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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서 성찬례의 다양성과 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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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낙현 신부님께

신부님께 예전학을 전공하신다기에, 또한 감리교와 성공회는 역사적인(예전적인) 유산을 공유하고 있는 부분이 많기에 용기를 내어, 주의 만찬례(성찬예배)의 성찬기도 양식에 대한 저의 견해를 몇 자 적고, 관련된 질문을 드리고자 합니다.

제 질문은 미국 성공회 공도문집 (The Book of Common Prayer) 1979년도판 323쪽부터 시작되는 The Holy Eucharist: Rite One (성찬기도/축성경 제1양식?)과 355쪽부터 시작되는 The Holy Eucharist: Rite Two (성찬기도/축성경 제2양식)의 차이에 관한 것입니다.

다 아시는 것이겠지만, 제1양식은 토마스 크랜머 대주교님등이 중세의 전통적인 로마미사경본을 성서적인 원칙에 따라 개정하여 공도문 제1판에 실으셨던 최초의 영어 미사/성찬례에 그 역사적 기원을 두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 후 여러 차례 공도문집의 개정에도 불구하고 그 기본 정신과 의식문의 표현들은 오늘날까지도 유지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제가 이 역사적이고 전통적인 제1양식에 관심을 가지는 이유는 그것이 존 웨슬리를 통해 감리교회에도 전해져서 미연합감리교회가 1988년 성가집과 1992년 예배서를 개정할 때까지, 그리고 한국 감리교회도 최근 들어 새 예배서를 내기 전까지, 적어도 의식문(감리교는 “예문”이라고 부릅니다)에 있어서는 근간이 되어왔기 때문입니다. 물론 실제로는 그 예문을 전해준 존 웨슬리 목사님의 의도대로 주의 만찬례가 집례/집전되지는 않았습니다. 한국 감리교회의 경우는 1970년대 이후, 더 축약된 (Sursum corda 와 Sanctus 등이 생략된) 예문만으로 진행되었습니다. 그 사정은 새 예배서가 나온 지금도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이에 비해 최근 널리 사용되고 있는 제2양식은 성공회, 미연합감리교회, 로마 카톨릭을 막론하고 히폴리투스의 사도전승 재발견 이후, 20세기의 Liturgical Movement의 성과를 반영한 것이라고 여겨집니다. 신부님이 번역해서 올리신 성찬기도도 이 제2양식을 더 발전시킨 것 같습니다. 잘 아시겠지만, 제1양식이 성찬/성체에의 참여를 통해 그리스도의 속죄의 은총과 그에 따른 여타의 축복과 은택을 받아 누리는 다소 개인적인 경건/신심에 초점이 맞춰진 것에 비해, 제2양식은 하느님의 창조섭리와 우리 인간의 타락과 배반에도 불구하고 구세주를 보내시어 우리를 구속하시는 하느님의 화해의 은총 및 성령의 내림을 통한 Sanctification(축성.성화)과 친교에 강조점이 두어진, 한마디로 우주적인 구속사의 vision 안에 공동체적인 일치의 신학을 잘 표현한 것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최근에는 환경/생태적인 의향도 더 부각되는 듯합니다). 제2양식이 지닌 이러 저러한 장점 때문인지, 제가 참예해 본 미국 성공회 성찬예배는 거의 100%가 이 제2양식으로 집전되었습니다. 이건 여담인데, 저와 교분이 있던 말레이시아 출신 성공회 신부님은 기숙사 방에서 아침에 혼자서 조도를 드리실 때, 공도문집 1양식도 아닌 로마 카톨릭의 제1양식으로 하신다는 말씀을 들었던 바, 저로서는 납득하기 힘들었습니다.[고교회 경향의 종착점은 역시 로마인가? Like J. H. Newman?]

이건 질문인데, 성공회에서도 로마 천주교처럼 교중미사가 아닌 사제 혼자 드리는 사적인 미사가 가능한가요?

진짜 궁금한 질문은, 미국 성공회 또는 한국 성공회에서 이 성찬기도 제1양식으로 드려지는 미사가 몇 퍼센트 정도 되나요? 물론 개개 본당의 분위기나 사제들의 선택에 따라 다르겠지만요.

그리고 신부님은 개인적으로 성찬기도 제1양식에 대해서 어떤 입장이신가요?
[예컨대, 시대에 뒤진 것이므로 폐지하거나 되도록 사용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보시는지, 성공회의 독자적인 것이므로 역사적 차원에서 보존하는 것이 좋다고 보시는지, 좀더 그 가치를 살려야 한다고 보시는지?]

