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회 질문 답변

an Korean Anglican FAQ blog

고해성사의 의미와 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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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주낙현 신부님.

겨울이라 날이 추운데 몸 건강하신지 모르겠습니다.
이번에 타교파 영접식으로 바우로라는 신명을 받았습니다.주임사제인 오정열 신부님이 지어주셨는데, 바우로처럼 살라는 좋은 뜻이 있을 거라고 봅니다.

주 신부님께서는 제가 성공회 교회에 잘 적응하기를 바란다고 축복하셨는데,덕분에 잘 적응하고 있습니다.교우님들이 따뜻하게 대해주시는 덕분이겠지요.

몸이 안 좋아서 한주 쉰 적이 있는데, 그 다음주 미사시간에 신부님과 교우님들이 환영해 주신적이 있을 정도입니다.
제가 글을 올린 이유는 고해성사와 만도에 대한 궁금증 때문입니다.

성탄절이 얼마 안남아서 신부님이 고해성사와 만도를 한다고 하셨습니다.
그 말씀을 들으니,자세하게 어떻게 고해성사와 만도를 드리는지 궁금해졌습니다.
오 신부님은 공도기도문에 다 나와있으니 보고 하면 된다고 하셨지만, 아직 성공회에 대해 모르는게 더 많은 저로서는 무척 궁금합니다.

이야기를 주저리 주저리 써 보았습니다.

바우로 드림.

+ 주님의 평화

김재홍 바우로 교우님 안녕하세요? 대림의 설레는 기쁨으로 함께 만나게 되어 기쁩니다. 먼저 성공회 신앙 전통 속에서 주님의 길을 함께 걸어가가게 된 것을 축하하고 기쁘게 생각합니다.

고 해성사와 만도에 대한 질문을 주셨는데, 우선 구분을 하자면, 이 두 가지가 필히 연결되어 있는 것은 아닙니다. 고해성사는 성공회가 전통적으로 가지고 있던 성사 가운데 하나이고, 만도(晩禱)는 현재 새로운 기도서에서 “저녁기도”로 쓰고 있는 예배의 한 형태를 말합니다. 성탄절이나 부활절, 혹은 큰 축일 전에 있는 만도 혹은 저녁기도는 대체로 “밤예식”이라는 다른 이름을 갖는데 영어식 표현으로는 “비질”(vigil)이라고도 합니다. 교인들이 모두 함께 참여하는 예배이므로 함께 안내를 받으며 함께 따라하시면 큰 문제는 없습니다. 문제는 역시 참여요 경험이니까요.

고해성사에 대해서 말씀드립니다. 고해성사는 그 동안 고백자의 “개인적인 죄의 고백”에만 초점을 두고, 또한 사제의 사죄권에만 집중되어, 그 의미가 손상되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런 반영으로 “고백성사”라는 말이 한동안 통용되었고, 혹은 현재 사용하는 “고해성사” 혹은 “고해예식” 역시 “고백”(이를 고)과 “죄의 용서”(풀 해)로 이해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고해성사의 큰 뜻은 죄의 고백과 회개 (penance) 그리고 하느님과의 화해 (reconciliation)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신의 잘못된 행동에서 “돌이켜서” 다시금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로 “화해”하는 것이 고해성사의 목적이라고 하겠습니다. 실제로 이러한 뜻을 가장 잘 드러내는 성사는 세례와 견진 성사입니다. 세례를 통해서 새로운 사람이 되어 새로운 공동체로 환영받음으로써 성찬을 함께 나누는 신앙 성장의 과정 속에서, 고해성사는 한번뿐인 세례와 견진이라는 입교예식을 계속해서 되새기고 우리 생활에 옮기면서 성찬을 위한 준비가 됩니다. 바로 이 때문에 많은 기도서들은 순서상 세례와 견진 성사 다음에 고해성사의 예식을 두는데, 매우 적절한 배열이라고 하겠습니다. 우리 기도서 역시 그런 배치를 따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고해성사를 어떻게 해야 할까요? 앞서 말씀드린 의미를 따라 생각한다면, 세례를 받기 전에 씻어내고 쓸어내려고 했던 것 – 유아세례라면 이후의 학습이나, 입교의 과정 속에서 새롭게 다짐했던 것 – 을 되새기는 것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즉 내 앞에 놓여 있어, 치워버리지 않고는 내 길을 걸어갈 수 없는 걸림돌들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고, 그 내용을 고백하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또한 이것은 대체로 하느님과 이웃과의 화해라는 견지에서 살펴야 한다고 봅니다. 그리고 신앙이 하느님과 이웃에 대한 사랑이라는 점에서 볼 때, 하느님을 불편하게 해드리는 것, 결국 그로 인해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 (이웃)을 불편하게 하는 내용들을 고백하고 용서를 청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고해성사가 하나의 신앙 훈련의 과정이라고 할 때, 너무 광범위하고 추상적인 내용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 내용을 구체화시키는 것이 좋습니다. 예를 들어 어느 특정한 기간을 두고 제한을 하든지, 가장 마음을 떠나지 않고 괴롭히는 문제들을 가지고 신부님과 만나시면 좋겠습니다. 고해성사는 구체적인 어떤 실마리를 명확히 함으로써 전체의 문제를 풀어나가는 기능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 때문에 여러 가지 역사적인 신학적인 논란에도 불구하고 성공회가 고해성사를 중요하게 여기며 보존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먼저 신부님과 고해성사를 위한 시간과 약속을 잡으시는게 우선이겠지요. 교회의 처지에 따라 다르지만, 아마 작은 고해소를 마련하거나 고해를 위한 칸막이를 설치하는 일이 많을 것입니다. 아니면 마주 비스듬히 앉아서 이야기할 수 있는 작은 고해방이 마련될 것입니다. 편안한 마음으로 다가 가셔서, 자신이 생각하고 준비했던 큰 마음의 걸림돌들을 가능하면 적으셔서 예식에 따라서 고하십시오. 그 전에 다른 상담이 필요하면 신부님께 요청할 수 있습니다. 고백을 듣는 신부님의 존재는 내가 잘할 때나 잘못할 때나 우리 삶에서, 그리고 우리 곁에서 내내 지켜 보고 계시던 하느님께서 “아무런 걱정 말거라” 하시면서, “어떤 문제라도 용서는 이미 선언되어 있다”라고 건네시는 하느님의 말 없는 표현을 위한 확증이라고 생각하십시오. 그러면 하느님께서는 신부님의 입을 빌어 “평안히 가십시오”라고 말씀하실 것입니다.

주낙현 신부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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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skhfaq

12월 13, 2005 , 시간: 4:02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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