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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애 – 좀더 깊은 기도와 성찰을 위한 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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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좀더 깊은 기도와 성찰을 위한 제안

어찌 보면 매우 무책임한 답변과 요구일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만, 저는 이 문제를 가지고 씨름하고 있는 제 자신과 많은 그리스도인들께 손쉬운 판단을 잠시 유보하고 하느님의 뜻에 대한 좀더 깊은 성찰과 기도를 요청합니다. 그 성찰은 내용을 저는 이렇게 정리하고 싶습니다.

첫째로 하느님의 창조에 대한 우리의 시각을 좀더 멀리, 그리고 깊이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생각과 신념으로 하느님의 뜻을 모두 헤아릴 수 있겠느냐는 자문과 그 안에서 얻게 될 “하느님 앞에 선 자의 겸손”입니다.

둘째, 지금까지 우리는, 자신과는 다른 사람들, 비종교인, 타종교인, 사회적 약자들에 대해서 어떻게 대했는가? 나 자신과 다른 사람들, 내가 잘 알지 못하는 낯선 사람들을 우리는 어떻게 바라보았는가? 이 질문이 우리 각자 앞에 놓여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사실 “우리”라는 말에는 그 낯선 사람을 포용하는 뜻이 있는 것인데, 언제부터인지 “우리끼리”라는 의미가 더 강세를 보이는 듯합니다.

셋째, 우리 신앙인은 하느님의 뜻을 찾아 그 길을 걸으며, 그 길 속에서 은총을 누리는 사람이지, 하느님의 뜻을 알았노라고 누구에게 짐짓 강요하는 사람일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위의 성찰과 기도를 실제로 진전시키는데 중요한 밑바탕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성찰들은 사실 제 개인적인 신앙적인 고민이거니와, 또한 성공회 신앙의 전통에서 얻은 큰 지혜라고 생각합니다. 언젠가 어떤 분의 질문에 답하면서 성공회는 “비아 메디아” Via Media, 즉 “중간의 길”이라고 표현되기도 했지만, 달리 표현하면, “길 걷는 가운데”가 아닐까 하고 생각해 보았습니다. 이런 와중에 최근 책을 읽다가 전혀 다른 맥락에서 장송곡의 표제어인 “메디아 비타” Media Vita 라는 말을 만났습니다. 우리 말로 하자면 “삶의 한 가운데서”라고 옮길 수 있을 터인데, 그 장송곡의 맥락을 생략하고 이 말 자체가 주는 울림을 “비아 메디아”와 함께 생각해보려고 했고, 지금도 씨름하고 있습니다.

그러던 차에 제 생각과 너무 닮아 있는 글을 만나서 기뻤습니다. 역시 이 동성애 문제를 둘러싼 미국 성공회 안의 고민을 담고 있는 글인데, 그 글을 읽고 단숨에 번역해서 한국의 여러 신부님들과 함께 나누고자 했습니다. 미국성공회 사제(여성사제)이며, 대학과 신학교의 교수로 일하면서, 미국 교회 최고의 설교가 12명 안에 꼽히는 매우 통찰력 있고 영성 깊은 분의 글입니다. 사실 그 분의 글을 읽으면서 위에서 시도한 제 답변이 너무 너절한 것이 아니냐는 반성을 했습니다만, 이 글도 역시 이제 제 활시위를 떠난 것으로 생각하고, 그 판단을 읽는 분들께 맡겨야 한다는 생각에서 그냥 남겨 둡니다.

그 분의 깊은 성찰과 제 얄팍한 성찰을 비교하지는 말아주십시오. ^^

아, 그리고 최근에 번역되어 있는 책가운데 일부가 인터넷에 있어서 덧붙여 드립니다. 미국 천주교의 다니엘 헬미니악 신부의 책이 한글로 번역되었군요. 새로운 성서 해석의 일부분인데, 다른 성서 해석들과 비교할 수 있는 글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느님의 뜻을 찾는 길 속에서 만난 것을 기쁘게 생각하며,

주낙현 신부 합장

Written by skhfaq

11월 22, 2003 at 1:32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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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모 마리아와 통성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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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보니 개신교 쪽에 가까워진 사람입니다. 성공회 성당에도 마리아 상이 있나요? 앞의 글을 보니 그런 것 같네요. 근데 성모 마리아께서 왜 중요한 분인지 좀 궁금한데요. 성인의 한 사람으로 생각하는 건가요? 근데 천주교 쪽의 기도를 보면 마리아를 통해서 기도하는 내용이 많은 것 같던데. 성공회 쪽 기도도 그런가요?