솔직히 저는 제1양식의 개인적(?) 영성이 제2양식의 보편적, 공동체적 영성에서 다소 간과되는 듯한 자기 성찰의 겸비함과 참회의 깊이를 잘 표현해 주고 있기에 좋아할뿐더러, 제2양식과 병행하여 더 널리 사용되어야 하리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제가 속한 감리교회의 컨텍스트에서 말입니다.

혹 제가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이 있다면 깨우쳐 주심 감사드리고요, 또 불쑥 던지는 무례한 질문에 널리 해량하심 기대합니다.

루시안 올림

+ 주님의 평화

루 시안님 반갑습니다. 좀 복잡한 일들이 겹쳐 일어나고 있는 통에 빠른 답변을 마련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 탓에 더 늦기 전에 시도하는 아래의 답변이 충실할 지 모르겠습니다. 매우 심도 깊고 매우 정확한 이해에 바탕한 질문을 주신 것에 우선 감사드리고,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1.
현재 루시안님이 예를 들어 설명하고, 질문하는 내용은 기본적으로 “1979년 미국성공회 기도서”(BCP 1979)를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보니 한국성공회에서 사용하는 용어와 혼란스러운 부분이 있어서 먼저 바로잡으면서 하겠습니다(이것은 편의를 위한 것이지 오류에 대한 정정이 아닙니다.)

즉 The Holy Eucharist: Rite One 은 “감사성찬례 형식 1”로 The Holy Eucharist: Rite Two는 “감사성찬례 형식 2”로 표시하는 것이 최근 한국성공회 기도서 개정과 함께 도입된 구분법입니다.

그리고 각각의 성찬례식에 들어 있는 성찬기도(Eucharistic Prayer)의 다양한 형태를 “양식”이라는 말로 구분합니다.

이에 따르면, 1979년 미국성공회 기도서는 감사성찬례 1형식과 2형식을 가지고 있으며, 1형식에 2개 양식의 성찬기도, 2형식에 4개 양식의 성찬기도를 가지고 있습니다.

2. 감사성찬례 1형식:
정 확히 지적하신 대로, 성찬례 1형식은 1549년 크랜머 대주교의 첫 공동기도서의 형식을 충실히 따르고 있습니다. 이것은 영국성공회의 대표적인 기도서인 1662년 기도서와는 사뭇 다른 점이 있습니다. 미국성공회가 이 형식을 사용하게 된 것은 여러 배경이 있지만 무엇보다도 미국성공회와 스코틀랜드 성공회와의 관계라는 특이한 역사 속에서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어쨌든 미국성공회는 최소한 1789년 공식 기도서 이후 1형식이 1928년 기도서까지 공식적인 성찬례의 내용이었습니다. 그러나 1979년 현행 기도서가 나오면서 이를 매우 약간 교정해서 1형식이라는 이름으로 남아 있게 되었습니다.

1형식의 성찬기도 1양식은 1549년 기도서의 영향 아래, 미국에서 1789년 이후로 계속 사용된 것으로, 그 주제는 분명하게 “그리스도의 희생을 통한 구속 사역”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그러나 1979년 기도서는 2양식을 만들어 첨부하면서 그 동안 강조되지 않던 “하느님의 창조 사건과 그리스도의 성육신 사건”을 부각시켰습니다.

3. 감사성찬례 2형식:
1979년 기도서의 핵심적인 내용입니다. 각각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A 양식은 전통적인 성공회 성찬기도의 신학을 이어 받아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에 초점을 두고 있습니다. B 양식은 히뽈리투스(사도전승)의 성찬기도를 현대화한 것으로 “하느님의 창조 사건과 그리스도의 구원 사건”을 극명하게 보여줍니다. C 양식은 미국성공회 예전학자의 작품으로 지속되는 하느님의 창조 사건에 깃든 하느님의 현현(계시)에 초점을 둡니다. 마지막으로 D 양식은 4세기 성 바실 전례에 기초한 것으로 동방정교회를 비롯해서 로마 가톨릭, 그리고 감리교와 루터교 등과 대화 속에서 함께 사용할 수 있도록 공인된 양식입니다.

