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회 질문 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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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회와 천주교의 상호 미사 참석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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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주신부님… 전 에큐메니컬 운동에 관심이 많은 카톨릭 신자입니다… 성공회, 정교회, 콥트교회등의 형제교회에 관심이 많습니다… “왜 갈라졌어야만 하나” 생각이 계속 머리 속을 떠나지 않습니다… 물론 우리가 누누히 배운 역사적 배경이나 정치적 배경은 떼어 놓고 말입니다.. 전 30대 초반의 청년 신자인 동시에 직장인이라서 카톨릭 교회에서 주관하는 사도직학교에 등록하기가 현실적으로 어렵습니다.

가끔 미사 후 저희 본당 신부님께 교회의 일치에 관한 질문을 많이 합니다….

카톨릭 신자로서 성공회 미사에 참석할 수 있는지…(가능하다고 하셨습니다)
성체를 모셔도 되는지… 또 거꾸로 성공회 신자의 카톨릭 미사 참석은 그러한지…
다른 분들에 의해 저의 질문이 교리적 논쟁을 일으킬 소지가 있다면…답변은 안 해 주셔도 되구요… (예를 들어… 신품성사, 수위권등…)

아울러 여기 방문하시는 카톨릭 신부님, 수사님, 신학생님의 고견도 듣고 싶습니다…

오늘은 카톨릭 교회에서 지정한 농민 주일입니다…
저희의 일용한 양식을 땀과 힘으로 경작하는 이 세상의 모든 농민들께 주님의 축북이 함께하시기를 빕니다… 요셉 배상…

+ 주님의 평화

요셉님 안녕하세요? 교회 전통 간의 대화에 깊은 관심을 가지신 분을 만나니 기쁘고 반갑습니다. 교회의 분열은 그리스도교의 역사에 많은 유산을 마련해 놓았습니다. 대체로 그것은 서로에 대한 반목과 질시로 이어졌지만, 한편으로는 서로 다른 문화와 역사라는 맥락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다양한 신앙의 열매를 가져다 주는 불가피한 것이었다는 생각에 이르기도 합니다.

역사적 배경과 원인은 그 나름대로 언급하고 논구해야 할 여지가 있다면, 또 그것과 다른 맥락 속에 있는 우리가 서로 함께 이해해야 할 면들이 더욱 크고 중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요셉님의 고민은 모든 그리스도교 신자들이 나눠야 할 태도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주신 질문은 대체로 천주교 측에서 답변해야 할 것들이라는 생각이 먼저 들지만, 그걸 성공회의 처지로 돌려 놓고 답변 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러자면 질문의 방향이 조금 달라지는 것도 피할 수 없습니다. 그걸 이해해 주시겠지요?

우 선 천주교 신자가 성공회 미사에 참석할 수 있느냐는 질문입니다. 요셉님께서 상담하신 천주교 신부님께서는 가능하다고 하셨는데, 그 참여가 어느 정도까지 가능한 지는 모르겠습니다. 다만 제가 아는 한에서 한국 천주교의 사목지침서에서는 피치 못하게 천주교에서 미사를 드리지 못하는 경우, 혹은 위급한 경우에 한해서 성공회에서 미사를 드리고 영성체를 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사목적 상황에 따른 제한이 있습니다. 성공회는 어떤 경우이든 적법하게 세례를 받은 신자라면 성공회 미사(감사성찬례)에 참여하여 영성체를 할 수 있습니다. 천주교회와는 달리 성공회는 이런 적법한 세례의 범위를 거의 대부분의 건전한 개신교 교단들과 천주교, 정교회의 세례까지 확대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삼위일체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은 모든 그리스도교 신자들은 성공회 미사에 참석하고 영성체를 할 수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성찬례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열려 있는 식탁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여전히 성찬 이해의 교리적 차이가 여전하기 때문에 되도록이면 미사에 참석하기 전에 성공회 성직자와의 상담이나 대화를 갖도록 권유합니다.

두 번째 질문은 성공회 신자가 천주교 미사에 참여해서 영성체를 할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천주교 측이 답변해야 할 것이지만, 제가 이해하고 있는 내용을 밝히면 이렇습니다. 천주교가 성공회의 세례를 적법한 것으로 인정하고 있으나, 일정한 교리 교육과 “일치 예식”을 통해서 천주교 신자가 된 이후에 영성체를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잘못된 이해라면 고쳐주시기 바랍니다.

