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회 질문 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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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해성사의 의미와 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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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주낙현 신부님.

겨울이라 날이 추운데 몸 건강하신지 모르겠습니다.
이번에 타교파 영접식으로 바우로라는 신명을 받았습니다.주임사제인 오정열 신부님이 지어주셨는데, 바우로처럼 살라는 좋은 뜻이 있을 거라고 봅니다.

주 신부님께서는 제가 성공회 교회에 잘 적응하기를 바란다고 축복하셨는데,덕분에 잘 적응하고 있습니다.교우님들이 따뜻하게 대해주시는 덕분이겠지요.

몸이 안 좋아서 한주 쉰 적이 있는데, 그 다음주 미사시간에 신부님과 교우님들이 환영해 주신적이 있을 정도입니다.
제가 글을 올린 이유는 고해성사와 만도에 대한 궁금증 때문입니다.

성탄절이 얼마 안남아서 신부님이 고해성사와 만도를 한다고 하셨습니다.
그 말씀을 들으니,자세하게 어떻게 고해성사와 만도를 드리는지 궁금해졌습니다.
오 신부님은 공도기도문에 다 나와있으니 보고 하면 된다고 하셨지만, 아직 성공회에 대해 모르는게 더 많은 저로서는 무척 궁금합니다.

이야기를 주저리 주저리 써 보았습니다.

바우로 드림.

+ 주님의 평화

김재홍 바우로 교우님 안녕하세요? 대림의 설레는 기쁨으로 함께 만나게 되어 기쁩니다. 먼저 성공회 신앙 전통 속에서 주님의 길을 함께 걸어가가게 된 것을 축하하고 기쁘게 생각합니다.

고 해성사와 만도에 대한 질문을 주셨는데, 우선 구분을 하자면, 이 두 가지가 필히 연결되어 있는 것은 아닙니다. 고해성사는 성공회가 전통적으로 가지고 있던 성사 가운데 하나이고, 만도(晩禱)는 현재 새로운 기도서에서 “저녁기도”로 쓰고 있는 예배의 한 형태를 말합니다. 성탄절이나 부활절, 혹은 큰 축일 전에 있는 만도 혹은 저녁기도는 대체로 “밤예식”이라는 다른 이름을 갖는데 영어식 표현으로는 “비질”(vigil)이라고도 합니다. 교인들이 모두 함께 참여하는 예배이므로 함께 안내를 받으며 함께 따라하시면 큰 문제는 없습니다. 문제는 역시 참여요 경험이니까요.

