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회 질문 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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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직자의 직업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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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주신부님의 블로그를 자주 찾는 성공회 신자입니다.

한가지 궁금한 것이 있었는데, 이문제는 특별히 주신부님께 여쭈어야지 하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오늘에야 마음에 여유가 생겨서 질문을 드리게 됩니다.
제가 알기론 성공회의 사제는 교회를 맡게 되면 다른(직업)일은 교회법상 못하게 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 부분이 성경과 어떻게 균형을 갖게 되는지 여쭙고 싶습니다. 물론 구약식으로 생각해 ‘레위인’으로 본다면, 큰 문제가 없겠지만, 신약으로 보자면 사도들도 많은 경우 교인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일한것으로 압니다(예를들면 데살로니카전서에서 처럼 말입니다.)

동방정교회에서는 교회의 규모가 워낙 작아서, 사제들의 겸업이 허용되는 것으로 아는데, 성공회도 교회 크기나 교구에 따라 다른지요? 또, 성경적으로 보자면 양쪽다 맞다고 해야 하는지요? 혹은 현대의 교회와 사회상황하에서 볼때 어느쪽이 더 바람직하다고 보시는지 신부님의 의견도 알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 주님의 평화

안녕하세요? 좋은 질문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상하게도 이제 이 “질문 답변란”을 닫을 때가 되었구나 싶으면 하나씩 질문이 올라오는군요. 하여튼 덕분에 이 게시판의 생명이 한동안의 유예기간을 얻었습니다.

굳이 제게 질문하셔야 할 이유를 모르겠습니다만 (^^) 언젠가 어떤 분이 비슷한 질문을 하셔서 그에 대해 제 생각을 간단히 밝힌 바가 있습니다. 물론 그 질문은 성직자가 세속적인 직업을 갖는 것에 대해서 부정적인 생각과 경험에 근거한 것이었는데, 아마도 이번 질문을 주신 교우님께서는 좀 긍정적인 방향에서 생각하시는 것 같습니다. 어쨌든 무슨 일이든 다 그렇듯 성직자가 성직 수행을 위한 사목 활동말고 다른 직업을 가지는 것에는 부정적면도 있고 긍정적인 면도 있습니다.

우선 그때 질문에 대한 답변이 참고가 되리라 생각합니다.

—-

성공회에서도 기본적으로 성직자는 다른 세속직업을 가질 수 없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매우 애매한 규정이어서, 몇가지 상황에서는 예외적인 것이 많습니다. 굳이 표현하자면, 예를 들어서 학교에서 가르치는 일을 하는 교사나 교수직도 세속적인 직업 가운데 하나입니다. 이런 일에 성직자나 수도자가 참여하는 것은 어떤 점에서 바람직하고 필요한 일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말씀하신대로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 행위와 관련해서는 부정적인 인상이 짙습니다. 그리고 그런 예를 저 개인적으로는 본 적이 없습니다.

다만 성공회는 “자급 성직”에 대한 규정이 있습니다.
아직 많은 논란이 있고, 이의 기원에 대한 분명하지 못한 이해때문에 오해의 여지가 있긴 합니다만, 성직자가 교회에서 사례금이나 생활비를 받지 않고, 스스로 일해서 자기 생활을 꾸려 나가는 경우를 두고 일컫는 말입니다.

이러한 전통은 사실 사도 바울로에게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사도 바울로는 스스로를 천막장이(tent-maker)로 불러서, 스스로의 생계를 벌어 꾸려 나갔고, 이에 따라서, “tent-making ministry” 라는 말도 있습니다. 개신교에서는 이를 “자비량 선교”라고 번역하지만, 그저 “자급 목회” 혹은 그 해당자에 관해서 “자급 사목자”라고 하면 이견이 없으리라고 봅니다.

이에 근거해서 로마 가톨릭 교회와 성공회에서도 매우 훌륭한 자급 성직의 사례를 남기기도 했습니다. 이를바 “노동 사목”과 관련하여 많은 로마 가톨릭 사제들과 성공회 사제들이 노동 현장에서 스스로 육체적인 노동을 하면서 생계를 꾸려 나가며, 노동 현실에 대한 고발과 그 현장에 있는 노동자들과의 나눔을 형성한 아름다운 전통이 있습니다. 이런 점들은 현대적으로 새롭게 해석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http://viamedia.new21.org/spboard/board.cgi?id=qna&page=1&action=view&number=131-1.cgi&img=no&category=sub_cmt&keyword=%C1%F7%BE%F7&start_num=

