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회 질문 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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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회다움과 성소 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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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흘전에 글을 올렸던 신부님후배입니다.

대학원 입시일정과 요강이 발표되니 약간 긴장이 되는군요.

아직 확신이 없기 때문이겠지요…

신부님도 개신교 출신이고, 개신교학교에서 신학을 하셨는데,

언제 어떤 이유로 성공회로 오게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혹시 실례되는 질문이라면 죄송합니다.)

전 아홉살부터 스물한살까지 개신교에서 성장했습니다.

자기정체성 형성에 가장 중요한 시기를 개신교에서 보내서인지,

아직까지 제가 성공회인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성경도 한글개역판이 훨씬 더 익숙하고,
(아직도 마르코복음, 루가복음는 어색하고, 마가복음, 누가복음이 더…..)

성공회성가보다는 찬송가가 더 편하죠..
(성공회성가는 잘 몰라요, 개신교 찬송가는 안보고도 부르는데… )

성공회는 우리집이 아닌 친척집같은 그런 느낌입니다.

서론이 길었군요…

“성공회다움”이 무엇일까요?

성공회에는 ‘성공회다운 무언가’가 있겠지요?

그 “성공회다움”을 지켜가는데 성직자의 역할이 중요한건 당연한 것이고…

아직까지 개신교가 더 익숙한 제가 대학원에 입학해도 되는지 모르겠군요..

하긴.. 성공회성직자 과정을 지원하는 사람들중에는

성공회에서 성장한 사람보다 어느날 갑자기(?) 온사람들이 많다고 하더군요..

몇년에서 몇십년을 개신교에서 있다가

어느날 갑자기(?) 성공회로와서 2-3년 신학공부를 해서 사제가 된 사람들이

과연 “성공회다움”을 제대로 지켜갈수 있을까요?

다른 사람들은 지켜갈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저는 자신이 없군요.

주위 사람들의 권유처럼 한살이라도 젊을때 얼른 대학원가는게 좋을지..

아님 “성공회다움”이 무언인지알고,

스스로 “성공회인”이라고 느껴질때 지원해야하는지 모르겠군요.

신부님께서도 성직자과정에 지원할때 많은 고민을 하셨겠죠?

신부님께서 느끼는 “성공회다움”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간단히 쓰려고 했는데… 아직 글솜씨가 부족해서 길어졌군요.. 죄송 ^^;

추신 : 처음 학군단에서 교육을 받을때 어느 선배가 한말이 생각납니다.
” 장교가 되기전에 먼저 군인이 되어라!!”
이말에 따르면.. 성공회사제가 되기전에 먼저 성공회인이 되어야겠죠?

+ 주님의 평화

안녕하세요? 성직과정을 위해 신학대학원에 진학하실 생각이시군요.
여러가지 고민이 지속될 줄로 생각합니다. 바라기는 이 준비 과정 속에서 성직에 대한 소명이 무엇인지를 다시 한번 돌아보고, 기도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제 자신이 성공회로 옮겨온 이유는 긴 이야기가 되겠지만, 또 어떻게 보면 아주 간단한 이야기가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다만 이 자리에서 한꺼번에 이야기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은 아닌 것 같고, 게시판 곳곳에서 그런 고민의 흔적을 드러낸 적이 있으니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한가지 여기서 언급한다면, 다른 교단에서보다는 성공회를 통해서 깊은 해방감과 하느님에 대한 체험을 했던 것은 사실입니다. 물론 이것은 그 동안 제가 성장해왔던 장로교나, 이후 로마 가톨릭 교회의 영향 속에서 발전되고 고민했던 어떤 것이 하느님의 어떤 뜻 안에서 드러난 것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성공회다움”에 대해 물으셨는데, 먼저 무엇이 “복음다움”인가에 대해서 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복음에 대한 한 표현과 삶의 한 방식으로서 하나의 교회 전통이 생겨나는 것이 때문입니다. 그러니 성공회 전통이란 그 역사적인 맥락과 상황 속에서 무엇이 복음적인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이에 대해 가능한 답변을 받아들여 교회 전통으로 발전시킨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성공회다움”이란 어떤 객관적인 사실이나 형태가 아니라, 그런 상황과 맥락의 전통 속에서 복음을 받아들이고 성찰하면서 얻어내는 어떤 과정” 중의 성격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현재 질문주신 “연”님의 성직 과정 지원은 이런 전통과 과정에 자신을 내어 맡길 수 있느냐와 관련된다고 생각합니다. 왜 굳이 다른 교단을 택하지 않고, 성공회를 선택했으며, 또 왜 굳이 성직의 길을 가려고 하느냐에 대한 정직한 물음이 선행해야 합니다. 그것은 이 게시판 여러 곳에서 누누이 말씀드린 것처럼 성소에 대한 식별 과정 속에서 진행해야 할 질문들이기도 합니다. 이 부분에 대한 하느님의 소명이 없거나, 스스로에게 분명한 답변이 없다면, 자신이 자라난 신앙 전통과 다른 교회에서 성직을 수행하는 것은 큰 문제가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성직은 개인적인 소명에 대한 응답일 뿐만 아니라, 어떤 특별한 전통 안에 있는 교회 공동체에 대한 책임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성공회 신자가 된지 몇 년이냐, 얼마나 성공회의 실제 교회와 관습에 익숙하냐 하는 문제는 오히려 부차적인 것일 수 있습니다. 앞서 말씀드린대로 성소 식별과 그 식별의 내용이 성공회라는 전통 속에서 화합할 수 있느냐가 중요하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교회의 관습에 익숙해진다는 것은 성공회의 전통과 신앙을 이해하는데 매우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신앙은 결국 하나의 생활화를 의미하는데 (특별히 성공회 전통 안에서는) 그런 신앙적 생활화의 틀인 교회의 관습과 예전은 한 사람의 신앙 형성에 큰 영향을 끼치기 때문입니다. 이 두 가지 다른 면들을 함께 살피셔서 특별한 결단을 내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바라기는 현재 출석하는 있는 교회에서 신부님과 이 문제를 매우 깊이 상의하셔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단순히 어떤 신부님들과의 개인적인 대화에서가 아니라, 교회 공동체의 기대와 그에 대한 책임의 시각에서도 자신의 소명을 살피는 일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좋은 결실이 있기를 바랍니다.

