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회 질문 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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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제 성소 나이 제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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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님, 안녕하세요?
저는 가톨릭 신자구요, 가톨릭 수도회에 있던 적이 있구요…
그런데 나이가 좀 많아서요..제가 69년생이거든요…
저 같은 사람도 성직에 지원할 수 있는 자격이 되나요?
답변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주님의 평화

함께 이야기할 수 있어서 반갑습니다. 성공회는 남성 여성은 물론, 나이에도 관계없이 성직에 지망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수도회 생활을 통해서도 이미 경험하셨으리라 생각합니다만, 성직은 자신의 열망이기 이전에 “소명”이기에 그에 대한 식별이 필요합니다.

여기에는 여러 질문들이 포함되겠지요.
1) 자신이 “믿고” 있는 성직의 소명이 무엇인가? 왜 성직자가 “되려고” 하는가?
2) 교단을 옮길 만한 신앙적, 신학적인 이유가 있는가?
3) 교회라는 공동체를 위한 봉사자로서의 사목자를 생각하고 있는가?
4) 구체적으로 필요한 공부 시간(3년)과 생활 조건(기숙사 공동 생활 등)을 마련할 수 있는가?
5) 성공회라는 상대적으로 열악한 교회 환경 속에서 사목할 생각이 있는가?

식별을 위한 다른 질문들도 많겠지요. 하지만 이런 구체적인 질문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성직이건 교단을 옮기는 문제이건 어떤 ‘포기’의 과정이 수반하는데 거기에 내 자신을 열어 놓을 수 있느냐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참고로, 성직훈련과정은 성공회대학교 신학대학원의 성직 훈련 3년 과정(대학에서 신학을 전공한 경우에는 2년)과 공동 생활을 해야 하고, 이에 지원하기 조건으로는, 성공회 안에서 견진성사를 받은지 1년 이상이 경과하고, 소속 교회의 추천과 교구 성직위원회의 면담, 그리고 신학대학원의 입학 사정을 통해서 결정됩니다.

무엇보다 가까운 교회에 찾아가셔서, 성공회 안에서의 신앙 생활을 체험하고, 지금 품고 있는 성직에 대한 생각과 교회 사목의 현실을 함께 가늠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또한 신부님과 식별을 위한 상담과 기도가 계속되어야겠지요.

이 게시판에 성직 지망과 성직 성소에 관련된 질문과 답변이 많이 있습니다. 함께 살펴보시면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주님 안에서 하나된 형제,

주낙현 신부 합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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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skhfaq

6월 13, 2004 at 2:49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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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사제 성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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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제가 되고 싶습니다…
여성사제…
제가 될 수 있을까요?
저는 어릴 적에 장로교에 조금 다녔을 뿐인데…
그런데…
꼭 되고 싶습니다…

+ 주님의 평화

문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성공회는 여성의 사제 서품에 대해서 어떤 벽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사제직에 대한 소명이 있다면 신앙 생활 속에서 교회 공동체와 함께 이를 식별하고 준비하는 일이 필요합니다.

문의하신 내용으로 짐작하건데 자매님은 장로교를 다니신 적이 있으며, 지금은 신앙 생활을 하시지 않는 것 같습니다. 세례를 받았는지도 알 수가 없습니다. 성소는 무엇보다도 신앙 생활 안에서, 그리고 다른 사람들과 함께 하는 교회 공동체 안에서 발견되어 식별하고, 발전시켜야 합니다. 그러니 우선은 신앙 생활을 다시 시작하는 것이 필요하고, 장로교와는 조금 다른 성공회 안에서의 신앙 경험이 필요합니다.

지금 제가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가까운 교회 (가능하다면 성공회)를 찾으셔서, 신부님과 상의를 하시고 신부님의 지도를 받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 밖에 사제 성소에 관한 질문은 이 게시판 다른 부분에서 다룬 적이 있습니다. 검색어를 이용하시거나, 다른 게시물들과 함께 읽으시면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아무쪼록 성소의 깊은 식별을 통해서 하느님께서 귀하게 쓰시는 분이 되길 바랍니다.

