도하는 아래의 답변이 충실할 지 모르겠습니다. 매우 심도 깊고 매우 정확한 이해에 바탕한 질문을 주신 것에 우선 감사드리고,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1.
현재 루시안님이 예를 들어 설명하고, 질문하는 내용은 기본적으로 “1979년 미국성공회 기도서”(BCP 1979)를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보니 한국성공회에서 사용하는 용어와 혼란스러운 부분이 있어서 먼저 바로잡으면서 하겠습니다(이것은 편의를 위한 것이지 오류에 대한 정정이 아닙니다.)

즉 The Holy Eucharist: Rite One 은 “감사성찬례 형식 1”로 The Holy Eucharist: Rite Two는 “감사성찬례 형식 2”로 표시하는 것이 최근 한국성공회 기도서 개정과 함께 도입된 구분법입니다.

그리고 각각의 성찬례식에 들어 있는 성찬기도(Eucharistic Prayer)의 다양한 형태를 “양식”이라는 말로 구분합니다.

이에 따르면, 1979년 미국성공회 기도서는 감사성찬례 1형식과 2형식을 가지고 있으며, 1형식에 2개 양식의 성찬기도, 2형식에 4개 양식의 성찬기도를 가지고 있습니다.

2. 감사성찬례 1형식:
정 확히 지적하신 대로, 성찬례 1형식은 1549년 크랜머 대주교의 첫 공동기도서의 형식을 충실히 따르고 있습니다. 이것은 영국성공회의 대표적인 기도서인 1662년 기도서와는 사뭇 다른 점이 있습니다. 미국성공회가 이 형식을 사용하게 된 것은 여러 배경이 있지만 무엇보다도 미국성공회와 스코틀랜드 성공회와의 관계라는 특이한 역사 속에서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어쨌든 미국성공회는 최소한 1789년 공식 기도서 이후 1형식이 1928년 기도서까지 공식적인 성찬례의 내용이었습니다. 그러나 1979년 현행 기도서가 나오면서 이를 매우 약간 교정해서 1형식이라는 이름으로 남아 있게 되었습니다.

1형식의 성찬기도 1양식은 1549년 기도서의 영향 아래, 미국에서 1789년 이후로 계속 사용된 것으로, 그 주제는 분명하게 “그리스도의 희생을 통한 구속 사역”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그러나 1979년 기도서는 2양식을 만들어 첨부하면서 그 동안 강조되지 않던 “하느님의 창조 사건과 그리스도의 성육신 사건”을 부각시켰습니다.

3. 감사성찬례 2형식:
1979년 기도서의 핵심적인 내용입니다. 각각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A 양식은 전통적인 성공회 성찬기도의 신학을 이어 받아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에 초점을 두고 있습니다. B 양식은 히뽈리투스(사도전승)의 성찬기도를 현대화한 것으로 “하느님의 창조 사건과 그리스도의 구원 사건”을 극명하게 보여줍니다. C 양식은 미국성공회 예전학자의 작품으로 지속되는 하느님의 창조 사건에 깃든 하느님의 현현(계시)에 초점을 둡니다. 마지막으로 D 양식은 4세기 성 바실 전례에 기초한 것으로 동방정교회를 비롯해서 로마 가톨릭, 그리고 감리교와 루터교 등과 대화 속에서 함께 사용할 수 있도록 공인된 양식입니다.

4. 성찬례 형식의 선택:
성찬례의 각 형식과 양식에 깃든 의미는 위에서 설명한 바와 같고, 교회 공동체는 교회력(교회절기)의 주제에 따라 다양하게 선택하여 사용할 수 있습니다. 1형식은 여전히 고어체 영어를 사용하고 있으며, 2형식은 현대 영어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것입니다. 블로그에 번역해서 올려두었던 90년 말의 새로운 성찬례는 이런 구분을 따른다면 아예 3형식이라고 해야 할 것 같은데 “포용적 언어”의 사용과 창조로부터 이어오는 구속사의 전개, 동방 전례의 요소를 도입한 것들이 특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교인의 성향과, 교회의 시간(교회력/절기)의 주제, 그리고 신앙 훈련의 계획과 더불어 선택할 수 있는 융통성이 있습니다. 물론 개인의 차이에 따라서 좀더 좋아하고 깊은 영성을 느끼는 성찬기도가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모든 것을 충족시키는 성찬기도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1형식이 현대 신학적으로도 큰 문제를 지고 있다고 생각하지도 않으며, 2형식의 성찬기도들이 늘 적절한 것도 아니라고 봅니다. 그렇다면야 다른 성찬기도가 나올 이유가 없었겠지요.