양쪽에 별 차이가 없으면 성당에 다니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물어봅니다.

그리구요 교회에 가 보면 울면서 통성기도 하는 사람들이 많던데 왜 그런거죠? 그 사람들 이야기로는 기도 방식이 그런 식으로 바뀐 거라던데. 약간 이해하기가 어렵네요. 제가 뭐라고 할 자격은 없지만 그래도 좀. 기도란 건 마음의 간절함으로 이루어지는 것이지 겉모습의 간절함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는 데. 마음이 간절하면 그렇게 되는 건가? 제가 잘못 생각하는 건가요? 하긴 뭐 전 그런 말할 자격이 없네요. 전 교회에 다니지도 않으니까요. 이런 말을 써도 되나? 혹시 누군가 기분 나쁘시더라도 이해해 주시길.

이제 보니 전 기도하는 법도 잘 모르는 군요. 이왕 가르쳐 주시는 김에 기도하는 법도 좀. 앞으로 기도를 자주 해야 될 것 같아서.

제가 왜 이런 것들을 묻고 있는 지 모르겠네요. 그럼 이만.

+ 찬미 예수님,

좋은 질문에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늦은 답변에 용서를 구합니다.

성공회에도 경우에 따라 성모 마리아상을 마련해 둔 교회가 있지만, 전반적인 분위기는 아닙니다. 성모 마리아는 성공회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그리스도교가 매우 중요하게 여기는 성인이십니다. 그분은 하느님께서 친히 인간이 되셔서 이 세상에 오시는 통로가 되었고, 인간 예수님을 양육하셨으며, 예수님의 지상 생활 내내 그분의 뒤를 따르셨던 분입니다. 게다가 제자들도 도망친 마당에 십자가 처형의 장에서 죽어가는 자식을 보는 어머니로서의 고통을 감내하셨던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교회는 모두 성모 마리아를 위대한 신앙인의 모본으로 보며 그분을 존경하고 있습니다.

로마 가톨릭 교회에서 성모 마리아를 통해 드리는 기도가 있는데, 신학적으로 많은 논란의 여지가 있습니다. 성공회에서는 이를 대체로 거부합니다. “대체로”라고 한 것은 로마 가톨릭의 유습을 성공회 안에서도 보존하기를 원하는 분들도 있다는 뜻이지요. 하지만 이를 억지로 금지하거나 이단시하려고 하지는 않습니다. 성서적인 진리를 조용히 제 모습을 드러내기 마련이기 때문이지요.

사람마다 성격도 다르고 얼굴도 다르듯이, 기도하는 사람의 마음과 성격과 내용에 따라 기도의 형식과 겉모양도 달라지는 것 같습니다. 개신교의 많은 교파에서는 통성기도를 합니다. 이른바 외부인의 입장에서는 참 낯선 광경인 것이 사실이지만, 그런 기도를 바치는 분의 입장에서는 그만큼 간절한 기도이기도 할 것입니다. 형제(자매)님의 간절함이 깃든 “조용한” 기도를 드린다면 그것을 마다하실 하느님이 아니십니다.

기도에는 특별한 형식이 없습니다. 자신의 정직하고 간절한 마음을 하느님께 내어 비치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이렇게 하면 어떨까요?

하느님, 좋은 날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멘
하느님, 아직 건강한 삶을 살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런데 제건 이런 문제가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이때 구체적인 문제의 내용을 말씀할 수도 있겠지요?)….
하느님, 제 마음을 다 살피시어 이 기도를 들어 주세요. 아멘

그리스도교는 그리스도 예수님을 통해 하느님께 기도를 바칩니다. 그러니 기도 마지막에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라고 하지요.

도움이 되셨길 바랍니다.

주님의 넓고 크신 은총 안에서 주낙현 요셉 부제 드림 ^^

Written by skhfaq

1월 21, 2001 at 11:59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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