주님의 사랑 안에서

주낙현 신부 합장

Written by skhfaq

5월 27, 2004 at 2:47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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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직이 뭐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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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들어오면, 개신교 다니다가, 성공회 성직자 되고 싶다고 질문 하는 사람 많은데, 왜 이런 사람이 요즘 부쩍 늘었는지?

신부님옷이 멋있어서 그러는지?

성직자의 길이 생각하는만큼 멋있고 화려한 길이 결코 아닙니다. 오히려 인내와 고난으로 가득한 좁고 힘든 길입니다.

예배집전하는 모습만 보고, 폼난다고 여러가지 변명들이대며, 나도 성소 받은것 같으니까 성직자 되고 싶다, 뭐, 미안하지만, 솔직히 그런 인상들이 강합니다.

성직자는 일절 세속인과는 그 생활방식이 달라야 하며, 주님과 자기의 양떼를 위해서는 모든것을 희생하는 불타는 소명의식과 처절한 자기희생이 있어야 되는겁니다.

이런것 진정으로 생각들 해보셨나요? 나는 이런것 생각하면 성직자는 정말 아무나 하는거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성직자가 폼난다고 할 생각하지말고, 처절한 자기희생과 인내, 절제를 감당할 수 있을지 진정으로 다시 생각들 해봅시다.

+ 주님의 평화

궁금이님께서 매우 중요한 지적을 해주셨습니다. 이 게시판이 어떤 의문에든지 성실하게 답변하려는 것이었기에 저는 그동안 이런 지적들을 직접적으로 드러내지 않고 답변을 시도했습니다. 이미 성소에 대한 질문을 던지시는 분들은 이 문제를 이미 많이 생각하고 있으리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궁금이님께서 중요한 지적을 하신 것을 핑계삼아서, 이와 관련된 제 생각을 나누는 것도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궁금이님의 이 문제 제기는 사실 간과하기 쉬운, 그래서 상당히 위험한 문제들을 건드리고 있습니다. 성직은 하느님이 주신 소명인가? 아니면 나의 개인적인 결단인가? 많은 성직지망자, 그리고 서품받은 성직자들마저도 여기서 혼란을 겪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상하게도 “주님의 종”이라는 본뜻과는 전혀 모순되게도, 이 용어를 쓰면서 목회자로서의 온갖 권력을 행사하거나, 짐짓 존경을 강요하는 개신교의 혼란이나, “존재의 격이 다른 사람”으로 사제를 이해하는 로마 가톨릭 교회의 혼란에서, 성공회도 사실 자유롭지 않습니다. 결국 “성직자”라는 것이 하나의 신분 상승을 의미하는 것이거나, 궁금이님께서 지적하시듯이 “짐짓” 권위있는 “체”하려는 것이라면, 그것은 성직의 본 뜻과는 거리가 먼 것이 분명합니다.

또한 매우 현실적인 이유로 특별히 성공회 성직에 대해서 관심을 가질 수도 있습니다. 한국 개신교의 철저한 개교회주의에 따른 난립과 경쟁때문에, “좀더 안정적인 체제”를 갖고 있다고 “보이는” 성공회에 관심을 갖는 경우도 있습니다. 또 앞서 지적한대로 내면화된 권위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한채 “멋있게 보이는 것”이 성직 자체에 대한 사람들의 존경을 자연스럽게 부추길 수 있다는 기대를 하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그동안 교회의 개혁과 사회의 변화 속에서 끊임없이 제거하려고 했던 교회 역사의 나쁜 잔상들에 불과합니다. 아무리 멋있는 “성직자 복”도 곧 닳아 헤어지기 마련이며, 한국에서 성공회는 매우 가난한 교회인 것이 현실입니다.

이런 처지에서 보면 결국 드러나야 할 것은, 그리고 드러나고 마는 것은 하느님 앞에서 완전히 발가벗겨진 한 개인의 존재이며, 그 가냘픈 존재에게 하느님께서 맡기신 공동체에 대한 인도와 책임입니다. 그러므로 바로 여기서 부르심을 받았느냐 하는 식별이 매우 중요하게 떠오릅니다.