미국성공회에서는 여전히 1양식을 사용합니다만, 2양식이 더욱 보편적입니다. 그러나 주일에 성찬례가 여러번 있는 경우 꼭 1양식을 아침 일찍 배정해두는 경우를 많이 봅니다. 그리고 특정한 절기에 사용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몇 퍼센트라고까지는 정확히 말씀드릴 수가 없겠군요.

5.
한국성공회의 경우는 조금 다르니 별도의 설명이 필요합니다. 1965년 기도서의 경우는 위에서 말한 1549년 기도서의 성찬례와 매우 비슷한 성찬례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1982년 새로운 성찬례가 나오면서, 처음으로 다양한 성찬기도 양식이 마련되었는데, 여기서는 성찬기도 2양식이 바로 1549년 전통의 1965년 기도서의 성찬기도를 현대말로 고친 것이었습니다.

6.
한국성공회의 공식기도서인 2004년 기도서는, 미국성공회와 비슷하게 2 형식의 감사성찬례를 가지고 있는데, 2형식이 짧은 성찬례인 반면에 1형식은 4개 양식을 갖고 있습니다. 1양식은 1549년/1965년 성찬기도를 따르며, 2양식은 2000년 영국기도서에서 따왔고, 3양식은 성 크리소스톰 기도문을 따랐다는 1982년 미사 예문의 3양식을 좀더 손질한 것이며, 4양식은 미국성공회의 경우와 같이 에큐메니칼 감사기도로 인정받고 있는 성 바실 전례를 이용한 것입니다. 그런데, 가만 보니 우리 신학의 반성에서 나온 것이 없군요. “우리 기도서에 우리 신학의 전통이 없다.” 저로서는 매우 안타까운 부분입니다.

7.
성공회 사제 혹은 신자들 가운데 로마 가톨릭 미사에 대한 동경심을 갖는 분들이 있습니다만, 제가 알고 느끼기로는 극소수에 불과하고 상당히 편협한 생각을 가진 분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저는 어느 교단의 전통의 성찬례이건 서로에게서 배우며 자기 전통을 풍요롭게 하기를 격려하고 실천할 지언정, 교회 공동체가 함께 합의하여 교회의 전례의 근간으로 세운 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개인적인 신심 행위나 기도를 위해서 다른 교단의 기도나 성찬기도를 사용하는 것도 별 문제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8.
성공회는 원칙적으로 성찬례를 공동체를 통한 하느님 예배라고 생각하는 까닭에 사제가 혼자서 드리는 이른바 “개인 미사”를 허용하지 않습니다. 기본적으로 성찬례는 은총의 나눔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굳이 사제 자신의 신심 행위로서 개인 미사를 드리겠다는 것을 강제로 막을 방도는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성공회에 그런 분들이 얼마나 될 지 모르겠습니다만.

9.
개인의 기도를 위해서는 성공회는 훌륭한 “시간 전례”(Liturgy of Hour 성무일도) 전통을 발전시켰습니다. 크랜머 대주교는 이를 수도원의 전유물이 아니라 일반 신자들이 모두 사용할 수 있도록 했고, 그 형식 또한 공동체 예배 형식이었습니다. 그러나 시간전례-성무일도의 전통은 이른바 일반 신자들의 공동체 전례인 “캐시드럴 전통”과 소규모 혹은 개인적 기도인 “수도원 전통”의 시간전례로 나뉘어 발전했으니 서로 보완하며 사용할 수가 있겠지요.

10. 뭐 이리저리 세면서 답변이 장황해졌습니다. 아무쪼록 도움이 되었기를 바랍니다.

마음을 드높이, 주님을 향하여 (Sursum corda. Habemus ad Dominum)

주낙현 신부 합장

Written by skhfaq

5월 22, 2005 at 3:42 오후

전례의 보수성과 신학의 진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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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준님의 질문 1.

대한성공회는 제가 알기로 고교회파가 우세한 것 같은데 전례와 전통 면에서 보수적인 교회가 어떻게 가장 진보적인 교단이라는 평가도 함께 얻고 있는 것인지, 내부에서 어떻게 조율되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로마가톨릭에서는 얼마전에 시노드가 열렸었더군요.) 신자로서 관심두는 점은 본당공동체가 항구적인 사목지향성 없이 신부님의 성향에 따라 운영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도 되기도 하네요.