여기에 제 개인적인 견해와 보고 배우는 경험을 좀더 덧붙이겠습니다. 위 답변에서와 같이 성직자가 다른 직업을 갖는 것은 초대 교회의 한 전통이기도 했지만, 교회가 커지고 사목의 내용이 좀더 복잡해지면서 성직 자체가 하나의 독립된 전문직이 된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사실 여기에는 복잡한 교회사적인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나쁜 쪽으로 지적하자면, 이른바 성직자의 계급화 혹은 성직자주의가 진행되면서 성직은 세속적인 직업과 영영 이별하는 모습이 보입니다. 그러다보니 성직과 세속적인 직업은 별개의 것이 되어버렸고, 사람들도 그걸 당연한 것으로 인정하고 있는 듯합니다.

하지만 한국 교회의 일각에서도 이미 성직자가 사목 활동 이외에 생계를 위한 다른 직업을 갖는 것이 논의된 적이 있습니다. 개신교에서는 대체로 이것을 “자비량 선교”라는 이름을 붙이곤 했는데, 물론 반대와 찬성이 엇갈리긴 했어도 매우 중요한 논의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성서와 교회의 전통에서 보는 바와 같이 어떤 원칙이리기 보다는 그 상황과 목적에 따라 융통성 있게 받아들여야 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앞서 지적한대로 교수직이나 교사직도 사실 세속직이거든요. 그렇지만 성직자로서의 사명을 그런 방향에서 수행하는 것이기도 하지요. 물론 성직 수행과 사목 활동에 반하지 않는 직업이어야 한다고 봅니다.

미국에서 공부하는 관계로 많은 신학생, 그리고 이곳 신부님들을 만납니다. 그리고 많은 분들이 전문직의 경험을 가지고 있거나, 또한 이를 병행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판사도 있고, 법률가도 있으며, 교사도 있습니다. 이 분들 가운데는 교회 사목만을 전담하려는 분도 있지만, 현 직업을 유지하면서 성직자로서 새로운 방향으로 그 직업을 발전시키려는 분도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어쨌든 우리의 특수한 문화적인 현실과 상황, 그리고 사목직의 환경때문에 교회법에서도 다른 세속적인 금하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만, 여전히 그것도 융통성이 있다고 봅니다. 다만 현재 우리 교회에서 마련한 “자급 사제”에 대한 규정이 신학적인 반성이 결여되고, 매우 협소한 이해에 기초한 정책이어서, 오히려 “자급 사제”라는 성서적, 교회사적인 전통의 예를 왜곡할 여지마저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깊은 고민과 성찰 없이 만들어진 정책이 가져온 대표적인 폐해인게지요.

이런 식으로 생각과 논의를 넓혀가면 어떨까 생각합니다. 우선 “성소”에 대한 생각으로 시작합니다. “성소”는 이른바 모든 신자들이 갖는 하나의 신앙적 소명이라는 전제 속에서, 성직은 그 성소의 한 특별한 형태입니다. 많은 신자들이 다들 자신의 성소를 자신의 생활 속에서 수행하듯이, 성직자 역시 그 성소를 복음을 전파하고 교회 공동체를 위해 섬기는 일로 수행합니다. 그 과정에서 그 섬기는 방법이 상황에 따라 다양하겠으니, 성직자들 역시 다른 직업을 가질 수도 있고, 무엇보다도 그 직업은 자신의 성직 성소의 연장 선상에 있는 것이야 합니다. 이런 결정은 성직자 자신은 물론이요, 그 해당 교회 공동체의 동의를 통해서 이뤄져야 합니다.

내용없이 장황해진 것은 아닌지요. 게시판 검색란에서 “직업”을 넣어서 다른 글들도 한번 참고해보셨으면 합니다.

복된 사순절이길 빕니다.

주낙현 신부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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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5, 2006 at 1:23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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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직자 호칭 문제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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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신부님. 저는 캐나다 밴쿠버의 캐나다 성공회교회를 다니는 한 형제입니다. 원래 개신교를 다녔지만, 성공회의 liturgy가 너무 좋아서 성공회로 입교하였습니다. 궁금한 것이 몇가지 있어서 여쭙니다. 조속한 답변 부탁 드리겠습니다..

….

질문4) 한국성공회에서는 사제들의 존칭이 “신부님(father)”인데 (여기 성공회는 father 이라 부르지 않고, the Rev. 아무개님이라고 부릅니다.), 이 호칭으로 인해서 평신도들을 대할때, 일반 개신교 성직자들보다 더 많은 권위를 가지는지요? (장로교등의 일반 개신교 목사님들은, 평신도들에게 별로 권위가 없습니다. 특히 만인사제설을 들먹이면서 평신도나 성직자나 똑같다면서 평신도들이 목사님께 사정없이 대드는게 개신교 한인교회들의 답답한 현실입니다.)