또한 성공회는 그리스도교 전통이 발전시킨 하나의 신앙 생활 전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말은 어찌 보면 전혀 새로운 전통 안에서 새로운 삶의 방식을 받아들이겠느냐, 그 전통과 생활 방식이 요구하는 신학과 신앙을 발전시키겠느냐는 문제와 연결됩니다. 교단은 단순히 어떤 외적인 조건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역사 안에서 발전된 신앙의 축적에 자신을 던질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성공회 안에서 성직 소명을 찾으시는 분들은 이런 점들을 생각하며 그 소명을 좀더 분명하게 식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한가지 저는 궁금이님과는 다른 생각도 가지고 있습니다. 물론 그런 뜻으로 하신 말씀은 아니라 생각합니다만, 성직자는 세속과 전혀 동떨어진 사람이 아닙니다. 철저히 세속 안에서, 세속적인 삶을 통해서 오히려 하느님을 드러내 보이는 것이 성직이라고 생각합니다. 즉 예수님이 그러셨던 것처럼, 이 추한 세상이 오히려 하느님을 드러나는 아름다운 마당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찾아주고, 그 실마리를 많은 사람들과 함께 나누는 것이 성직자라고 보기 때문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세속과 성직이라는 작위적이고 인위적인 구분이 바로 권위주의를 낳는 싹이라고 보며, 실제로 많은 목회자와 성직자들이 이를 바탕으로 오히려 위선적이며, 권위적인 생활을 정당화하는 경우가 많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점에서 저는 이 게시판에서 오래 전에 “성사로서의 사제직”에 대한 성찰을 이야기한 적이 있었습니다. 아쉽게도 많은 이곳에 오시는 많은 분들은 그런 내용에는 관심이 적은 것 같습니다. 조회수를 보니 금방 두드러지더군요.

궁금이님의 지적에 대해서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이미 많은 분들이 성공회 안에서의 성직에 대한 질문을 하셨고 그에 대한 답변을 드렸습니다. 그 내용을 다시 간추리자면, “하느님의 부르심인가 내 결단인가?”에 대한 식별, 그리고 성공회 신앙 공동체의 경험과 그 안에서의 식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 저는 샌프란시스코 그레이스 대성당에서 열린 성직 서품식에 다녀왔습니다. 그 축하의 장에서 설교하신 마이클 잉햄 주교님(캐나다 성공회)은 분명하게 이렇게 단언했습니다. “교회를 위한 봉사라는 일을 정확히 식별하지 않고 성직자가 되는 것은 단연코 자신을 파괴하고, 나아가 공동체를 파괴할 것이다.” 이 대림절의 절기에 사제인 제 자신이 되새기고 성찰해야 할 식별의 경고문이라는 것을 새삼 깨달았습니다.

혹시 검색 명령어를 통해서 “성소” “성직” “사제”와 관련된 내용을 찾아 읽어보시면 부족하나마 도움이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스쳐지나갈 수 있는 중요한 문제를 지적해주신 궁금이님께 다시한번 감사드립니다.

힘없는 아기로 오시는 예수님을 바라보며,

주낙현 신부 합장 ^^

Written by skhfaq

12월 8, 2003 at 1:35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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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직 소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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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저는 대구에 사는 20살의 청년 금다니엘이라고 합니다.
저는 지금 성공회 신학과를 갈려고 입학원서를 썼습니다.

대구예술대학교를 다니다가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성직의 길이라는 마음에
거부할수 없는 두려움과 그 갈급함이 신학과의 문을 두드리게 했습니다.
저의 아버지는 장로회 보수교단 목사님이십니다. 하지만 아버지는 산골짜기에서
목회를 하시면서 깨달았는 신앙은 우주적인 교회와 예수그리스도안에 하나다 라는
것을 깨달으셨습니다.
그리고 제가 성공회 신학과를 간다고 하니 흔퀘이 허락하셨습니다.

10월18일날 면접시험을 보는데 그 자리에 가서 어떤애기를 들으며 어떤 답변을
해야할것인가에 고민입니다. 그러나 성령님께서 함께 하시리라 믿습니다.