고해성사에 대해서 말씀드립니다. 고해성사는 그 동안 고백자의 “개인적인 죄의 고백”에만 초점을 두고, 또한 사제의 사죄권에만 집중되어, 그 의미가 손상되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런 반영으로 “고백성사”라는 말이 한동안 통용되었고, 혹은 현재 사용하는 “고해성사” 혹은 “고해예식” 역시 “고백”(이를 고)과 “죄의 용서”(풀 해)로 이해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고해성사의 큰 뜻은 죄의 고백과 회개 (penance) 그리고 하느님과의 화해 (reconciliation)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신의 잘못된 행동에서 “돌이켜서” 다시금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로 “화해”하는 것이 고해성사의 목적이라고 하겠습니다. 실제로 이러한 뜻을 가장 잘 드러내는 성사는 세례와 견진 성사입니다. 세례를 통해서 새로운 사람이 되어 새로운 공동체로 환영받음으로써 성찬을 함께 나누는 신앙 성장의 과정 속에서, 고해성사는 한번뿐인 세례와 견진이라는 입교예식을 계속해서 되새기고 우리 생활에 옮기면서 성찬을 위한 준비가 됩니다. 바로 이 때문에 많은 기도서들은 순서상 세례와 견진 성사 다음에 고해성사의 예식을 두는데, 매우 적절한 배열이라고 하겠습니다. 우리 기도서 역시 그런 배치를 따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고해성사를 어떻게 해야 할까요? 앞서 말씀드린 의미를 따라 생각한다면, 세례를 받기 전에 씻어내고 쓸어내려고 했던 것 – 유아세례라면 이후의 학습이나, 입교의 과정 속에서 새롭게 다짐했던 것 – 을 되새기는 것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즉 내 앞에 놓여 있어, 치워버리지 않고는 내 길을 걸어갈 수 없는 걸림돌들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고, 그 내용을 고백하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또한 이것은 대체로 하느님과 이웃과의 화해라는 견지에서 살펴야 한다고 봅니다. 그리고 신앙이 하느님과 이웃에 대한 사랑이라는 점에서 볼 때, 하느님을 불편하게 해드리는 것, 결국 그로 인해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 (이웃)을 불편하게 하는 내용들을 고백하고 용서를 청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고해성사가 하나의 신앙 훈련의 과정이라고 할 때, 너무 광범위하고 추상적인 내용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 내용을 구체화시키는 것이 좋습니다. 예를 들어 어느 특정한 기간을 두고 제한을 하든지, 가장 마음을 떠나지 않고 괴롭히는 문제들을 가지고 신부님과 만나시면 좋겠습니다. 고해성사는 구체적인 어떤 실마리를 명확히 함으로써 전체의 문제를 풀어나가는 기능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 때문에 여러 가지 역사적인 신학적인 논란에도 불구하고 성공회가 고해성사를 중요하게 여기며 보존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먼저 신부님과 고해성사를 위한 시간과 약속을 잡으시는게 우선이겠지요. 교회의 처지에 따라 다르지만, 아마 작은 고해소를 마련하거나 고해를 위한 칸막이를 설치하는 일이 많을 것입니다. 아니면 마주 비스듬히 앉아서 이야기할 수 있는 작은 고해방이 마련될 것입니다. 편안한 마음으로 다가 가셔서, 자신이 생각하고 준비했던 큰 마음의 걸림돌들을 가능하면 적으셔서 예식에 따라서 고하십시오. 그 전에 다른 상담이 필요하면 신부님께 요청할 수 있습니다. 고백을 듣는 신부님의 존재는 내가 잘할 때나 잘못할 때나 우리 삶에서, 그리고 우리 곁에서 내내 지켜 보고 계시던 하느님께서 “아무런 걱정 말거라” 하시면서, “어떤 문제라도 용서는 이미 선언되어 있다”라고 건네시는 하느님의 말 없는 표현을 위한 확증이라고 생각하십시오. 그러면 하느님께서는 신부님의 입을 빌어 “평안히 가십시오”라고 말씀하실 것입니다.

주낙현 신부 합장

Written by skhfaq

12월 13, 2005 at 4:02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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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해성사와 별세 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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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주 신부님…
궁금한게 있어서 글을 드립니다.
제가 다니는 장로교회에서는 고해성사와 별세만도라는게 없습니다.
그래서, 이들 성사에 대해서 밑의 한겨레 기사를 읽으면서, 궁금증이 생기더군요.
자세히 이들 성사에 대해서 설명해 주십시오.
그럼 하느님이 주시는 평안이 항상 충만하시길…

+ 주님의 평화 김재홍님 안녕하세요?

답변이 늦어 따라 질문 글을 올리셨군요.

우선 한겨레 신문에 난 소식을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잘 아는 친구 신부의 소식을 이렇게 들으니 매우 기쁩니다.

문의하신 고해성사와 별세만도에 대해서 답변드리겠습니다.

우선 고해성사에 관한 성공회의 이해는 이미 이 “질문이 있어요” 게시판에서 다룬 적이 있습니다. 그 내용을 따라가시면 도움을 얻으시리라 생각합니다. “고해성사”로 검색을 하시든지, 다음 링크를 따라가시면 됩니다. 고해성사 1 고해성사 2

두 번째, 별세만도에 관한 것입니다. 이는 쉽게 말해서 유교식의 제사를 대신해서 드리는 성공회식 별세자 기념 예배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만도”란 “저녁기도”의 한자말이니, 별세자 기념 저녁 기도라고 풀이할 수 있겠습니다. 개신교의 추도 예식에 해당하는 말입니다.