이 와 관련해서 미국에서 공부하고 있는 특수한 처지에서 제 경험을 나누고자 합니다. 이곳은 지역과 교회마다 차이가 있긴 하지만, 성공회 신자가 천주교 안에서 조건 없이 영성체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성공회의 경우는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영성체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정교회는 서방교회(천주교, 성공회 및 기타 개신교단) 신자들을 영성체로 초대하지 않습니다.

아 울러 성공회 일각에서 논의되는 문제 가운데 하나는 세례를 받지 않은 사람도 영성체를 할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른바 “영성체 개방”(Open Communion)에 관련된 논쟁이 그것인데, 예수님의 식탁 공동체 혹은 밥상 공동체가 어떤 차별의 벽도 철폐하는 매우 급진적인 환대(radical hospitality)였다는 점에서 그 뜻을 새롭게 하고 실천하자는 취지입니다. 이를 둘러싸고 많은 논쟁이 진행되고 있습니다만, 어쨌든 도대체 성찬례라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근본적인 질문을 새롭게 생각하고, 그리스도인됨이 무엇인지를 되새기는 계기라고 생각합니다.

제 짧은 답변이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좋은 대화의 계기를 열어주신 요셉님께 감사 드립니다.

주낙현 신부 합장

Written by skhfaq

7월 21, 2005 at 3:52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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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회와 천주교의 성찬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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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제님! 저는 가톨릭 사제가 되기 위해 공부하는 신학생입니다.
성공회에 대해 궁금한 것이 있어서 글을 남깁니다.

성공회의 미사 진행은 천주교의 진행 방법과 같은지 궁금합니다. 부제님도 잘 아시겠지만 천주교는 말씀의 전례와 성찬의 전례로 나뉘어 집니다. 그리고 성찬의 전례가 미사의 핵심이 되고 빵과 포도주를 축성해서 그 축성된 것은 그리스도의 실제 몸과 피로
성화가 됩니다. 성공회 미사에서도 빵과 포도주의 축성을 통해 그리스도의 실제 몸과 피로 성변화가 됨을 믿고 있는지도 궁금합니다.
그리고 세례명을 얻게 될 때 가톨릭은 사도좌에서 시성을 한 성인의 이름을 따서 이름을 붙입니다. 성공회에서도 세례명을 얻게 되는데 어떤 기준으로 세례명을 붙이는지요. 참고로 제 세례명은 요한 보스꼬입니다. 1920년대에 시성이 된 이탈리아 신부입니다.

주님 안에서 일치되길 바라면서 부제님께 글을 남겼습니다. 부제님께 주님이 은총이 가득하시길 기도드립니다. 답변을 부탁드리며 또 성공회에 대해 궁금한 것이 있으면 글을 올리겠습니다.

+ 주님의 평화

이정은 요한 보스꼬 형제에게,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된 형제로 함께 다양한 고민을 나눌 수 있게 돼서 즐겁습니다. 하느님의 종으로 부름받아 이를 위해 정진하는 사람으로 만난 것도 큰 기쁨입니다.

이정은 형제의 질문은 매우 어렵고 난해한 질문인지라, 저처럼 배움이 부족한 사람이 충분한 답을 할 수 있을지 염려됩니다. 하지만 이런 대화 자체가 배움의 과정이라 생각하고 답변할 용기를 내어 보지요.

이정은 형제의 질문 :

성공회의 미사 진행은 천주교의 진행 방법과 같은지 궁금합니다. 부제님도 잘 아시겠지만 천주교는 말씀의 전례와 성찬의 전례로 나뉘어 집니다. 그리고 성찬의 전례가 미사의 핵심이 되고 빵과 포도주를 축성해서 그 축성된 것은 그리스도의 실제 몸과 피로 성화가 됩니다. 성공회 미사에서도 빵과 포도주의 축성을 통해 그리스도의 실제 몸과 피로 성변화가 됨을 믿고 있는지도 궁금합니다.

답변 시도 :

1. 성공회와 천주교 미사의 핵심은?