너무 궁금도하고, 조금 혼란스럽기도해서 질문 드립니다. 신부님의 글이 멀리 캐나다에서도 신앙생활에 많은 도움이 됩니다. 조속한 답변 기다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주안에서 유진

4. 성직자 호칭 문제 “신부님”

우리 말과 영어가 다른 점이 있지요. 특히 호칭 문제는 더욱 그렇습니다. 영어식 호칭은 우리 말로 번역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서 “your honor”를 어떻게 번역하면 좋습니까?

한국성공회는 고교회 전통이 선교된지라, 성직자 호칭 채용에서 천주교에서 이미 사용하던 호칭을 받아들였습니다. 아마도 고교회와 천주교와의 친연성때문이겠지요? 그러나 천주교나 성공회, 다른 개신교 할 것 없이 일반적인 영어식 호칭은 “Reverend”입니다. “존경받을 분”이라는 뜻이지요. 그런데 성공회 최초의 공동기도서 서품식문을 보면, 주교와 같은 성직자를 두고 “Reverend father”라고 부릅니다. 그러니 어느 호칭이나 적절하다는 것이겠지요?

표기는 거의 모두 Reverend라고 하지만, 호칭은 그 성격을 잘 드러내는 것 같습니다. 사실 우리가 개신교 성직자를 부를 때, “목사님”이라고 부르는데 이는 pastor의 번역어지요. 양치는 목자라는 뜻이지요. 그런 점에서 “신부님”이라는 말은 영적인 아버지, 신앙을 키워주는 아버지라는 뜻이 있으니 이 또한 적당한 호칭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신부님”이라는 호칭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바로 여성 성직자가 생긴 것이지요. 아무리 봐도 여성 성직자를 남성용어인 “파더”라고 부를 수는 없지 않습니까? “머더”라른 호칭이 있는데 이는 전통적으로 원장 수녀님 같은 분을 부르는데 사용되었으니, 대책이 없는 노릇이지요. 그래서 중립적인 용어인 “레버런드”가 호칭으로도 사용되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한국말로는 어떻게 할까? 저는 이 부분에 재밌는 생각 하나를 가지고 있습니다. 어떤 분들은 남여 평등하게 “사제”로 부르자고 주장하는 분들이 있습니다만, 저는 그것은 직위를 나타나는 것이니, 우리에게 이미 친숙한 “신부님”을 계속 쓰자고 말하고 싶습니다. 사실 우리 문화 속에서 이제 “신부님”이라고 해서 굳이 남자를 말한다는 생각은 없어지는 것 같고, 오히려 그렇게 말함으로써 “여성 사제”가 존재를 더욱 부각시킬 수가 있다고 봅니다. 그러면 한자가 분명히 “아버지 부”인데 어떻게 할 거냐고 묻겠지요? 그래서 저는 새로운 한자를 만들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기존의 “아버지 부” 대신에 “아버지 부”를 변으로 해서 “어머니 모”를 붙여서 “어버이 부”(父母)를 쓰면 된다고요. 요즘 한자 쓰는 사람도 별로 없으니 그렇게 말하면 되지 않을까요?

그리고 호칭이 그 사람의 권위를 드러내지는 않는다고 봅니다. 다만 개신교의 행태들에 하도 문제가 많으니 그것에 따라 목사님이라는 호칭에서 격이 떨어지는 것으로 느끼는 것이니, 그 권위와는 상관이 없지요. 얼마나 훌륭한 목사님들이 많습니까? 또 얼마나 훌륭하지 못한 신부님들이 많습니까?

만인사제설과 관련해서 짧게 언급하자면, 그것은 개신교 신자들이 이를 매우 잘못 이해하기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오해는 개신교 목사님들이 천주교를 비판하기 위해서 무분별하게 이 말을 사용하다가 스스로 물리는 문제라고도 생각합니다. 만인사제설의 본 뜻은 “나도 목사, 너도 목사”라는 뜻이 아니라, 이제 주님을 통하여 “나도 하느님께 모든 것을 직접 구하고 봉헌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의미가 더욱 강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유진님이 지적한 개신교의 행태는 루터도 통탄할 일이지요.

도움이 되었길 바랍니다.