“별세 만도”라는 용어는 2004년 개정된 성공회 기도서 직전까지 사용되던 용어로서, 실은 장례기간 동안에 드리는 별세자 기념 저녁기도에 대한 명칭으로 상장예식의 일부입니다. 그러나 이 형식을 일반적으로 별세자 기념일(기일)에 가정에서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2004년 개정된 성공회 기도서에서는 상장예식에 있는 예배와 더불어, “별세 기념 예식”이라는 사목 예식을 따로 마련하고 있습니다. 성공회는 이 예식에서 전통적인 그리스도교 예배를 따르되, 우리 문화에 대한 존중과 가족들의 화목한 기념을 위해서 제사상을 차리는 것과 절하는 것을 금하지 않습니다.

다음은 2004년 성공회 기도서에서 따온 별세 기념 예식의 설명입니다.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별세 기념 예식” 이 예식은 차례나 기일 혹은 묘지방문시에 사용할 수 있다. 좀 더 엄숙한 예식이 필요하다면 빈소기도(별세기도)를 사용할 수 있다. 신자들이 드리는 별세기도는 별세자를 기억하며 그 영혼의 안식을 기원하는 하느님께 드리는 예배이다.

우리가 별세한 이를 위해 기도하는 이유는 첫째로 교회는 산자만의 교회가 아니고 그리스도 안에 있는 모든 이들이 교회의 구성원이라는 신앙 즉 성도의 상통에 따른 것이며 둘째는 비록 별세한 이라도 우리가 아직 사랑하고 기억하고 있으며 그들이 주님이 다시 오시는 날까지 하느님을 온전히 뵈올 수 있도록 성숙하는 과정 중에 있다는 신앙에 기인한다.(사도신경과 신앙의 개요)

절과 진설의 문제는 많은 이견의 차이가 있으나 이로 인한 가족 간의 갈등이 없도록 배려해야 한다. 다만 절은 생전의 부모님을 기념하고 그 영혼이 주님의 자비를 얻도록 기원하는 것이며 진설된 음식은 가족들의 화목과 우애를 위한 것임을 분명히 이해시켜야 한다.

기도상에는 십자고상과 촛불 2개 그리고 고인의 사진을 준비한다. 가능한한 꽃을 장식해서 분위기를 밝게 해둔다. 사진이 없으면 고인의 이름을 써서 붙여도 좋다. 기도상에 촛불을 점화함으로서 예식을 시작한다. 고인이 즐겨부르던 성가나 다른 적절한 성가를 선택해서 함께 부른다. (성공회 기도서 2004)

참고로 예식의 차례와 구성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시편 교독 2) 성서 독서 3) 사도신경 4) 주의 기도 5) 별세자와 가족을 위한 기도 6) 끝기도 7) 사랑과 화목을 위한 식사 도움이 되었길 바랍니다.

주낙현 신부 합장

Written by skhfaq

5월 27, 2005 at 3:37 오후

성공회 고해성사 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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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님 안녕하세요! 전에 변호사와 성공회 사제에 관한 질문 올렸던 법대 다니는 학생입니다.

근데 여기 게시판 닫으신다니 너무 아쉬워요
전 사실 생각보다 꽤 자주왔었는데…막 아무글이나 올리며 질문하기 좀 쑥쓰(?)러워서 계속 눈팅만 했습니다…안닫으시면 안되나요 ㅠ

질문 게시판 활성화에 조그마한 도움이 되고자 저도 질문을..^^;;

저는 고해성사를 참 좋아하는데 (사람이 가장 겸허한 마음으로 하느님께 참되게 고백하고 그럼으로써 용서받고 사랑받는 순간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공회의 고해성사 양식을 알고 싶습니다!

+ 주님의 평화

“작디작은이”님 안녕하세요. 다시 만나게 되어 반갑습니다.

뭐 조회수를 봐서는 별로 도움이 안된다고 생각했는데, 꾸준히 오시는 분이 계셨군요. 실효가 다한 것이 아닌가 해서 이제 접을 때가 되었다는 생각이었는데, 좀 시간을 두고 시켜 보겠습니다.