아시다시피 성공회는 16세기 영국종교개혁을 통해서 드러난 개신교회 가운데 하나입니다. 하지만 다른 대륙의 종교개혁과는 달리 성공회는 성서의 권위에 대한 인정뿐만 아니라 초대교회로부터 이어오는 교회 전통에 대한 존중을 저버리지 않았습니다. 이 교회 전통이라는 것의 핵심에는 역시 성찬례의 거행이 있겠지요. 그리고 그 성찬례의 형식과 흐름은 초대 이후 중세를 통해서 발전된 성찬례와 그 신학의 영향을 그대로 물려받았습니다. 물론 성공회가 동의하지 않았던 몇 가지 교리적인 문제는 제거했지요. 그래서 성공회 종교개혁의 결과물은 성공회의 예전서의 결집이요 표준이라 할 수 있는 공동기도서(The Book of Common Prayer)로 나타났습니다. 역사적인 변천을 겪은 것은 사실이지만 성찬례를 그리스도교 신앙의 핵심으로 생각한 것에는 변함이 없었습니다. 성공회와 천주교는 이런 점에서 성서와 초대교회의 전통을 이어받고자 노력했습니다.

그러나 이정은 형제의 표현 속에서 몇 가지 생각할 여지가 있는 것을 발견합니다. 보통 사용하는 “미사”라는 말 자체가 별 근거가 없는 말이거니와, 그리스도교 예배의 핵심은 성찬례를 모두 드러내기에는 부족한 감이 있습니다. 이 때문에 다른 오해도 생기구요. 그런 점에서 말씀의 전례와 성찬의 전례로 크게 나뉘어져 있는 하나의 전례를 곧바로 유카리스트 즉 “감사 성찬례” 혹은 “성찬례”로 불러야 한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그러니 말씀과 성찬은 인위적으로 나뉜 것이 아니라 하나입니다. 그러므로 말씀보다는 성찬이 중심이라거나, 혹은 성찬보다는 말씀이 중심이라는 주장은 동의할 수 없습니다. 이 지점에서 천주교와 다른 여러 개신교들이 반성해야 할 점이 있다고 봅니다.

성공회와 천주교는 서로 갈라진 이래 다양한 일치 노력을 해왔습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한국에서는 개신교와 천주교의 공동 작업으로 탄생한 “공동번역 성서”라고 할 수 있겠고, 현재 한국성공회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고 있는 성찬례문인 “1982년 미사”는 세계 교회의 일치 움직임과 함께 한국천주교회와의 일치를 위해 마련된 것으로서, 그 구조가 천주교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이후 한국천주교는 몇 번의 성찬례문 개정이 있어서 조금씩 차이가 생긴 것 같습니다만, 그 구조 상의 차이는 크지 않습니다.

다음 질문은 밑에 따로 붙여 놨어요. ^^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된 형제 주낙현 요셉 신부 ^^

Written by skhfaq

7월 26, 2001 at 2:24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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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사, 성찬례에 대한 간단한 설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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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카엘님께서 남긴 내용]
부제님 안녕하세요.
오랬만에 글을 적습니다.
다름이 아니오라 저희 모임에서 발표를 해야 하는데 미사에 관한 내용입니다.
저희 성공회에서 드리는 거룩한 미사에 대한 의미와 개신교회에서 드리는 예배의 차이와 성서적 의미를 짧게 알고자 합니다. 말씀의 전례와 성찬의 전례로 드리는 천주교회나 성공회식의 미사와 개신교의 예배는 약간은 다른것 같습니다… 그 미사라는 말의 의미를 알고 싶습니다.. 부제님 강건하십시요..

그리스도의 형제된 성프란시스성당, 미카엘 드림

+ 주님의 평화,

아기 예수님의 탄생을 기다리는 대림절입니다. 설레는 마음으로 힘없고 천진한 아기로 오신 예수님을 찬양합니다.

먼저 답변이 늦은 점 대단히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좀더 생각을 해서 성실한 답변을 올린다고 미루다 보니, 답변은 고사하고 질문하신 분만 지치게 만들고 있군요. 대단히 죄송합니다.

성공회는 초대교회가 그랬던 것처럼 성찬례를 매우 중요하게 여깁니다. 성찬례 안에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죽음, 그리고 부활을 기념하기 때문입니다. 이 성찬례는 다양한 이름이 있습니다. 미카엘 형제께서 물으신 미사(Missa)와 감사제(Eucharist), 주의 만찬(Lord’s Supper), 그리고 거룩한 교제(Holy Communion) 등이 그리스도교 예배의 핵심인 성찬례의 다양한 이름들입니다.