주님의 사랑 안에서 주낙현 신부 합장 ^^

Written by skhfaq

8월 28, 2002 at 11:33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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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교제는 성직자의 권위를 강화시키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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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신부님. 저는 캐나다 밴쿠버의 캐나다 성공회교회를 다니는 한 형제입니다. 원래 개신교를 다녔지만, 성공회의 liturgy가 너무 좋아서 성공회로 입교하였습니다. 궁금한 것이 몇가지 있어서 여쭙니다. 조속한 답변 부탁 드리겠습니다..
….

질문3) 성공회는 감독정치제도를 택하고 있는데, 장로정치 또는 회중정치를 택하고있는 일반 개신교보다, 감독정치제로 인해서 성공회 교구 성직자들이 교구를 이끌어 나갈때 개신교 목사들보다 더 많은 권한과 권위를 가지는지요?
사실 개신교의 정치제도로 인해서, 개신교 목사들은 거의 회중들이나 장로들의 고용인으로 전락한 것이 오늘날의 개탄할 현실입니다. 장로나 회중들은 그들의 사역자들을 마음대로 자르고 또 고용하는것이 현실이고, 여기에 비굴하게 머리 숙이는 목사님들이 많은것 또한 개탄할 일인데, 성공회의 감독정치로인한 성직자의 권위는 굳건한지요?

너무 궁금도하고, 조금 혼란스럽기도해서 질문 드립니다. 신부님의 글이 멀리 캐나다에서도 신앙생활에 많은 도움이 됩니다. 조속한 답변 기다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주안에서 유진

3. 주교제에 대하여

음, 약간 허기져 옵니다. ^^

성공회의 주교제가 굳이 성직자의 권위를 강화하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성공회는 전통적으로 주교제가 교회의 일치와 바른 가르침의 보존을 위해 중요하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즉 주교는 치리의 상징이라기보다는 일치의 상징입니다. 개신교의 분열은 이런 주교제의 부재와도 관련이 있을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성공회에서는 또 주교제를 일치의 문제로 보지 않고 치리 혹은 권력의 문제로 보는 경향, 아니 그렇게 행사하는 경향이 없지 않습니다. 이것은 본말을 전도한 것이지요.

그런 점에서 어떤 제도를 택하느냐가 교회를 판가름하는 것이 아니라, 그 뜻을 어떻게 실천하느냐가 중요한 것이라고 봅니다. 회중교회나 장로교회는 나름대로 훌륭한 교회 정치 형태로서 특별히 교회의 민주주의에 큰 영향을 미쳤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다시 권력의 문제, 치리의 문제로 돌아서버리면 문제는 달라집니다. 성직자가 한사람의 고용인처럼 되어버렸다는 현실도 바로 그런 권력 관계 속에서 나온 것이니까요. 그렇게 본다면 주교제, 혹은 감독제가 성직자의 권위를 강화시키기나 보존시키는 것만은 아닐 것입니다.

다만 성공회는 일치를 위해서 주교제를 채택하고, 이를 통해서 교회의 문제를 해결하고 가르침을 보존하다보면, 당연히 성직자의 권위도 바로 서게 되리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권력과 명령 때문에 권위가 서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지요.

대답이 좀 미흡합니다.

다음 답변은 아래에

Written by skhfaq

8월 28, 2002 at 11:32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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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 성공회 개신교 성직자에 차이가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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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신부님과 성공회신부님의 차이점이 있을까요?

차이점은 없길 바라는데.

혹시 있으면 가르쳐주세요

이런 질문해도 괜찮을지는 모르겠지만…..

+ 주님의 평화

좋은 질문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지만 대단히 난해한 질문이기도 합니다.

우선 이렇게 말해보지요. 우선 차이점을 말하기보다는 공통점을 찾아야 한다고 봅니다.
성직자는 교회를 위한 봉사직으로 부름을 받았습니다.
그런 점에서는 그리스도교회의 성직자는 천주교이든, 성공회이든, 다른 개신교이든 차이가 없습니다. 여기서 차이를 요구하면 오히려 그 교회는 문제가 됩니다.

그리고 이런 공통점 아래서, 성직에 대한 이해의 차이, 그리고 그 실천에 대한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천주교와 성공회는 그 사제직의 실천이라는 구체적인 모습에서는 별 차이가 드러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사제직”에 대한 이해는 상당히 다릅니다. 그리고 개신교 안에서도 성직자 혹은 목회자에 대한 이해가 그 교단의 전통에 따라 조금씩 다릅니다. 그리고 그 다른 이해 때문에 그 실행에 있어서도 차이를 드러내기도 합니다.

