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회 질문 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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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회 예배 참석 – 성공회와 장로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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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셨는지요. 주낙현 신부님.

오랜만에 신부님의 홈페이지에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제가 궁금한 것은 성공회 서울대성당을 나가고 싶은데,적응할 수 있을지 궁금합니다.전 장로교에서 신앙생활하기 때문에, 초대교회의 전통을 갖고 있는
성공회 예배에 적응할 수 있을지 걱정입니다. 성공회 예배와 장로교 예배의 차이점을 알려주시면 좋겠습니다.

그 다음 궁금한게 하나 더 있습니다.

전 감리교 장로가 운영하는 개신교계 달력회사에서 상호쇄입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미국의 다양한 한인 교회들을 만나게 됩니다. 침례교,장로교.오순절교회등 다양한 교파들을 만났지요..

그러다가 미국성공회에 속한 어느 한인 교회에서 상호쇄입을 부탁해서 작업한 적이 있는데, 이상한 점은 그 교회를 목회하는 성직자가 자신을 담임목사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약도에 적은 미국교회명에는 Episcopal Church 즉, 미국성공회라고 되어 있고, 성공회에는 목사가 없는데 말이죠..어떻게 된 것일까요..

좀 쓸데없는 질문인지 모르지만,무척 궁금합니다.

+ 주님의 평화

김재홍님 다시 만나게 되어 반갑습니다.

성공회에도 많은 관심을 가지고, 직접 예배에 참석하시려 한다니 기쁩니다. 예배 참석에 대해서 너무 걱정하시지 말고, 그저 참석해서 그 흐름에 맡겨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서로 다른 점들이 무엇인지를 스스로 발견하고, 어떤 점들이 새롭고 좋은 점들인지, 어떤 점들이 전혀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인지, 그런 궁금점들을 스스로 정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런 가운데 나오는 문제들을 가지고 함께 이야기하면 더욱 좋을 것 같습니다.

우선은 공통점에서 출발합시다. 성공회와 장로교 예배는 우선 하느님의 백성이 하느님을 예배하기 위한 시간이요 공간입니다. 그리고 그 구조면에서 하느님께 기도를 드리고, 찬양하며, 말씀을 읽고, 말씀의 풀이를 들으며, 주님께서 말씀하신대로 성찬을 나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예배는 전통적으로 “말씀의 예배”와 “성찬의 예배” 둘로 구성됩니다. 물론 세분하지만 앞 뒤로, “시작 예식”과 “마침 예식”이 들어가겠습니다만… 그러니 다시 설명하자면… 시작예식 – 말씀의 예배 – 성찬의 예배 – 마침(파송) 예식의 구조입니다.

장로교 예배 – 실은 한국 장로교 예배의 한 편향일 뿐입니다만 – 는 이 가운데서 “말씀의 예배”에 집중하고 있다고 봅니다만, 시작예식과 마침예식의 요소도 들어 있습니다. 이런 구조는 어떤 점에서 성공회가 가지고 있는 성무일과의 아침기도 그리고 저녁기도와 비슷한 형태입니다.

그러니 현 상황에서 큰 차이점을 말하라면, 성공회는 매 미사때마다 성찬의 예배를 거행하면서, 말씀의 예배와 성찬의 예배라는 전통적인 예배의 틀을 유지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성공회 예배는 기도서를 중심으로 진행됩니다. 이미 정해진 예전 텍스트를 중심으로 예배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성공회와 같은 예전적 교회들은 이러한 텍스트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이것이 비예전적 교회와의 차이점입니다만, 근래에는 개신교회들도 이런 예전 텍스트를 새롭게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예전적 교회와 비 예전적 교회의 차이점을 극복하기 위한 중요한 작업이 WCC의 리마 예전을 통해서 나왔습니다. 가능하다면 이 예식서를 구해서 일독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예전은 텍스트도 아니요, 설교 듣기도 아닙니다. 예전과 예배는 무엇보도 하느님의 백성인 많은 사람들이 함께 모여서 하느님의 구원 행동을 축하하며 감사하고, 그 구원의 행동에 스스로를 적극적으로 참여시키는 행위입니다. 이러한 전망에서 말씀도 듣고, 성찬도 함께 나누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교회에 가시면 안내를 하시는 분들이 예배 내내 도와주시리라 생각합니다. 그런 분을 만나지 못하면, 주위 분들에게 요청하시기 바랍니다. 성찬 참여의 문제는 실제로 교회마다 신부님마다 조금씩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으며, 영성체에 대해서는 사전에 신부님과 면담을 하시기 바랍니다. 신부님들께서 흔쾌히 상담에 응해 주실 겁니다.