흠.. 엄살을 부렸더니, 여러분들이 성화시로군요 ^^;

성공회 고해성사 예식 전문을 아래에 옮겨 놓습니다. 이것은 한국성공회가 2004년 개정한 새로운 기도서에 들어있는 것입니다.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고해 예식

  • 고해예식은 모든 신자들의 신앙생활에 유익하므로 적극적으로 권장된다.
  • 사제는 고해내용을 어떤 경우에도 발설할 수 없다.
  • 고해소가 없을 경우 교회 안에 사제와 고해자가 얼굴을 마주하지 않도록 칸막이가 설치된 적당한 장소를 준비해야한다.
  • 사제는 소백의와 자색 영대를 한다.
  • 고해자는 먼저 자신이 지은 죄를 자세히 생각하고 진정으로 뉘우치며 다시는 반복하여 죄를 짓지 않기로 굳게 결심하고 나온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 아멘

○ 주님 앞에 나아와 모든 죄를 고백하오니 용서와 축복을 내려 주십시오.

✛ 주께서 그대의 마음과 입에 계시어 모든 죄를 진심으로 겸손히 고백하게 하소서.

○ 아멘.

○ 전능하신 하느님과 거룩한 교회와 사제 앞에 고백합니다. 나는 생각과 말과 행실로 많은 죄를 지었으며 의무를 소홀히 했습니다. 특별히…. (여기에서 분명하고 간결하게 고백할 죄를 말한다.) 이러한 나의 죄와, 이 외에 잊어버리고 기억하지 못하는 모든 죄를 진심으로 뉘우치오니, 하느님께서 자비를 베푸시어 용서해 주시기를 간청합니다. (사제는 간결하게 권면의 말과 보속을 주면, 고해자는 다음 기도를 바친다.)

○ 주 하느님, 내가 죄를 지어 주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였사오니, 악을 저지르고 선을 소홀히 한 모든 잘못을 진심으로 뉘우치나이다. 또한 주님의 은총으로 속죄하고 다시는 죄를 짓지 않으며 죄의 유혹을 피하기로 굳게 다짐하오니 우리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으로 자비를 베풀어 주소서. 아멘.

✛ 진실로 죄를 뉘우치며 주님을 믿는 사람을 용서하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거룩한 교회에 죄를 용서하는 권한을 주셨으니, 나는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그대의 모든 죄를 사합니다.

◯ 아멘.

✛ 전능하시고 자비하신 하느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은 그대에게 강복하시고 항상 지켜주소서.

◯ 아멘.

✛ 주께서 그대의 모든 죄를 용서해 주셨으니 평안히 가십시오.

◯ 하느님께 감사합니다.

Written by skhfaq

5월 22, 2005 at 3:47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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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해 성사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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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님의 평화

게파님의 질문에 대한 답변 시도가 이어집니다.
지난 번에 답변 드린 고해성사에 대한 추가 질문과 그에 대한 답변입니다.
내용이 조금 길더라도 용서바라며…

질문 2
고해성사에 대하여서 그것은 하느님 은총의 표징으로 보신다면, “성령을 받아라. 누구의 죄든지 너희가 용서해 주면 그들의 죄는 용서받을 것이고 용서해 주지 않으면 용서받지 못한 채 남아 있을 것이다.”(요한 20, 20-23) 라는 성서말씀에도 불구하고 사제의 赦罪權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말씀이신지요? 달리 생각해보면, 고해성사를 통해 죄를 용서받는 신자들과 고해성사를 통하지 않고서 죄를 용서받는 신자들과의 형평성 문제는 어떻게 보시는지요?

답변 2
하느님의 은총의 표징은 어떤 수준을 가늠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께서 내리시는 은총의 신비는 우리가 어떤 표징으로도 담을 수 없을 만큼 크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이에 대한 이해도 폭넓게 해야하며, 어떤 교리적인 태도나 입장으로 제한시켜서는 안된다는 것이지요.

통상 말하는 “사제의 사죄권”이라는 표현은 오랫동안 오해에 휩싸여 있었습니다. 구분 혹은 명확한 해명이 필요합니다. 궁극적인 죄의 용서는 오직 하느님을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그렇다면 “사제의 사죄권”이라는 말은 “사제가 용서한다”는 것이 아니라 “성부와 성자와 성령으로 이름으로 용서를 선포하는 것”이 되는 것이지요.