답변의 시도 1.

성공회는 아시다시피 예전적인 전통을 강조하며, 이것을 신앙 생활의 매우 중요한 축으로 삼고 있는 그리스도교단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조심스럽게 살펴야 할 것은, 전통이 늘 보수적인 것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보수적인 전통도 있고 진보적인 전통도 있지요. 또한 옛 생활의 습관이나 관습을 지켜 나가는 것이 곧바로 어떤 신학적인 태도의 보수성과 늘 직결되지는 않습니다. 성공회와는 반대로, 예배 전통에 대해서 아주 “진보적” 혹은 흔히 말하는 “개혁적 전통”에 있는 교단들이 신학에 있어서도 “진보적”이라고 말할 수는 없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보수성”이라는 것이 옛 것의 올바른 전통을 지키는 것이라면, 성공회는 기꺼이 보수적이 되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그 전통 속에는 복음에 대한 신앙인의 응답과 실천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것을 올바른 것으로 여기며 따르는 것이 한편으로는 전통에 대한 “보수성”이면서, 현실적으로는 그 응답과 실천이 우리 사회와 교회 안에서는 “진보성”으로 드러날 수 있다고 봅니다. 이 장면에서 우리는 보수성과 진보성이라는 표현이 교회나 신앙 안에서는 별로 중요한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 성서와 교회의 전통이 보여준 신앙적 가치들을 어떻게 살아가고 있느냐 하는 점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신앙인들은 자신의 신앙 생활의 틀을 지워주는 하나의 전통을 선택하거나 그 안에서 살아갑니다. 성공회는 그 틀 가운데 하나가, 전통적인 예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전통적인 예전 속에서 하느님을 예배하고 말씀을 듣는 경험을 하면서 우리의 신앙과 실천을 키워나갑니다. 그 올바른 신앙의 실천이 하나의 진보적으로 비친다면, 성공회는 진보적이기를 늘 “보수”할 것입니다.

곁들여있는 “시노드”에 대한 질문입니다.

로마 가톨릭 교회의 시노드는 수십년 만에 한번씩 열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동안의 문제점들과 사회의 변화들을 어떻게 수용할 것이며, 대처할 것인가를 논의하고 사목적인 방향을 결정하기도 합니다.

수십년 만에 열리는 로마 가톨릭의 시노드에 비해서, 성공회는 거의 1년마다 시노드를 개최합니다. 그것이 바로 교구 의회이고, 전국적으로 열리는 관구의회입니다. 성공회는 의회민주주의를 교회 정치에 가장 먼저 적용시킨 교단 가운데 하나입니다. 이를 통해서 의견을 조율하고, 사목적인 전망들을 나누며 함께 대처해 나갑니다.

또한 성공회는 성직자 개인의 사목적인 성향에 따라 교회의 사목 활동을 결정짓지 않습니다. 현재의 성직자를 파송하는 인사 원칙 자체가 바로 교구 전체의 사목적인 방향에서 결정되는 것이며, 그 교회의 사목은 다시 성직자 개인이 아니라 교회위원회를 통해서 결정되고 운영이 됩니다. 성공회에서 성직자는 교회 사목의 “지도자”(leader) 이지, “소유자”(owner)가 아닙니다.

물론 현장 사목의 문제에서 이런 원칙을 적용하는 과정에서는 여러 조건과 상황에 따른 격차가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모든 적용과 실천의 과정에서 나타나는 불가피한 것입니다. 교단을 떠나서 그런 문제점들은 어디나 존재하는 것이지요.

Written by skhfaq

10월 6, 2003 at 1:09 오후

성공회, 성직자, 호칭, 복장, 교회 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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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찬미 예수 그리스도

좋은 질문 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질문에 응답하는 것도 제가 큰 도움이 되고 기쁨입니다. 그러니 질문하시는 분에게는 감사할 일이지요. 시간이 부족하지만 기쁜 일은 시간에 구애받지 않지요. ^^

[김경현님이 남기신 글]

평소에 느끼는 궁금한 점이 여러가지 있는데,

첫째,결혼하신 사제분들도 주교가 되실 수 있는지요?(Orthodox Church에서는 결혼하신 사제들은 주교가 될 수 없다고 알고 있습니다만…), 그리고 사제에서 주교가 될려면 어떤 조건을 갖추어야 하는지요?