두번째 질문에 대해서 짧게 답변드립니다. 그 교회가 어느 교회를 지칭하는 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제가 알고 있는 정보로 추측하건데… 미국에 있는 한인순복음교회 하나가 목사님과 더불어 미국성공회로 들어온 일이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가지 교회의 습속상, 그리고 한인이미자 70%가 개신교신자인 이민사회의 특수성을 고려해서 예전 교회의 관습과 명칭들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물론 점차로 이를 바꾸어 나가기를 희망하고 있기도 합니다만). 실제로 영어 표현상은 하등의 문제가 없습니다만, 우리나라에서는 성직자의 호칭 문제가 교회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것인양 보이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도움이 되었길 바랍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된 형제,

주낙현 신부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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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skhfaq

10월 22, 2005 at 3:59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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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회의 모호한 정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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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준님의 질문 4

via media를 택하는 성공회의 특성상 신자들도 성공회에서 태어나고 자란 교인들도 있지만 천주교에서나 개신교에서 옮겨온 이들도 꽤나 많은 것 같습니다. 즉, 먼저 그리스도교를 어떤 형태로든 접하지 않고서는 성공회를 이해하고 다가가기가 너무 어렵지 않느냐 하는 이야기입니다. 특히 예배전례문이나 기도서도 고어투가 많아 어렵기도 하고 신자들의 정체성도 천주교에서 온 신자는 성만찬을 천주교의 희생제사 그대로 이해하고 있을 수 있고 개신교에서 온 신자들은 일부는 그저 예식이 아름다워 올 수도 있고 여하튼 성공회의 정체성이 너무 복잡하지 않느냐 하는 것입니다.

답변의 시도 4

좋은 지적이십니다. 현재 성공회 신자의 많은 분들이 천주교와 다른 개신교파에서 옮겨 오신 분들입니다. 그러나 역시 성공회를 통해서 처음 그리스도교에 입문하시는 분들도 많습니다. 어떤 조직과 공동체에 들어간다는 것은 늘 새로운 경험과 도전을 요구합니다. 그런데 그 조직이 좀더 광범위하게 알려져 있으면 그에 대한 거부감이 적고, 동화되는데도 시간이 적게 걸리는 것이지요. 우리 나라의 교회 사정상 천주교나 개신교가 그런 예이지요. 아마도 성공회가 우리 사회에서 작은 교단으로 존재하기 때문에 나온 걱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이것은 성공회가 좀더 적극적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다가서려는 노력과 다양한 신앙교육을 마련해야 한다는 애정 어린 비판으로 들립니다. 그런 비판에 감사드립니다.

성공회는 현재 기도서를 개정하는 과정에 있습니다. 언어의 문제는 이런 점들을 통해서 조금씩 해결되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실제로 언어도 어떻게 익숙해지느냐에 따라서 전혀 다른 결과를 보여줍니다. 예를 들어 개신교는 아직도 고어투가 지배하고 있는 한글개역판 성서를 사용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니 모든 언어나 예식, 그리고 어떤 정체성에 대한 선언이 쉽고 명확해야 한다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어떻게 우리의 신앙을 좀더 깊이 할 수 있을까 하는 관심에서 이런 일들을 다루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성공회는 이런 점에서 교리 자체에 대한 논쟁을 삼가는 전통을 갖고 있습니다. 분명히 로마 가톨릭 교회의 “실체 변화 교리”(화체설)을 받아들이지 않지만, 한 사람의 신앙인이 갖고 있는 이 문제에 대한 신앙적 확답은 사실 매우 폭넓어서 교리적인 몇가지 선언과 설명으로 담아내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개신교의 성찬례 분위기를 생각해 보십시오. 같은 교단의 교회라 할 지라도 그에 접근하는 태도들이 얼마나 다양합니까?

성공회는 이러한 다양성을 어떻게 하면 한 공동체 안에서 서로 격려하고 축하며 나눌 수 있을까를 고민합니다. 정체성은 그러므로 어떤 교리적인 선언에서나 확고한 신념에서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굳이 성공회에게 자신의 정체성을 표현하라고 한다면, 우리는 “성서와 교회의 역사적인 전통 안에서 하느님께 예배하는 공동체”라고 말할 것입니다. 그 예배 가운데서 우리는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새로운 실천을 다짐하면서 신앙의 실천을 통해서 하느님께 다가서려고 노력하는 공동체인 것이지요. 저는 그럼 점에서 “비아 메디아”(via media)를 어떤 가운데의 길, 중도로 표현하는 것보다는, “길 가운데” 있는 신앙인과 교회, 즉 하느님을 향해서 “계속 길을 걸어가는” 태도로 이해하고 싶은 충동이 많습니다. 물론 이것은 제 개인적인 생각입니다만, 아마도 성공회의 다양성과 어떤 점에서 혼란스러운 것 같은 그 정체성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Written by skhfaq

10월 6, 2003 at 1:13 오후

성서와 교회 전통의 권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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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님의 평화

마지막 질문과 답변입니다.