성서에서 고해성사를 위한 근거는 명확합니다(마태 16:19, 18:18, 요한 20:23). 그러나 그 이해는 역사적인 것으로 제한되거나 왜곡되었으니 따져볼 필요가 있습니다. 원래 이런 고백과 용서의 참회 예식은 초대교회부터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대체로 공개적인 성격이었지요. 예를 들어 세례를 받기 위해서 자신의 지난 잘못을 모두 밝히며 회개하였습니다. 그리고 세례 이후에 저지른 일상적인 잘못에 대해 고백하고 용서를 받는 참회 예식이 마련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예식은 애초에 교회 예배 안에서 함께 포함된 것이었습니다. 개인적인 참회 예식은 초대 교회와 같이 작은 교회 공동체 안에서 매우 중대한 죄(살인이나 성적인 부정, 파괴 행동)에 관련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중세 초기부터 이러한 개인적인 참회 예식이 일반 신자들의 일상적인 죄의 문제에까지 확대되어 개인적인 고백에 따른 참회 제도로 정착하게 됩니다. 부작용도 많았지요. 중죄자의 경우에는 너무나 가혹한 보속을 주었기 때문에 이를 아예 참회 예식을 회피하는 것이 많았으니 말입니다. 이런 일로 참회 예식의 의미가 상실되는 것을 막으려고 로마 가톨릭은 1215년 라테란 공의회에서 신자들의 의무 사항으로 규정했습니다. 공개적인 참회 예식은 오히려 형식적인 것이 되고, 개인 참회 예식 이른바 개인적인 고해성사가 정착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다시 살펴볼까요? 성공회 성찬례에서나 로마 가톨릭의 미사에서는 “죄의 고백과 용서의 선언”이 포함된 참회 예식이 여전히 자리잡고 있습니다. 이는 초대교회의 예전적인 유산이지요. 즉 우리는 매 성찬례(미사)때마다 고해성사를 치르게 된다는 말입니다. 그런 점에서 사제가 하느님께 용서를 청하고 하느님의 용서를 선포하는 고해(고백과 용서)는 매우 중요한 위치에 놓이게 됩니다. 또 이것은 기본적으로 “죄”란 한 개인에게 속한 것이 아니라 공동체의 관계 속에서 형성된다는 점을 상기시키시고 결국 참회란 공동체 화해의 근거가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문제는 여전히 남습니다. 공개적인 죄의 고백에 만족하지 않고, 그것이 양심을 가리면서 하는 것이라는 판단이 있다면 이를 사제에게 가서 개인적으로 고백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대단한 용기입니다. 그래서 성공회 역시 개인적인 고해성사를 권장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성찬례의 참회예식(죄의 고백과 용서 선언)과 다른 것이 아닙니다. 하나의 연장선입니다. 이 개인적인 성사를 통해서 죄를 고백하는 사람은 자신의 죄에 대해 더욱 분명하게 인식하게 되고, 이로써 하느님의 은총을 더욱 가깝게 체험할 수 있게 됩니다. 또 사제는 단순한 보속을 지정하는데서 그치지 않고 그이 영혼의 성장을 위한 사목적인 돌봄을 베풀 수 있습니다. 그러니 고해성사를 통해서 얻는 기쁨은 대단합니다.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는 이런 점들 때문에 개혁초기에 주님께서 세우신 성사로 세례와 성찬례, 그리고 고해성사를 꼽았습니다. 그러나 로마 가톨릭의 고해성사에 대한 오용 때문에 아예 이를 버리고 말지요. 당시 유행하던 말대로 “아기를 씻긴 욕조물을 버리려다 아기까지 버리게 되었다”는 빈축을 살만한 일이지만, 그처럼 고해성사의 오용의 문제 또한 심각했다는 증거지요.

현재 고해성사는 여러모로 조명되고 있습니다. 이는 단순한 교리적인 차원에서 접근하는 문제가 아닙니다. 인간의 심리적인 문제와 영혼의 치유, 공동체와의 화해를 위한 훈련과 조건 그리고 사목적인 상담 등 다양하게 접근할 문제이지요.

그러고 보면 개인적인 고해성사 참여 여부로 인한 형평성의 문제는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인간이 보기에 그런 것이지 하느님께서는 고해성사에 참여한 사람의 마음도 보시고, 성찬례를 통한 참회 속에서 고백하는 사람의 마음도 읽으시기 때문입니다. 참 신앙인이라면 성찬례를 통한 고백이든 개인적인 고해성사이든 하느님 앞에서 정직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느님 앞에서 정직한가 그렇지 않은가? 이것이 고해성사가 우리 삶에 던지는 질문입니다.