성공회는 성직자의 결혼 유무와 관계없이 주교가 될 수 있습니다. 말씀하신대로 정교회는 독신 사제만이 주교가 될 수 있지요. 주교의 조건은 한국성공회의 경우 연령과 사목 경험 등의 기준이 있습니다. 이는 물론 나라마다 다르지요. 로마 가톨릭과는 달리 성공회는 교구 의회를 통해서 성직자 대표와 평신도 대표에 의해 선거로 뽑습니다.

둘째, 성공회는 성직자들의 청빙제가 아니고, 교단에서 발령을 내고 부임을 하는데, 이때 한 부임지에서의 임기가 정해져 있는지요? 또한 본인이 원하면 그 부임지에서 평생동안 장기사역을 하실 수 있는지요?

기본적으로 파송제가 한국성공회의 인사방침입니다만, 최근 관구 헌장의 개정에 따라 조건부 청빙제를 허용하기도 합니다. 파송제라 하더라도 교구장과 교회위원회 등과 충분한 협의를 거치게 되어 있습니다. 또 대체로 임지에서 4-5년 정도 머물게 되지만 더 길 수도 있습니다. 더욱 길게 할 수 있는 여지는 있지만 아직 현실적이지는 않습니다.

셋째, 대단히 외람된 질문이지만, 성공회 성직자들의 사례비는 각기 시무 하시는 교회의 재정에서 지급이 되는지요, 아니면 교단에서 일괄적으로 지급이 되는지요? (실례되는 질문인 것 같아 죄송합니다).

이 부분은 제 답변의 영역이 아닌 것 같군요. 죄송합니다.

넷째, 다른 개신교단에서는 성직자를 목사(pastor)로 부르고, 성공회,정교회,천주교에서는 사제(priest) 또는 신부라고 부르는데, 그 개념적,역할적 차이는 무엇인지요?

성공회에서도 역시 성직자를 pastor라고 합니다. 성직자는 기본적으로 목자(pastor)의 사명을 띄고 있기 때문입니다. Priest란 말은 사실 presbyterious(장로, 목사)에서 나온 말이지요. 오히려 사제라는 우리 말이 독특한 것이죠. 이는 신자들의 생각과 의견을 하느님께 고하는 특정한 담당자 역할을 한다는 종교학적인 의미가 강하다고 봅니다. 만인사제설은 이러한 특정집단의 특권의식을 넘어서려는 노력이겠지요. 사실 성공회나 로마 가톨릭, 개신교는 모두 성서에 나타난 만인사제설을 기본적인 사제직의 교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개신교에서 안수받는 성직자의 구별이 있듯이 성공회에서도 이 안수받은 성직자의 구별과 역할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신부(Father, 神父)라는 말은 호칭이지요. 신앙을 위한 영적 아버지와 같은 분이라는 의미겠지요.

다섯째, 성공회나 천주교, 정교회의 신부님들은 양복의 윗도리안에 와이셔츠대신 흰색의 플라스틱으로 목을 감싸는 셔츠(천주교 신자들은 로만 칼라 셔츠라고 부르더군요)를 입는데, 그 의미와 유래와 명칭을 정확하게 알고 싶습니다. 그리고 왜 목사님들은 그 셔츠를 잘 입지 않는지요? (불법인가요?)

이른바 로만 칼라 셔츠(그저 성직 셔츠라고 하지요) 성직자들의 평상복을 간소화한 것이지요. 흰색 속옷에 캐석(혹은 수단)이라는 검정색의 가운같은 옷을 입는 것이 성직자들의 평상복이었습니다. 이걸 간소화해서 셔츠로 개량한 것이라 할까요. 사실 성직자의 옷은 장로교 등 여러 개신교도 착용했습니다. 재세례파의 경우도 비슷한 옷을 입었지요. 외국에서는 개신교의 많은 성직자들이 이런 성직 셔츠를 착용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감리교 장로교 성직자들이 이 성직 컬러(clerical collar)를 착용하지요. 몇년 전 우리 나라 개신교 일각에서 개신교만의 독특한 성직 셔츠를 디자인해서 보급시키려던 노력이 있었습니다.