먼저 ‘미사’라는 말에 대한 해명이 필요하겠군요. 사실 이 말은 그 뜻이 정확하지 않습니다. 다만 예배 말미에 외치는 “Ite, missa est”(이제 끝났습니다)라는 말에 비추어 파견의 의미를 갖지 않았나 추측합니다. 어떤 분들은 라틴어 mittere(파견하다)의 변형인 missio에서 나왔다고도 하지만 확실하지는 않습니다. 어떤 점에서 미사는 정체불명의 용어라는 말이지요. 하지만 성찬례(Eucarist)를 일컬어 약 4-5세기부터 ‘미사’라는 말을 쓰던 흔적이 있다고 합니다. 하여튼 미사라는 말은 그리스도교의 성찬예배에 대한 별칭이라고 하면 좋을 것입니다. 하지만 최근에는 이 용어를 잘 쓰지 않는 경향이 있습니다. 성공회는 더욱 그렇습니다만 아직 많이 쓰고 있는 현실이지요.

미사와 예배를 구별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앞서 말한대로 예배에 대한 그리 적절치 못한 별칭이 미사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핵심은 예배입니다. 예배는 구약성서와 신약성서에 다양한 근거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이 우주를 창조하신 하느님께 깊은 경의와 존경을 표하는 모든 행위를 말합니다. 예배는 모든 그리스도인의 의무라는 점에서 leiturgia라고도 합니다. 바로 예전/전례를 뜻하는 liturgy의 어원이지요. 즉 예배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하느님을 자신의 창조자요 주인으로 모시며 깊이 사랑하는 것을 표현하는 모든 행위라고 할까요? 이런 예배에 대한 우리 인간의 자세는 요한복음 4:24을 참조하실 수 있습니다. 아주 익숙한 구절입니다.

이렇게 보면 로마 가톨릭과 개신교의 예배가 형태상으로는 많은 차이가 있지만 그 핵심은 큰 차이가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다만 개신교는 16세기 종교개혁의 과정에서 로마 가톨릭의 중세적인 예배 전통을 거부하면서 매우 단순한 예배 형태를 취했습니다. 이들이 취한 예배의 모양은 매우 다양했습니다. 영국의 경우 로마 가톨릭의 미신적인 예배 행위를 제거하는 동시에 초대교회에서 발전되었던 예배 전통을 유지하고자 했습니다. 그러다보니 형태적으로는 로마 가톨릭과 흡사한 면이 많지요. 하지만 이것은 로마 가톨릭과 흡사한 것이 아니라 초대교회에서 발전된 예배에 되돌아가고자 한 결과라고 해야 옳습니다. 또한 루터교도 전통적인 예배 양식을 많이 받아들였지요. 이른바 개혁교회들은 좀더 급진적인 예배 개혁을 단행했지만, 역시 초대교회의 다양한 예배 전통에 기대고 있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성공회의 전통적인 아침기도(조도)양식과 개신교 예배(성찬례를 생략한)이 매우 흡사하다는 것입니다. 한번 기도서를 펼쳐놓고 비교해 보시지요. 이 상호간의ㅌ 영향사에 대한 연구도 있습니다. 다만 개신교가 말씀의 선포에만 집중한 나머지 성찬례에 대한 인식이 소홀했던 것은 아쉬운 일입니다. 하지만 요즘 들어서는 성찬례를 자주 거행하며 말씀과 성찬이라는 예배의 균형과 그 관계를 재정립하려는 시도가 자주 엿보입니다.

윌리암 템플 캔터베리 대주교는 “예배한다는 것은 하느님의 거룩함에 힘입어 양심을 되살리는 것이며, 하느님의 진리를 마음의 양식으로 삼는 것이다. 또한 하느님의 아름다움을 통해서 잡생각을 비우는 것이며, 하느님의 사랑에 마음을 개방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하느님의 뜻에 나의 의지를 바치는 것이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이 말에 성실한 그리스도인인지를 항상 되물으며 성찰했으면 합니다.

도움이 되셨길 바라며.

그리스도의 교제(communion) 안에 있는 주낙현 요셉 부제 드림 ^^

Written by skhfaq

12월 5, 2000 at 1:16 오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