좋은 질문에 감사하며, 항상 주님의 놀라운 은총이 형제님에게 깃들길 빕니다.
주낙현 신부 ^^

Written by skhfaq

8월 18, 2001 at 2:43 오후

고해 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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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님의 평화

두번째 답변입니다.

질문 2.

성공회에서도 고해성사가 있으나 강제는 하지 않고 있는다고 하던데요 (가톨릭은 반드시 1년에 1번씩 고해성사를 보아야 하며, 우리나라 신자들은 1년에 2번씩 보아야 합니다. 이것은 최소한의 규정이며 교회는 될 수 있는대로 자주 고해성사를 보도록 권고하고 있습니다.) 고해성사가 강제가 아니라면 고해성사를 통하지 않고서도 죄의 사함이 가능하다는 말씀이신지, 그 방법이 궁금하구요. 또 그렇다면 굳이 고해성사를 뭣 때문에 존치시키는지 알고 싶군요. 글구 말에요. 성공회 신부님들도 고해성사의 비밀을 가톨릭의 그것과 같이 엄수하는지요.?

답변 2.

성공회에서는 주님께서 그리고 복음서를 통하여 정하신 성사를 세례와 성찬례(성체성사)라고 봅니다. 그밖의 다섯가지는 교회 전통 속에서 형성되어 온 것들로 성사라 인정합니다. 굳이 구분지어 이름한다면, 세례와 성찬례를 대성사(혹은 성사), 그밖의 다섯가지를 소성사(혹는 준성사)라고 부를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물론 이런 용법은 천주교와는 많이 다르지요.

고해성사는 성공회에서 강제 사항이 아닙니다. 흔히들 오해하듯이 사람인 사제가 죄를 용서하는 일은 없ㅅ브니다. 죄를 용서하시는 분은 하느님이며, 그 죄의 용서는 예수님을 통해서 일어납니다. 그러니 “고해성사를 통하지 않고도 죄의 사함이 가능하냐?”는 질문은 그리스도교 신앙의 문제에서 벗어난 감이 듭니다. 다만 고해성사는 성사가 그렇듯이 죄를 용서하시는 하느님의 사랑(보이지 않은 은총)이 밖으로 드러나는 표지이지요. 그러니 이러한 은총의 기회를 많이 갖는 것은 신앙 생활에 매우 중요합니다. 이런 점에서 성공회는 고해성사를 적극 권장합니다.

또 미국성공회의 경우는 전통적인 고해성사라는 표현을 쓰지 않고 “화해의 성사”라고 이름하여서 하느님과 이웃에 대한 죄의 고백과 이로써 하느님과 이웃을 향해 화해의 첫발을 내디딜 수 있도록 합니다. 게다가 고해성사는 자신의 죄를 입 밖으로 공언하며 이에 대한 적절한 조치를 받음으로써 깊은 신앙적 치유의 능력을 가집니다. 자신의 죄를 천상의 하느님께 말씀드렸다고 하며 현실의 삶 속에서는 이중적인 태도를 가질 수 있는 위선을 방지하는 중요한 신앙적인 덕목이 되지요. 이런 점에서 고해성사는 신앙 상담의 측면과 영적인 치유의 측면에서 중요합니다.

고해성사의 비밀 엄수는 성직자라면 당연히 지켜야 할 의무입니다. 이는 성직 수행을 위한 기본적인 조건입니다. 하느님께서 맡겨 주신 양의 비밀을 지켜주지 않는다면 사목자로서 배임에 다름 아닙니다.

우려하는 것은 고해성사에 대한 강제로 인해서 거룩한 성사가 습관화되고 의미가 기울어지는 일은 없는 것일까요? 옛 신앙 전통의 지혜를 되돌아볼 때입니다.

도움이 되셨길 바랍니다.