여섯째, 이 질문은 주제밖의 질문입니다만, 성공회가 다른 개신교단보다 아름다운 예식과 훌륭한 복음주의적인 전통들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개신교단들보다 왜 한국내의 교세가 상당히 미약할까요?(물론, 한국은 장로교와 감리교의 선교역사가 더 긴탓이 주 원인이 되 수도 있겠지만요…), 그렇다면 현재 장로교가 절대적 강자의 위치를 차지하고있고, 장로교적 스타일과 마인드에 익숙한 한국에서는 성공회를 대부분 생소하거나 한국정서와는 맞지않는다는 일부 사람들과, 심지어 일부 장로교인들은 성공회를 이단시 하기까지하는 어처구니 없는 일들을 보았는데(저는 개인적으로 성공회가 표방하는 신앙노선과 중후한 예식들을 무척 좋아해서 성공회로 옮길 것을 고려하고 있는 중입니다만), 이런 다소 무지하고 비관적인 한국적 상황에서의 성공회의 성장전망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 하시는지요?

말씀하신대로 우리 개신교의 몇가지 경향과 관계가 깊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작은 가운데서도 성공회가 한국 사회 안에서 감당해야 할 사명이 있겠지요. 외형적인 성장에만 치중할 수만은 없다는 것이 성공회의 태도입니다. 그런 점에서 성공회라는 교단 자체의 성장 전망은 어둡기도 하고 밝기도 합니다. 교회가 몸집 불리기에서 자유롭기에 좀더 복음에 충실할 수 있지 않을까요? 수적인 성장이 곧 복음적이라는 공식이 성공회에서는 낯설군요.

도움이 되셨길 바랍니다.

주님 안에서 하나된 형제 주낙현 부제 드림 ^^;

Written by skhfaq

1월 21, 2001 at 12:24 오후

성공회와 복음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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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카엘님께서 남긴 내용]

복음주의 라는 말을 많이 합니다. 부제님께서는 성공회가 과연 복음주의를 따르고 있는지 말씀해 주십시요 그리고 성공회는 2가지 종류가 있다고 존 스토트 목사님은 말씀하고 계십니다. 자신은 복음주의 계열의 성공회 성직자요, 다른 종류는 영국국교라고 말씀하고 계시는데요. 한국에 전파된 성공회는 어느 계열인지 궁금합니다.

+ 그리스도 예수님 찬미

좋은 질문 주셔서 감사합니다.

우선 몇가지 개념을 찬찬히 살피고 생각해 봅시다.

“복음주의”(evangelicalism)란 무엇일까요? 복음주의란 말그대로로만 신앙에서 그 어떤 것보다 복음의 말씀에 충실하자는 뜻이겠지요. 그런데 교회가 복음에 충실하지 않다면 그건 교회로 보기가 어렵겠네요. 그런 점에서 모든 교회는 기본적으로 복음에 바탕으로 한 복음주의 교회라고 생각합니다. 흔히 잘못 사용되고 있는 복음주의의 부정적인 혹은 긍정적인 함의들을 탈피하고자, 저는 굳이 “복음적”이라는 말을 자주 쓰지만, 성공회는 분명히 그리스도의 구원의 복음에 기초한 “복음적” 교회이지요.

그런데 성서에 대한 해석과 성서의 권위와 위치에 대한 견해가 분분해지면 그런 견해를 가르는 용어가 나타나기 시작했지요. 복음주의네, 자유주의네, 정통주의네 하는 것들이 그런 예이겠지요.

그러니 미카엘님이 말하는 “복음주의”란 그런 몇가지 신학적 혹은 신앙적 경향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이른바 “복음주의”계열도 그 성격이 너무 다양해서 딱 어떤 것이 복음주의다라고 말하기가 어렵습니다. 예를 들어 교회의 예전과 전통을 매우 중시하는 어떤 교회는 “예전적이며 복음주의적”인 교회라고 말하고 있으니까요.

굳이 성공회 안의 신학적 신앙적 경향을 거칠게 가르자면 복음주의적(저교회파 low church), 자유주의적(광교회파 broad church , 전통주의적(고교회파 high church) 경향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영국성공회의 존 스토트 신부는 세계적인 복음주의자로 알려져 있지요. 성공회 저교회파의 성격을 잘 드러내는 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국에서도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는 분이지요. 또 알리스터 맥그래스라는 성공회 신부이자 신학자도 성공회 복음주의의 대표적인 분입니다.