주님의 사랑 안에서

주낙현 신부 합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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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skhfaq

10월 25, 2003 at 1:17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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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제직 소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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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올해 28세로.. 대학 4학년에 다니는 이민영이라고 합니다.
군대에 있을적에..크신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서 힘들고 어려운
와중에서도 하나님의 신앙으로 동료 전우나 후임병들에게 작은 힘
이나마 보탤수 있었던… 보람있는 군대 생활을 했던 기억이 각박한
현실 때문에 그런지 모르겠지만 요즘들어 더욱 그리워져 옵니다.
사실…제대 후…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많이 시들해졌고…
사회에서는 오직 돈을 벌어야 한다. 높은 학점을…높은 TOEIC점수..를…
남에게 뒤쳐지지 말고 앞서가며 살아야한다…는 주위와 제 자신의 관념과
육적 영적 타락까지 겹쳐져 현재 저는 삶의 의미를 거의 상실하는 지경에
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다시 말해 무엇 때문에 살아야 하는가?라는 본질적인
문제에 다다랐고..보다 인간답게 돈이아닌..명예도 아닌 삶의 본질을 위해
무엇인가 극약 처방을 내려야할 시점에 와 있다고 판단이 되어 깊이 사색하여
도출해낸 삶의 이상이 바로 사제라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이웃의 아픔을..고통을 같이 나누는 삶…스스로의 한계를 절실히 느끼며
경건하게 겸손하게 열심히 노력하는 삶… 정말로 너무도 막연하지만 이러한
삶을 살고 싶은데…
하지만 제가 지금하고 있는 일은 자신을 위해..돈을 위해..명예를 위해…
모든 눈에 보이는 모든 대상을 욕구충족의 대상으로 삼고 생각하고 행동해온..
제 자신이 너무 서글퍼서 죽고 싶을 지경입니다. 꼭 이렇게 사는 방법밖에
없는 건지..제 자신이 너무 싫습니다.
신부님…사제가 되고 싶습니다.
어떻게 하면 될 수 있나요?

+ 주님의 평화

이민영 형제님 안녕하세요?

깊은 고민 속에서 사제직에 대해서 생각하시다니 기쁩니다.
한 인간의 근본적인 질문으로 “어떻게 살아갈까?”하는 것은
평생을 두고 따라다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하느님께 대한 신앙을 통해 누군가에게 새로운 힘과 용기를 주었다면,
그것이야말로 그리스도인으로서 훌륭한 사제직을 감당했던 것이겠지요.

이제 생애의 오랜 기간을 이런 삶에 투신하시겠다는 생각을 하셨다니 기쁩니다.

성소, 이른바 “거룩한 부르심”은 매우 다양합니다.
사제직이나 수도직이 그런 성소 가운데 하나요,
다른 여타의 직업을 가지면서 그 안에서 하느님의 일을 묵묵히 해나가는 것도 성소입니다.
그 어떤 직책이 더 훌륭하고, 더 낮은 것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사제직은 어떤 도피처라기 보다는 오히려
삶의 온갖 요소들과 부딪히고 대면해야 할 “전쟁터”라고 할까요?
그러나 거기에도 깊은 평화가 있지요.
전쟁을 겪진 않았지만, 전쟁을 알 때 평화의 깊은 의미를 알 듯이 말입니다.

사제 성소는 자신의 “다짐”과는 조금 차원이 다릅니다.
그것은 본래 “자심의 결심”이라기 보다는 히느님의 “부르심”이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사제직은 성소의 구체적인 형태인 까닭에 아주 현실적인 과정들이 필요합니다.
우선 자신의 신앙 생활을 교회 공동체에서 검증을 받아야 하고,
지도사제와 함께 기도 안에서 성소에 대한 분명한 식별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대학 공부를 마치고, 성직자가 되기 위한 신학공부를 대학원에서 해야하고,
그에 따라 부과되는 교회에서의 여러 가지 봉사직을 감당해야 합니다.
여기에는 물리적인 시간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노력과 수련도 소요됩니다.

이런 과정 속에서 사제직에 대한 성소를 다시 한번 되새겨 보면서,
비로소 하느님의 선물이요, 부르심으로서 사제직을 받아들인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점들을 깊이 생각하시고 성찰하셨으면 합니다.

그리고 그 첫 출발로서, 우선 출석할 교회를 정하시고,
자신의 희망과 다짐을 신부님과 나누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구체적인 말씀과 지도를 신부님께서 해주실 것입니다.

우선 필요하다면 저와 계속해서 연락을 해도 되겠지요?

시제직에 대한 희망이 거룩한 부르심을 통한 기쁨으로 피어날길 기대합니다.

몸소 수난의 길을 걸으신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

주낙현 신부 합장

Written by skhfaq

3월 25, 2002 at 10:48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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