이렇게 신부님을 찾은 이유는 제가 목회의 길을 걸으면 어떻게 가야 하는것이 좋으며
어떤 생각과 마음가짐이 있어야 하는지 조언을 듣기 위해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신부님 조언을 꼭 부탁드리며 성령충만하시기를 기도드립니다.

ps. 신부님 혹시 “경배와찬양”에 하스데반 선교사님을 아십니까? 그 분이 영국에서
파송된 선교사라 하시는데 그분도 성공회 소속이신가요? 알고계신다면 답변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영국에서 한국으로 선교사로 오신분들이 있나요?(현재)

+ 주님의 평화

성직 소명의 길을 식별하고 계신다니 반갑고 기쁩니다.
고민스러운 이야기들을 함께 나누시려고 여기까지 찾아주신 것도 감사드리구요.

곧 면접이라구요, 현재 고민하는 내용들을 솔직하게 이야기하십시오. 그 긴 식별의 과정에 발을 들여 놓은 것이라구요. 성공회 교수 신부님들은 그런 솔직한 대화를 좋아합니다. 어떤 장대한 성직의 꿈이 있는 것보다, 지금 어떤 신앙적 고민과 신학적 답변의 갈급함과 진지함이 있는지가 중요할 것입니다. 아마 면접하시는 교수님들과 신부님들은 그런 진지함을 듣고 싶어하실 것입니다.

성직을 준비하는 과정은 매우 깁니다. 그리고 신학대학에서 실제로 처음 신학을 공부하는 과정은 매우 고통스럽고 혼란스러울 것이 분명합니다. 그 고통과 혼란스러움에 우선 몸과 마음을 맡겨 보십시오. 그 통과 의례를 거치는 동안 많은 깨달음이 있을 줄 압니다. 물론 그 깨달음은 우리가 평생동안 찾고 구해야 할 어떤 과정의 일부분에 지나지 않을테지만요.

좋은 결과가 있기를 바랍니다.

“경배와 찬양”의 하스데반 선교사님에 대한 정보는 제게 없습니다. 항간에 성공회와 관련이 있다곤 하나, 구체적으로 그분이 영국성공회와 어떤 관계가 있는지 한국성공회에게는 전혀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대체로 어느 나라 성공회든지 다른 나라 성공회에 자기 교단 소속의 선교사를 파견하는 경우에는 그 나라 성공회의 협조를 구하든지, 최소한의 연락 관계를 맺는 것이 통례입니다. 그런 점에서 하스데반 선교사님은 그런 관계가 전혀 없는 분입니다.

현재 제가 아는 한 한국성공회에는 영국성공회에서 오신 선교사는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마지막 영국 선교사이셨던 황익찬 신부님이 1994년에 은퇴하시고, 그 이후 1997년 미국성공회 선교사이셨던 구두인 신부님이 별세하시고, 2002년 대천덕 신부님이 별세하심으로써, 한국 성공회에 대한 선교사 시대는 완전히 막을 내렸습니다. 현재 서울대성당에서 외국인교회를 담당하시는 신부님은 뉴질랜드 출신 신부님인데, 외국어대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것이 주무이십니다.

도움이 되었길 바랍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된 형제

주낙현 신부 합장 ^^

Written by skhfaq

10월 9, 2003 at 1:15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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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직 성소에 대한 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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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얼굴을 뵙지못했지만 조언을 듣고 싶어 이렇게 글을 씁니다.
저는 신학을 하고싶어하는 27세의 청년입니다.
그런데 제가 신학을 하지못하는 못하는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지만 내가왜 신학을
해야 하는가 하는 질문 떄문입니다. 여기에 대한 정확한 답도 이상도 하나님의 응답도 없었습니다. 어릴적부터 막연히 나는 교회에서 일하는 사람이 될거라는 생각을 해왔고 대학생이 되어 성경공부를 하고 인도하는 가운데서 신학에대한 마음을 품었습니다. 졸업할때 사회생활을 하면서 신앙을 지켜가는것이 중요하게 생각되어 취업을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도 신앙 서적중에서도 신학 서적이 가장 눈에 들어오고
마음한구석에 신학을 하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교회 목사님과 가끔 이야기를 하지만 권하지않으시더라고요. 지금 성직자가 너무많고 평신도 사역자가 중요하다고요. 정말 마음속에서는 너무 하고 싶은데 솔직히 그 내용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그길이 무엇인지도 모릅니다. 다만 지금은 오늘은 신학을 공부하고 그것으로 많은 사람을 도우고 싶습니다.