자유주의(이 용어는 참으로 오해가 많은데요, 각설하고)적인 성격을 가진 분들이 성공회에는 많이 있지요. 성서에 대한 문학적 비평을 폭넓게 받아들이려는 신앙 형태이지요. 특히 윤리적인 문제에 대해서 “상황윤리”라는 태도를 보이는 것으로 특징지을 수 있습니다. 실제로 이런 견해들로 인해 교회 일치 운동과 교회의 사회 윤리 및 종교 간의 대화가 많이 진척되기도 하지요.

그리고 고교회주의 혹은 전통주의라고 할 만한 경향이 있습니다. 글쎄요 미카엘님이 어디서 들었는지 모르지만 (성공회는 복음주의와 영국국교가 있다? – 이건 좀 억지이고 명백한 오해이네요. “영국국교”라는 말은 Ch of England 영국성공회에 대한 잘못된 명칭인데 – 세계성공회의 입장에서 보자면), 아마 교회의 예전 전통과 교리적 전통을 중요시하는 고교회적 경향을 가리키는 듯 합니다.

한국성공회는 이들 세가지 부류 가운데 고교회적인 성격을 많이 가진 선교사들의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물론 선교초기이지요. 하지만 이분들은 스스로를 복음적이며, 인간의 학문의 성과에 깊은 관심을 가진 분들이었습니다. 게다가 한국성공회 안에서는 성령운동과 더불어 민중신학적인 입장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신앙적 성격과 운동이 다양하게 전개되고 있습니다.

그러니 한국성공회는 어떤 경향이다하고 딱하니 말할 수는 없습니다. 한 사람의 신앙적인 경향과 형태도 딱부러지게 “당신은 복음주의요” “당신은 고교회파요”라고 말할 수 없다고 봅니다. 사실 고교회적인 경향이 이해한 깊은 영성과 복음주의가 있기 마련이요, 복음주의적인 경향에서 체험하고 있는 전통적인 예전과 예배에 대한 존중과 사랑이 있기 때문이지요.

오히려 아쉬움이 있다면, 한국의 교회(개신교며 천주교를 막론하고)는 너무 내편 네편을 분명히 가르려는 것 같고, 쉽게 “딱지붙이기”(labeling)을 하는 것 같아요. 그러다보면 신앙에 녹아든 그 깊은 맛과 의미를 알지 못하게 될 우려가 있지요. 저는 복음주의자를 신앙적 확신에 찬 신앙인으로 보고 존경합니다. 저는 자유주의자를 세상에 대한 깊은 신앙적 고민과 결단으로 살아가는 용기있는 신앙인으로 보고 감탄합니다. 저는 교회의 아름다운 전통과 교리를 붙들과 그 깊은 의미를 숙고하며 체험하는 신앙인들을 사랑합니다.

저는 어느 편에 서있나요? 모르지요.

주님의 그 넓은 사랑 안에서 주낙현 부제 드림 ^^

Written by skhfaq

1월 21, 2001 at 12:19 오후

미사, 성찬례에 대한 간단한 설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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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카엘님께서 남긴 내용]
부제님 안녕하세요.
오랬만에 글을 적습니다.
다름이 아니오라 저희 모임에서 발표를 해야 하는데 미사에 관한 내용입니다.
저희 성공회에서 드리는 거룩한 미사에 대한 의미와 개신교회에서 드리는 예배의 차이와 성서적 의미를 짧게 알고자 합니다. 말씀의 전례와 성찬의 전례로 드리는 천주교회나 성공회식의 미사와 개신교의 예배는 약간은 다른것 같습니다… 그 미사라는 말의 의미를 알고 싶습니다.. 부제님 강건하십시요..

그리스도의 형제된 성프란시스성당, 미카엘 드림

+ 주님의 평화,

아기 예수님의 탄생을 기다리는 대림절입니다. 설레는 마음으로 힘없고 천진한 아기로 오신 예수님을 찬양합니다.

먼저 답변이 늦은 점 대단히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좀더 생각을 해서 성실한 답변을 올린다고 미루다 보니, 답변은 고사하고 질문하신 분만 지치게 만들고 있군요. 대단히 죄송합니다.

성공회는 초대교회가 그랬던 것처럼 성찬례를 매우 중요하게 여깁니다. 성찬례 안에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죽음, 그리고 부활을 기념하기 때문입니다. 이 성찬례는 다양한 이름이 있습니다. 미카엘 형제께서 물으신 미사(Missa)와 감사제(Eucharist), 주의 만찬(Lord’s Supper), 그리고 거룩한 교제(Holy Communion) 등이 그리스도교 예배의 핵심인 성찬례의 다양한 이름들입니다.