질문 4.

가톨릭은 성서와 함께 그 보충적 권위로서 성전(聖傳)을 인정하고 있는데요.. 이에 비해 개신교 다른 교파들은 오로지 성서만을 유일한 권위로 보고 있지요.. 이 부분에 대하여도 성공회의 입장을 알고 싶군요. 성공회도 聖傳을 인정하는지요? 그렇다면 그것은 종교개혁 이전의 것까지 포함하는지..? 또 가톨릭의 성전과 다른 점이 있는지.?


답변 4.

로마 가톨릭(천주교)과 개신교의 성서 범위는 조금 다릅니다. 그것을 질문하신 분께서는 성전(聖傳)이라고 하셨는데, 이런 용어를 쓰면 너무 범위가 넓어집니다. 고쳐 말하자면 첫 번째로 성서에서 정경으로 인정하는 문제가 되겠고, 둘째로 교회의 전통에 대한 권위의 차이가 질문이겠는데요?

먼저 로마 가톨릭은 구약의 많은 경전 가운데 여럿을 제 2경전으로 표현하며 정경의 권위를 부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다른 개신교들은 이들을 모두 외경으로 표현하여 성서 연구와 이해의 참고 자료로만 인정하고 있습니다. 성공회는 외경에 대해 경전적인 권위를 부여하지 않습니다만, 신앙 생활에 도움이 되는 것으로 보고 읽기를 권장합니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지요.

둘째 교회의 전통에 대한 권위의 문제는 구체적으로 지목하지 않으면 논란이 많아집니다. 다만 성공회의 접근 태도는 교회 가르침을 위한 권위의 최상의 근거는 성서입니다. 이와 병렬하는 것은 없습니다. 그리고 그 바탕 아래 교회의 전통인 외경과 교부들의 신학, 그리고 공의회의 결정과 신학적 저술 등을 살핍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언제나 위험은 있습니다. 최상의 근거인 성서 자체에 대한 이해와 해석이 분분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권위는 어디서 구해야 할까요? 이것은 모든 그리스도교회의 고민이요 질문이 아닐까요? “우리 권위의 원천은 성서다”라고 말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그러니 성서 연구와 더불어 오랫동안 기도하며 말씀을 연구하며 사목한 결과인 교회의 전통을 쉽게 무시할 수도 없는 것입니다. 성서와 교회의 전통은 이런 상관 관계 혹은 대화의 관계에 있습니다.

어쩌면 더 중요한 것은 기도인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유명한 신학적 등식이 있지요. “기도의 법은 신앙의 법”(Lex orandi, Lex credendi). 환원주의에 빠지는 것을 경계하면서 말한다면, 하느님을 향한 기도(예배)야 말로 신앙의 요체요 권위가 아닐까요?

도움이 되셨길 바랍니다.

한 분 주님의 사랑 안에서 주낙현 신부 드림 ^^

Written by skhfaq

8월 15, 2001 at 2:39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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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사, 성찬례에 대한 간단한 설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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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카엘님께서 남긴 내용]
부제님 안녕하세요.
오랬만에 글을 적습니다.
다름이 아니오라 저희 모임에서 발표를 해야 하는데 미사에 관한 내용입니다.
저희 성공회에서 드리는 거룩한 미사에 대한 의미와 개신교회에서 드리는 예배의 차이와 성서적 의미를 짧게 알고자 합니다. 말씀의 전례와 성찬의 전례로 드리는 천주교회나 성공회식의 미사와 개신교의 예배는 약간은 다른것 같습니다… 그 미사라는 말의 의미를 알고 싶습니다.. 부제님 강건하십시요..

그리스도의 형제된 성프란시스성당, 미카엘 드림

+ 주님의 평화,

아기 예수님의 탄생을 기다리는 대림절입니다. 설레는 마음으로 힘없고 천진한 아기로 오신 예수님을 찬양합니다.

먼저 답변이 늦은 점 대단히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좀더 생각을 해서 성실한 답변을 올린다고 미루다 보니, 답변은 고사하고 질문하신 분만 지치게 만들고 있군요. 대단히 죄송합니다.