한 분 주님의 사랑 안에서 주낙현 신부 드림 ^^

Written by skhfaq

8월 15, 2001 at 2:36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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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 모임, 신학생 생활, 고해 성사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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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찬미예수님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저는 지금 고2 학생인데요, 성직자가 되고 싶습니다.
그래서 지금 천주교 신자이기때문에 성소모임에도 나가고, 곧 예비 신학생 모임에도 나갈 예정인데요.
질문1) 성공회에는 신학교 가기전에 예신이라든지 성소모임등을 꼭 다녀야 한다는..
조건이 없나요? 아니면 성공회 만의 또다른 성소 식별법.. 이라든지 모임이 있나요?
질문2) 그리고 신학교에 가면 1학년때부터 공동생활을 하고 수단을 입나요?
질문3) 음..그리고 성공회에는 고해성사가 없을것 같은데,. 그런가요? 칠성사가 같은가요?
질문4) 외국의 성공회대학에서 공부하다가 편입이 가능합니까?
질문5) 울산에 있는 성공회 성당을 알려주실수 있으세요?

한꺼번에 너무 많은 질문을 했지요..
궁금한게 너무 많아요..흑..

부제님!
주님의 사랑과 함께 날마다 기쁘게 지내시길 기도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안녕하세요? 질문쟁이님?

질문을 자주하시거나 질문이 많으신 모양이지요? 별명이 질문쟁이인 걸 보면?

질문에 간단히 답변드립니다.

1. 성소모임과 예비신학생 모임

교회와 교구마다 다르지만 특별히 의무적으로 성소모임에 다녀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수도회의 경우 성소모임이 있지만, 성직을 위한 성소모임은 없는 것 같습니다. 물론 예전에는 있었는데 최근에는 열리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있었으면 하는데…

다만 성소는 중요한 식별 과정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성소모임이 없다하더라도 성공회 성직자와 함께 기도하며 식별하는 과정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성공회는 기본적으로 이러한 성소식별 과정에 평신도도 참여합니다. 교회는 성직자의 것이 아니라 모든 하느님의 백성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후에 성소지망을 하고 이를 위해 학교에 지원서를 제출할 때 평신도위원들의 동의가 함께 있어야 하는 줄로 압니다.

2. 신학생의 공동생활

신학대학의 경우는 일반학생과 다를 바없이 대학 생활을 합니다. 물론 신학생들을 위한 의무적인 예배가 있기는 하지만, 종합대학교 내에서 너무 구별되어 생활하는 것도 대학 생활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봅니다. 다만 성직지망자로서 대학원에 진학하게 되면, 성직지망자 생활규정에 따라 정기적인 성무일과와 공동체 생활을 해야 합니다.

3. 성공회의 고해성사와 칠성사

성공회와 로마 가톨릭 교회의 성사 구분은 조금 차이가 있습니다.

즉 성공회는 주님께서 세우시고 직접 관련이 되어 복음서에 분명히 드러나 있는 세례와 성찬례(성체성사)를 가장 중요한 성사라고 봅니다. 다른 그리스도교단과의 교류에서도 이 두가지 복음적인 성사를 지키는지 여부가 중요합니다.

그러나 성공회는 “이른바 오래전부터 성사로 취급해 왔던 것들”로 부르는 다섯가지 성사도 역시 성사로 인정하고, 이를 교회 안에서 행하고 있습니다. 고해성사도 그 하나입니다. 하지만 성공회는 고해성사를 강제적인 규정으로 두지 않습니다.

4. 학교 편입 및 울산의 교회

대학 편입은 일반적인 편입 과정과 다를 바 없을 줄 압니다만, 구체적인 내용은 성공회대학교 문의하시기 바랍니다. http://www.skh.or.kr

그리고 울산에는 두ㅊ개의 성공회 교회가 있습니다.

1) 울산교회 : 울산시 남구 시정5동 151-3 전화 052-267-7942

2) 서울산교회 : 울산시 울주군 두서면 미호리 529 전화 052-254-0152

* 첨언 몇마디…

천주교 신자로서 성공회 성직을 희망하는 것에는 분명한 내적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이 문제는 대단한 식별 과정을 필요로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내적이고 신앙적인 이유가 무엇인지를 깊이 묵상하여 기도하며 식별하기를 바랍니다.

질문에 감사하며, 도움이 되었길 바랍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된 형제 주낙현 드림 ^^

Written by skhfaq

5월 20, 2001 at 1:44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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