4. 성찬례 형식의 선택:
성찬례의 각 형식과 양식에 깃든 의미는 위에서 설명한 바와 같고, 교회 공동체는 교회력(교회절기)의 주제에 따라 다양하게 선택하여 사용할 수 있습니다. 1형식은 여전히 고어체 영어를 사용하고 있으며, 2형식은 현대 영어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것입니다. 블로그에 번역해서 올려두었던 90년 말의 새로운 성찬례는 이런 구분을 따른다면 아예 3형식이라고 해야 할 것 같은데 “포용적 언어”의 사용과 창조로부터 이어오는 구속사의 전개, 동방 전례의 요소를 도입한 것들이 특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교인의 성향과, 교회의 시간(교회력/절기)의 주제, 그리고 신앙 훈련의 계획과 더불어 선택할 수 있는 융통성이 있습니다. 물론 개인의 차이에 따라서 좀더 좋아하고 깊은 영성을 느끼는 성찬기도가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모든 것을 충족시키는 성찬기도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1형식이 현대 신학적으로도 큰 문제를 지고 있다고 생각하지도 않으며, 2형식의 성찬기도들이 늘 적절한 것도 아니라고 봅니다. 그렇다면야 다른 성찬기도가 나올 이유가 없었겠지요.

미국성공회에서는 여전히 1양식을 사용합니다만, 2양식이 더욱 보편적입니다. 그러나 주일에 성찬례가 여러번 있는 경우 꼭 1양식을 아침 일찍 배정해두는 경우를 많이 봅니다. 그리고 특정한 절기에 사용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몇 퍼센트라고까지는 정확히 말씀드릴 수가 없겠군요.

5.
한국성공회의 경우는 조금 다르니 별도의 설명이 필요합니다. 1965년 기도서의 경우는 위에서 말한 1549년 기도서의 성찬례와 매우 비슷한 성찬례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1982년 새로운 성찬례가 나오면서, 처음으로 다양한 성찬기도 양식이 마련되었는데, 여기서는 성찬기도 2양식이 바로 1549년 전통의 1965년 기도서의 성찬기도를 현대말로 고친 것이었습니다.

6.
한국성공회의 공식기도서인 2004년 기도서는, 미국성공회와 비슷하게 2 형식의 감사성찬례를 가지고 있는데, 2형식이 짧은 성찬례인 반면에 1형식은 4개 양식을 갖고 있습니다. 1양식은 1549년/1965년 성찬기도를 따르며, 2양식은 2000년 영국기도서에서 따왔고, 3양식은 성 크리소스톰 기도문을 따랐다는 1982년 미사 예문의 3양식을 좀더 손질한 것이며, 4양식은 미국성공회의 경우와 같이 에큐메니칼 감사기도로 인정받고 있는 성 바실 전례를 이용한 것입니다. 그런데, 가만 보니 우리 신학의 반성에서 나온 것이 없군요. “우리 기도서에 우리 신학의 전통이 없다.” 저로서는 매우 안타까운 부분입니다.

7.
성공회 사제 혹은 신자들 가운데 로마 가톨릭 미사에 대한 동경심을 갖는 분들이 있습니다만, 제가 알고 느끼기로는 극소수에 불과하고 상당히 편협한 생각을 가진 분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저는 어느 교단의 전통의 성찬례이건 서로에게서 배우며 자기 전통을 풍요롭게 하기를 격려하고 실천할 지언정, 교회 공동체가 함께 합의하여 교회의 전례의 근간으로 세운 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개인적인 신심 행위나 기도를 위해서 다른 교단의 기도나 성찬기도를 사용하는 것도 별 문제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8.
성공회는 원칙적으로 성찬례를 공동체를 통한 하느님 예배라고 생각하는 까닭에 사제가 혼자서 드리는 이른바 “개인 미사”를 허용하지 않습니다. 기본적으로 성찬례는 은총의 나눔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굳이 사제 자신의 신심 행위로서 개인 미사를 드리겠다는 것을 강제로 막을 방도는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성공회에 그런 분들이 얼마나 될 지 모르겠습니다만.

9.
개인의 기도를 위해서는 성공회는 훌륭한 “시간 전례”(Liturgy of Hour 성무일도) 전통을 발전시켰습니다. 크랜머 대주교는 이를 수도원의 전유물이 아니라 일반 신자들이 모두 사용할 수 있도록 했고, 그 형식 또한 공동체 예배 형식이었습니다. 그러나 시간전례-성무일도의 전통은 이른바 일반 신자들의 공동체 전례인 “캐시드럴 전통”과 소규모 혹은 개인적 기도인 “수도원 전통”의 시간전례로 나뉘어 발전했으니 서로 보완하며 사용할 수가 있겠지요.