먼저 ‘미사’라는 말에 대한 해명이 필요하겠군요. 사실 이 말은 그 뜻이 정확하지 않습니다. 다만 예배 말미에 외치는 “Ite, missa est”(이제 끝났습니다)라는 말에 비추어 파견의 의미를 갖지 않았나 추측합니다. 어떤 분들은 라틴어 mittere(파견하다)의 변형인 missio에서 나왔다고도 하지만 확실하지는 않습니다. 어떤 점에서 미사는 정체불명의 용어라는 말이지요. 하지만 성찬례(Eucarist)를 일컬어 약 4-5세기부터 ‘미사’라는 말을 쓰던 흔적이 있다고 합니다. 하여튼 미사라는 말은 그리스도교의 성찬예배에 대한 별칭이라고 하면 좋을 것입니다. 하지만 최근에는 이 용어를 잘 쓰지 않는 경향이 있습니다. 성공회는 더욱 그렇습니다만 아직 많이 쓰고 있는 현실이지요.

미사와 예배를 구별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앞서 말한대로 예배에 대한 그리 적절치 못한 별칭이 미사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핵심은 예배입니다. 예배는 구약성서와 신약성서에 다양한 근거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이 우주를 창조하신 하느님께 깊은 경의와 존경을 표하는 모든 행위를 말합니다. 예배는 모든 그리스도인의 의무라는 점에서 leiturgia라고도 합니다. 바로 예전/전례를 뜻하는 liturgy의 어원이지요. 즉 예배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하느님을 자신의 창조자요 주인으로 모시며 깊이 사랑하는 것을 표현하는 모든 행위라고 할까요? 이런 예배에 대한 우리 인간의 자세는 요한복음 4:24을 참조하실 수 있습니다. 아주 익숙한 구절입니다.

이렇게 보면 로마 가톨릭과 개신교의 예배가 형태상으로는 많은 차이가 있지만 그 핵심은 큰 차이가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다만 개신교는 16세기 종교개혁의 과정에서 로마 가톨릭의 중세적인 예배 전통을 거부하면서 매우 단순한 예배 형태를 취했습니다. 이들이 취한 예배의 모양은 매우 다양했습니다. 영국의 경우 로마 가톨릭의 미신적인 예배 행위를 제거하는 동시에 초대교회에서 발전되었던 예배 전통을 유지하고자 했습니다. 그러다보니 형태적으로는 로마 가톨릭과 흡사한 면이 많지요. 하지만 이것은 로마 가톨릭과 흡사한 것이 아니라 초대교회에서 발전된 예배에 되돌아가고자 한 결과라고 해야 옳습니다. 또한 루터교도 전통적인 예배 양식을 많이 받아들였지요. 이른바 개혁교회들은 좀더 급진적인 예배 개혁을 단행했지만, 역시 초대교회의 다양한 예배 전통에 기대고 있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성공회의 전통적인 아침기도(조도)양식과 개신교 예배(성찬례를 생략한)이 매우 흡사하다는 것입니다. 한번 기도서를 펼쳐놓고 비교해 보시지요. 이 상호간의ㅌ 영향사에 대한 연구도 있습니다. 다만 개신교가 말씀의 선포에만 집중한 나머지 성찬례에 대한 인식이 소홀했던 것은 아쉬운 일입니다. 하지만 요즘 들어서는 성찬례를 자주 거행하며 말씀과 성찬이라는 예배의 균형과 그 관계를 재정립하려는 시도가 자주 엿보입니다.

윌리암 템플 캔터베리 대주교는 “예배한다는 것은 하느님의 거룩함에 힘입어 양심을 되살리는 것이며, 하느님의 진리를 마음의 양식으로 삼는 것이다. 또한 하느님의 아름다움을 통해서 잡생각을 비우는 것이며, 하느님의 사랑에 마음을 개방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하느님의 뜻에 나의 의지를 바치는 것이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이 말에 성실한 그리스도인인지를 항상 되물으며 성찰했으면 합니다.

도움이 되셨길 바라며.

그리스도의 교제(communion) 안에 있는 주낙현 요셉 부제 드림 ^^

Written by skhfaq

12월 5, 2000 at 1:16 오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