저는 일반적인 장로교를 다니고 있습니다. 그런데 성공회에서 신학을 하고 싶습니다. 이것도 왜 그러냐고 물으면 정확히 대답할말이 떠오르지 않습니다. 막연히 제가 하나님과 좀더 가까워지고 그분을 느낄수 있는 분위기라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지금다니는 장로교가 답답해서가 아닙니다. 이곳에서도 충만합니다. 하지만 개신교에서는 기본적인 예배와 의식이 너무 소홀이 되어져가서 그의식과 예배가 주는 유익이 체험하지 못합니다. 저는 그것을 체험하고 싶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카톨릭의 형식자체가 완전히 무시되어질것은 아니라고 생각해서입니다. 물론 의식이나 형식이 종교의 모든것을 차지한다고 생각하지않습니다. 어떤 형태건 하나님을 향한 마음에서 의식이 시작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기에 그중심이 중요하겠지요. 그러나 2000년을 이어온 그 의식에 많은 영감을 느낍니다. 물론 개신교적인 개혁의 자세도 필요하겠지요.

주낙현 신부님 많은 도움을 부탁드립니다. 제 주변에 사람이 많은것 같으면서도 생각을 온전히 털어 놓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신부님 제가 신학을 해도 될까요. 그리고 성공회로 신앙의 길을 바꿔도 괜찮을 까요?
앞으로 종종 글을 올리겠습니다.

+ 주님의 평화

김용태 형제님, 안녕하세요?

고민을 함께 나눠 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그런 고민을 들을 수 있다니 영광입니다.

간단히 제 생각과 조언을 드리겠습니다.

김용태 형제님께서는 어떤 점에서 “부르심”을 받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느님의 부르심”은 사람의 눈으로 헤아리기 어렵거니와, 한 사람의 겉모양으로 그 내용을 판단하기는 더욱 어렵지요. 지금 “마음이 움직인다”는 것 자체가 매우 중요한 부르심을 드러내는 좋은 증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부르심”은 매우 다양해서 그것이 꼭 성직에 대한 부르심인지는 새롭게 헤아려 보셨으면 합니다. 이른바 “성소”는 하느님의 다양한 부르심 가운데 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지요. 그 때문에 성소에 대한 “식별”의 과정이 매우 중요합니다. 목사님께서 말씀하셨다는 평신도 사역직 역시 매우 시급하고 중요한 부르심 가운데 하나입니다. 어쨌든 이 문제를 가지고 구체적으로 신부님과 상의를 해보시는게 좋겠군요. 그러기 위해서는 성공회 교회에 먼저 출석을 하셨으면 합니다. 그리고 그 식별의 과정은 개인적인 기도와 신부님과의 상담과 함께 기도하며 이뤄지거든요, 이 점을 유념하셨으면 합니다.

사람마다 성공회에 끌리는 이유가 다양한데, 김용태 형제님은 성공회의 예전을 통해서 그리스도교 신앙의 새로운 면모를 보시는 것 같습니다. 예전을 통한 영성과 신앙의 성장, 그리고 사목은 성공회의 값진 전통 가운데 하나이지요. 이 또한 성공회에 오실 만한 충분한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먼저 교회에 출석하시면서, 밖에서 보는 예전과 그 실제 안에서 자신이 누리는 기쁨의 현실을 경험하시기 바랍니다. 신앙의 양태는 사람마다 다 달라서 실제 경험을 통해 그걸 충분히 느끼는 시간이 필요하거든요. 자신의 영성과 신앙 성장에 가장 적절한 교회 전통에 자신을 맡기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니 이 또한 매우 중요한 식별 과정입니다.