10. 뭐 이리저리 세면서 답변이 장황해졌습니다. 아무쪼록 도움이 되었기를 바랍니다.

마음을 드높이, 주님을 향하여 (Sursum corda. Habemus ad Dominum)

주낙현 신부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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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skhfaq

2005년 5월 22일 at 3:42 오후

성공회의 모호한 정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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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준님의 질문 4

via media를 택하는 성공회의 특성상 신자들도 성공회에서 태어나고 자란 교인들도 있지만 천주교에서나 개신교에서 옮겨온 이들도 꽤나 많은 것 같습니다. 즉, 먼저 그리스도교를 어떤 형태로든 접하지 않고서는 성공회를 이해하고 다가가기가 너무 어렵지 않느냐 하는 이야기입니다. 특히 예배전례문이나 기도서도 고어투가 많아 어렵기도 하고 신자들의 정체성도 천주교에서 온 신자는 성만찬을 천주교의 희생제사 그대로 이해하고 있을 수 있고 개신교에서 온 신자들은 일부는 그저 예식이 아름다워 올 수도 있고 여하튼 성공회의 정체성이 너무 복잡하지 않느냐 하는 것입니다.

답변의 시도 4

좋은 지적이십니다. 현재 성공회 신자의 많은 분들이 천주교와 다른 개신교파에서 옮겨 오신 분들입니다. 그러나 역시 성공회를 통해서 처음 그리스도교에 입문하시는 분들도 많습니다. 어떤 조직과 공동체에 들어간다는 것은 늘 새로운 경험과 도전을 요구합니다. 그런데 그 조직이 좀더 광범위하게 알려져 있으면 그에 대한 거부감이 적고, 동화되는데도 시간이 적게 걸리는 것이지요. 우리 나라의 교회 사정상 천주교나 개신교가 그런 예이지요. 아마도 성공회가 우리 사회에서 작은 교단으로 존재하기 때문에 나온 걱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이것은 성공회가 좀더 적극적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다가서려는 노력과 다양한 신앙교육을 마련해야 한다는 애정 어린 비판으로 들립니다. 그런 비판에 감사드립니다.

성공회는 현재 기도서를 개정하는 과정에 있습니다. 언어의 문제는 이런 점들을 통해서 조금씩 해결되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실제로 언어도 어떻게 익숙해지느냐에 따라서 전혀 다른 결과를 보여줍니다. 예를 들어 개신교는 아직도 고어투가 지배하고 있는 한글개역판 성서를 사용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니 모든 언어나 예식, 그리고 어떤 정체성에 대한 선언이 쉽고 명확해야 한다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어떻게 우리의 신앙을 좀더 깊이 할 수 있을까 하는 관심에서 이런 일들을 다루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성공회는 이런 점에서 교리 자체에 대한 논쟁을 삼가는 전통을 갖고 있습니다. 분명히 로마 가톨릭 교회의 “실체 변화 교리”(화체설)을 받아들이지 않지만, 한 사람의 신앙인이 갖고 있는 이 문제에 대한 신앙적 확답은 사실 매우 폭넓어서 교리적인 몇가지 선언과 설명으로 담아내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개신교의 성찬례 분위기를 생각해 보십시오. 같은 교단의 교회라 할 지라도 그에 접근하는 태도들이 얼마나 다양합니까?

성공회는 이러한 다양성을 어떻게 하면 한 공동체 안에서 서로 격려하고 축하며 나눌 수 있을까를 고민합니다. 정체성은 그러므로 어떤 교리적인 선언에서나 확고한 신념에서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굳이 성공회에게 자신의 정체성을 표현하라고 한다면, 우리는 “성서와 교회의 역사적인 전통 안에서 하느님께 예배하는 공동체”라고 말할 것입니다. 그 예배 가운데서 우리는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새로운 실천을 다짐하면서 신앙의 실천을 통해서 하느님께 다가서려고 노력하는 공동체인 것이지요. 저는 그럼 점에서 “비아 메디아”(via media)를 어떤 가운데의 길, 중도로 표현하는 것보다는, “길 가운데” 있는 신앙인과 교회, 즉 하느님을 향해서 “계속 길을 걸어가는” 태도로 이해하고 싶은 충동이 많습니다. 물론 이것은 제 개인적인 생각입니다만, 아마도 성공회의 다양성과 어떤 점에서 혼란스러운 것 같은 그 정체성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Written by skhfaq

2003년 10월 6일 at 1:13 오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