성공회는 초대교회가 그랬던 것처럼 성찬례를 매우 중요하게 여깁니다. 성찬례 안에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죽음, 그리고 부활을 기념하기 때문입니다. 이 성찬례는 다양한 이름이 있습니다. 미카엘 형제께서 물으신 미사(Missa)와 감사제(Eucharist), 주의 만찬(Lord’s Supper), 그리고 거룩한 교제(Holy Communion) 등이 그리스도교 예배의 핵심인 성찬례의 다양한 이름들입니다.

먼저 ‘미사’라는 말에 대한 해명이 필요하겠군요. 사실 이 말은 그 뜻이 정확하지 않습니다. 다만 예배 말미에 외치는 “Ite, missa est”(이제 끝났습니다)라는 말에 비추어 파견의 의미를 갖지 않았나 추측합니다. 어떤 분들은 라틴어 mittere(파견하다)의 변형인 missio에서 나왔다고도 하지만 확실하지는 않습니다. 어떤 점에서 미사는 정체불명의 용어라는 말이지요. 하지만 성찬례(Eucarist)를 일컬어 약 4-5세기부터 ‘미사’라는 말을 쓰던 흔적이 있다고 합니다. 하여튼 미사라는 말은 그리스도교의 성찬예배에 대한 별칭이라고 하면 좋을 것입니다. 하지만 최근에는 이 용어를 잘 쓰지 않는 경향이 있습니다. 성공회는 더욱 그렇습니다만 아직 많이 쓰고 있는 현실이지요.

미사와 예배를 구별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앞서 말한대로 예배에 대한 그리 적절치 못한 별칭이 미사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핵심은 예배입니다. 예배는 구약성서와 신약성서에 다양한 근거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이 우주를 창조하신 하느님께 깊은 경의와 존경을 표하는 모든 행위를 말합니다. 예배는 모든 그리스도인의 의무라는 점에서 leiturgia라고도 합니다. 바로 예전/전례를 뜻하는 liturgy의 어원이지요. 즉 예배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하느님을 자신의 창조자요 주인으로 모시며 깊이 사랑하는 것을 표현하는 모든 행위라고 할까요? 이런 예배에 대한 우리 인간의 자세는 요한복음 4:24을 참조하실 수 있습니다. 아주 익숙한 구절입니다.

이렇게 보면 로마 가톨릭과 개신교의 예배가 형태상으로는 많은 차이가 있지만 그 핵심은 큰 차이가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다만 개신교는 16세기 종교개혁의 과정에서 로마 가톨릭의 중세적인 예배 전통을 거부하면서 매우 단순한 예배 형태를 취했습니다. 이들이 취한 예배의 모양은 매우 다양했습니다. 영국의 경우 로마 가톨릭의 미신적인 예배 행위를 제거하는 동시에 초대교회에서 발전되었던 예배 전통을 유지하고자 했습니다. 그러다보니 형태적으로는 로마 가톨릭과 흡사한 면이 많지요. 하지만 이것은 로마 가톨릭과 흡사한 것이 아니라 초대교회에서 발전된 예배에 되돌아가고자 한 결과라고 해야 옳습니다. 또한 루터교도 전통적인 예배 양식을 많이 받아들였지요. 이른바 개혁교회들은 좀더 급진적인 예배 개혁을 단행했지만, 역시 초대교회의 다양한 예배 전통에 기대고 있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성공회의 전통적인 아침기도(조도)양식과 개신교 예배(성찬례를 생략한)이 매우 흡사하다는 것입니다. 한번 기도서를 펼쳐놓고 비교해 보시지요. 이 상호간의ㅌ 영향사에 대한 연구도 있습니다. 다만 개신교가 말씀의 선포에만 집중한 나머지 성찬례에 대한 인식이 소홀했던 것은 아쉬운 일입니다. 하지만 요즘 들어서는 성찬례를 자주 거행하며 말씀과 성찬이라는 예배의 균형과 그 관계를 재정립하려는 시도가 자주 엿보입니다.

윌리암 템플 캔터베리 대주교는 “예배한다는 것은 하느님의 거룩함에 힘입어 양심을 되살리는 것이며, 하느님의 진리를 마음의 양식으로 삼는 것이다. 또한 하느님의 아름다움을 통해서 잡생각을 비우는 것이며, 하느님의 사랑에 마음을 개방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하느님의 뜻에 나의 의지를 바치는 것이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이 말에 성실한 그리스도인인지를 항상 되물으며 성찰했으면 합니다.

도움이 되셨길 바라며.

그리스도의 교제(communion) 안에 있는 주낙현 요셉 부제 드림 ^^

Written by skhfaq

12월 5, 2000 at 1:16 오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