구체적으로 조언을 드린다면, 지금 출석하시는 교회를 통해서도 역시 성소에 대한 고민을 계속하고 상담을 하셨으면 합니다. 동시에 성공회에도 출석하셔서 신부님을 만나서 그런 고민을 솔직하게 말씀드렸으면 좋겠군요. 또한 “신학” 만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어떤 “사목”(목회)을 하고 싶은가, 혹은 부름을 받고 있는가에 대한 고민을 깊이 하셨으면 합니다. 신학 공부와 사목은 개인의 신앙 공부가 아니라, 공동체를 위한 봉사를 목적으로 하는 것이니, 그 사목의 종류에 대한 고민도 함께 있었으면 합니다. 장로교든 성공회든 모두 장점을 갖고 서로를 존경하는 훌륭한 교단이니, 기도와 상담 안에서 좋은 식별의 결과가 나오길 바랍니다.

이 짧은 답변이 도움이 될까요?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 하나된 형제

주낙현 신부 합장

Written by skhfaq

9월 27, 2002 at 11:37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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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가 되려면? 성직 성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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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십니까?

저는 고2 이상범입니다.

종교는 개신교였으나 지금은 천주교로 개종했구요,

저는 가톨릭신부가

아닌 성공회신부에 뜻을 두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당장 말씀드릴수 없지만,,,,

성공회신부가 되기 위한 절차가 어떠한 것인지 가르쳐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꼭 개종을 해야 겠지만,,,,,,

+ 주님의 평화

이상범 형제님, 안녕하세요?

성직에 대한 꿈을 갖고 계시다니 기쁩니다.
성직은 기본적으로 하느님의 부르심입니다.
깊은 신앙 생활과 식별로 그 기쁜 성소에 응답하기를 바랍니다.

어떤 이유로 성공회 성직자가 되기를 원하는 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다른 교단의 경우에 마찬가지로, 성직 성소에 응답하기 위해서는
몇가지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가장 먼저 ‘성소’에 대한 식별입니다.
성직은 한 개인의 꿈이 아니라, 하느님의 ‘부르심’에 대한 응답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이것이 내 개인적인 “꿈”인지 아니면 “성소”인지를 식별해야 합니다.
그 꿈과 성소가 같다면야 더할 나위 없이 기쁜 일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성소에 대한 식별은 혼자서 해서는 안됩니다.
성직(holy order)은 그 말 자체가 의미하는 대로,
어떤 공동체적인 질서로 들어서는 것을 말합니다.
즉 성직은 공동체를 기반으로 해서 사목 활동을 전제로 가능한 것이지요.
그러니 꼭 가까운 교회를 찾으셔서, 신부님과 만나 상담하고
오랜 기간 동안 고민하고 기도하는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성직을 위해서는 공식적인 훈련과정이 필요합니다.
즉 대학과 같은 고등교육기관에서 교양을 쌓고 지적 훈련을 해야 합니다.
대학부터 신학을 전공하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만,
좀더 넓게 생각하고 경험하기 위해서는 일반 학문과 함께 공부할 수 있는
학교를 선택하면 더할 나위없이 좋겠지요.
그리고 성직을 위한 전문 훈련 기관인 신학대학원 과정을 마쳐야 하고
여기서 요구하는 공동체 생활과 교육 과정을 이수해야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교회와 신앙 생활에 충실해야 합니다.
성직은 기본적으로 세상과 교회를 위한 “봉사직”이기에
교회 안에서의 봉사와 훈련이 꼭 필요합니다.

이상범 형제님에게는 아직 시간이 있습니다.
우선 교회를 찾으셔서, 신부님과 먼저 이 문제를 상담해보시기 바랍니다.
바른 식별이 있기를 바랍니다.

주님의 사랑 안에서 주낙현 신부 합장 ^^;

Written by skhfaq

6월 22, 2002 at 10:57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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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인 사제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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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십니까?

벌써 주일이군요..^^* 세월 참 빠르네요..

오늘 여쭈어 볼 말씀은 다름이 아니오라… 이른바 만인사제주의에 관하여서인데요..

아시다시피 이 문제는 종교개혁부터 격렬한 논쟁이 유래되었고 솔직히 지금도 별로 이 문제는 변하지 않은 것으로 생각되는데요..