이런 이해의 차이에 대해서는 다른 질문에 대한 답변 속에서 다룬 적이 있습니다.
“사제직”이라는 검색어를 입력해서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주낙현 신부 합장 ^^

Written by skhfaq

7월 29, 2002 at 11:07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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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빈 서약과 성공회 성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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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님의 평화

예. 먼저 친절한 답변에 감사드리고요..음, 저는 평소 성공회가 다른 개신교 교파와는 달리 편파적, 배타적이지 않고 항상 개방되고 진보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데 대하여 높이 평가하고 있었으며, 이런 점은 우리 가톨릭도 본받을 면이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읍니다. 지난 번 질문에 상세히 답변해 주심에 다시 감사드리며 조금 남아있는 2가지 의문점에 대하여 여쭈어 보고자 합니다.

질문이 여러모로 난처한 까닭에는 두가지 연유가 있겠지요. 그 하나는 질문 자체가 황당하기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아주 좋은 질문이기 때문이지요. 게파님의 의문은 좋은 질문이기에 대답하기에 어려운 점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늘 “간단하게” 말씀해 달라고 청하니 더욱 그렇습니다. ^^

질문 1.
성공회 신부님들도 순명/청빈을 서약한다고 하셨는데 (가톨릭의 경우 순명이란 그 대상은 교황, 관할 주교/수도회의 장상입니다. 물론 이것은 궁극적으로 하느님께 지향됩니다). 성공회에서 말하는 순명의 1차적 대상은 누구인지요.. 어리석은 소견으로 미루어 짐작컨데…관할주교는 당연히 포함될 것 같고.. 영국의 켄터베리 대주교가 포함되는지요..? 질문이 유치하였다면 죄송합니다. 그리고 성공회신부님들은 대단히 외람되지만 결혼생활을 하시는데 어떻게 청빈의 서약이 준수될 수 있는지..아무래도 가족의 생활비/자녀의 교육비를 감안하지 않을 수 없는데, 이 부분에 관하여 성공회 신부님들은 청빈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요.?

답변 1.

여기에는 두가지 질문이 담겨 있군요.

첫 번째는 성공회 성직자의 순종 서약에 관련된 것입니다. 성공회 성직 서품식에서 수품자는 순종 서약을 합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너는 네 주교와 너를 주장하는 다른 성직자들을 공경하여 순종하고, 저희가 하느님의 뜻에 따라 지도하고 작정하는 것을 기쁜 마음으로 행하겠는가?”

주교와 다른 성직자들을 공경하며 순종하는 것이지요. 로마 가톨릭 서품예식에서는 “그대 교구의 주교와 소속 장상들에게 존경과 순명”한다고 하지요. 물론 교황에 대한 언급은 없지요. 성공회에서도 캔터베리 대주교에 대한 순종 서약은 없습니다. 초대교회의 지역 교회 치리 형태는 지역 교구의 책임 하에 있었으며, 지역교회는 주교를 대표로 병렬적인 관계에 놓여 있었습니다. 이때 로마 주교(교황)이나 캔터베리 대주교에 대한 순종은 언급이 없었던 것이지요.

둘째 성직자의 청빈 생활에 관한 것입니다. 여러모로 곤란한 문제이고 자칫 자신의 선을 주장할 민감한 문제이기도 합니다. 이 때문에 답변을 해야 할지 고민하기도 했고, 이에 대한 답변이 어느 누구에게도 상처가 되지 않았으면 합니다.

우선 청빈을 어떤 뜻으로 이해하시는지요? 예를들어 성공회는 독신에 대해서 선택의 문제로 자율적인 판단 아래 두었습니다만, 이를 다시 언급하시는 것은 아니겠지요? 그렇다면 생활 상의 검소함과 청렴한 생활을 말씀하시는 것인가요? 예를들어 성직자의 사례비와 같은 것이라면 성공회 성직자들은 아마 가장 청빈한 생활을 하는 경우에 해당할는지 모릅니다. 이 문제에 답변하려고 인터넷에서 검색해보니 2001년도 보건복지부 발표 최저생계비는 4인 가족 기준으로 96만원이 채 안된다고 합니다. 제 경우가 4인 가족에 해당되는데 이 언저리에 있지요. 어찌보면 부끄러운 일이지만 성공회 성직자들에 대한 사례비가 이에도 못미치는 경우가 많아서 성직자들 안에서 다시 “나눔 운동”을 벌이기도 하지요. 이는 근전에 김수환 추기경께서 천주교 사제들의 과소비 행태에 대해 경고하시며 구체적으로 “골프”까지 언급하시며 우려하셨던 것을 되새기면 잘 대비되리라 생각합니다.

주낙현 신부

Written by skhfaq

8월 18, 2001 at 2:44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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