즉 이런 문제가 가장 상징적으로 촉발된 형태 중 하나는 전에 여쭈어 본 바와 같이 고해성사라고 보는데요..즉 ‘사제’개념을 가톨릭은 인정하므로 몇몇 성서구절을 근거로 하여 사제의 사죄권을 바탕으로 하여 고해성사를 엄수하고 있고요, 보통 개신교는 사제 개념을 특별히 인정하지 않으니 아예..고해성사란 상상조차 못할 일이 되었지요..여기서도 성공회는 고해성사를 인정은 하되 강요는 하지 않는다는 절충점을 모색하고 있더군요..

이른바 하느님과 인간의 중개자로서의 사제개념을 인정한다는 주장과 인간이 사제의 중개없이 하느님과 바로 통교할 수 있다는 만인사제주의 사이에서 가톨릭과 다른 개신교의 입장을 가장 잘 절충하고 있다고 자부하는 성공회는 오늘날 어떻게 대안을 제시하고 있는지요?

제가 이런 것을 여쭈어 보아서 – 특히 가톨릭을 비롯한 타교파와 자꾸 비교하게 되어서 – 죄송하지만, 이러한 것도 다양하고 합리적인 토론을 통하여 변증법적 발전을 도모하자는 것이니 불쾌히 여기지 말아주셨으면 합니다.

성공회의 공식적인 입장 외에 신부님의 개인적인 견해를 밝혀주셔도 무방할 것 같군요.. 저에게 도움이 많이 되겠습니다..

주일 축복 많이 받으세요..

+ 주님의 평화

항상 어려우면서도 좋은 질문으로 저를 괴롭히시는(^^) 게파님 안녕하세요?

이번에도 역시 좋은 질문을 주셨군요. 그리고 어려운 질문이기도 하구요. 이제야 답변드리게 돼서 대단히 죄송합니다. 개인적인 사정 때문에 통 답변에 시간을 낼 수가 없었습니다.

답변을 시도하자면…

이른바 “만인사제주의”는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에게서 비롯합니다. 마르틴 루터의 “만인사제”론에는 두 가지 뜻이 있다고 합니다. 그 하나는 한번의 희생제사를 통해 우리의 속죄물이신 대사제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구원의 통로가 되셨으니, 우리 인간은 어떤 다른 통로를 거치지 않고 하느님과 교제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그러니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 인간 모두는 하느님과 직접 대화할 수 있는 사제라는 것이지요. 두 번째 의미는 “그리스도인은 만인을 위한 만인의 사제”라는 의미입니다. 즉 그리스도인은 서로 다른 사람을 위해서 기도를 바치고, 그들을 위해서 살아간다는 의미이지요. “만인을 위한 만인의 사제로서 살아가는 신앙인”이라는 이 주장이 사실 루터가 말하는 만인사제론의 핵심이라고 하겠습니다.

성공회는 이러한 주장을 매우 감사하게 받아들이고 있으며, 이는 사제직에 대한 복음적인 이해라고 보고 있습니다. 사실 로마 가톨릭교회 역시 “세례받은 모든 신자들의 사제직” 이른바 “신자들의 공통 사제직”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즉 만인사제직에 대한 기본적인 견해는 로마 가톨릭이나 개신교나 같다는 것이지요.

그런데도 현실에서는 난점은 있기 마련인지라, 원칙적이고 신학적인 추상 개념이 현실 교회 공간과 역사 속에서 실현되는 방식에는 어쩔 수 없는 왜곡이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사제”를 뜻하는 “프리스트”(priest) 어원이 신약성서의 “장로/원로”(presbyter)에서 나온 것이었다면, 실제로 사제라는 기본적으로 교인들을 관리하고 말씀을 전해주는 사목자(minister)라는 의미가 더 강하겠지요. 그런데 이것이 중세에 이르러서 희생제의에 관련된 “제사장”(sacerdos)으로 의미가 전환되고 말지요. 이것은 중세교회의 교권 강화와 무관하지 않다고 봅니다. 이로써 나온 것이 “사제는 그리스도의 대리자”라는 주장입니다. 이는 로마 가톨릭 교회의 사제직에 대한 이해를 가장 극명하게 표현하는 말이지요. 현재도 세례받은 신자들이 갖는 일반적인 사제직과 구별되어 “본질적으로 다른 사제직”이 있는데 그것이 곧 서품받은 사제들이 갖는 사제직이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서품(ordination)의 의미와 관련이 깊은데요, 한마디로 말하자면, 로마 가톨릭 교회는 사제직의 서품에 대해 “존재론적인 시각”(ontological view)을 갖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즉 사제 서품을 받은 사람은 본질적으로 다른 사람이 된다는 것이지요. 거기에 비해서 개신교의 이해는 대체로 “기능론적인 시각”(functional view)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사목자는 교회의 사목 행위의 전문적인 기능으로 부름받았고 그 일을 담당하게 된다는 것이지요.

정리합시다. 그리스도교는 기본적으로 “세례받은 모든 이들의 사제직”을 인정한다. 그렇다면 실제 교회의 직분으로서 사제직에 대한 이해에서 로마 가톨릭 교회와 개신교가 차이를 갖고 있다는 것이겠지요?

그렇다면 이에 대한 성공회의 태도는 무엇인가? 성공회 안에는 로마 가톨릭에 기운 듯한 존재론적인 시각도 있고, 일반 개신교의 주장과 같은 기능론적인 시각도 있습니다. 그러나 제 3의 길은 있다고 봅니다. 그것은 “성사론적인 시각”(sacramental view)이 아닐까 합니다. 이 말은 사제는 일반 인간과 본질적으로 다른 어떤 존재가 아니라,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베푸시는 은총을 드러내며, 또 그 삶을 살아가는 표지라는 점에서 성사 그 자체라는 관점입니다. 이는 또한 성직자가 단순히 교회라는 제도 안에서 어떤 기능만을 담당한다는 시각과도 구별점이 있습니다. 그러니 어떤 우월한 존재가 아니라 평등한 존재로서, 어떤 특정 기능인으로서가 아니라 삶의 풍성함과 빈곤함 속에서 하느님의 은총을 온 몸으로 드러내는 삶으로서 “성사”라고 말하고 싶은 것이지요.

신약성서학자이자 성공회 사제인 루이스 윌리암 컨츄리먼은 최근 자신의 저작 {거룩함의 경계에서 살아가기 : 만인사제직의 쇄신 LIVING ON THE BORDER OF THE HOLY: RENEWING THE PRIESTHOOD OF ALL](1999)이라는 책에서 이 문제를 다룬 적이 있습니다. 물론 여기서 “성사론적인 시각”을 대변하지는 않았지만, 책 제목과 같이 거룩함의 경계 위에서 살아가는 삶으로서 사제는 성사라고 보고 싶습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인간이 가진 근본적인 삶에는 사제직이 깃들어 있습니다. 아이를 키우고, 누군가를 도와주며, 상담하고 영적으로 지도하는 모든 것이 바로 사제직의 내용에 다름 아닙니다. 그리고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이러한 것이 대사제이신 그리스도께서 행하셨던 것으로 알고 이를 지켜 나갑니다. 또한 서품을 받은 성직자들은 이러한 사제직의 근거 안에서 사람들 사이에 이 사제직이 꽃피우기를 위해 노력하고, 하느님과 인간, 인간과 인간 사이의 화해를 위해 일한다는 것입니다(2고린 5:18).

로마 가톨릭 교회나 개신교나 모두 대사제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며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의 사제직에 대해 동의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를 따르기 위한 고민 속에서 구체적인 이해에서 차이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결정적인 답은 보이지 않습니다. 아직 혼동이지요. 우리는 혼동 속에서 살아갑니다. 그러니 어떤 것을 두고 이것만이 진리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진리는 우리의 한줌 손길로 잡기에는 벅차기 때문입니다. 다만 우리는 희미한 것이 없어지고 모든 것이 거울처럼 명백해질 것을 바라보며, 그 혼동 속에서 겸손할 뿐입니다(1고린 13:12)

도움이 되셨길 바라며 주낙현 신부 합장 ^^

추신 : 성직 서품의 의미에 관해 써둔 짧은 글이 있는데 도움이 되실지요?

“서품(혹은 안수,Ordination)란 무엇인가?” 다운로드

Written by skhfaq

8월 30, 2001 at 2:55 오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