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회 질문 답변

an Korean Anglican FAQ blog

니케아 신경 – 2. 거룩한 교회 –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여라

leave a comment »

역시 이 문제도 교회가 거룩한 것이 당연하다면 굳이 언급되지 않았을 문제이겠지요. 앞서 “하나인 교회”에 대한 이야기에서 잠시 언급되었던 도나투스 논쟁과 그와 비슷한 논쟁들이 거듭되면서, 교회에는 “거룩한 사람들”만의 곳인지 아니면 “가라지와 알곡”이 섞여 있는 곳인지에 대한 논란이 있었습니다. 이 역시 역사적인 현실과 이론적인 믿음 사이의 갈등이라고 하겠고, 이 역시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는 갈등과 거리이기도 합니다.

이 믿음의 근거는 역시 그리스도의 거룩함에 근거한다고 해야 합니다. 그리고 교회는 스스로를 그리스도의 몸으로 여겨왔기에, 이상적으로 그 몸에 참여한 사람들도 거룩해야 하는 것이지요. 하지만 이 이상적 기준으로만 판단하면 거룩하지 못한 사람은 교회에서 축출되어야 마땅합니다. 실제로 교회는 역사적으로 이런 축출과 배제를 경험했으며, 그 어리석음을 거듭 깨닫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질문이 제기됩니다. 그 거룩함의 판단 기준은 무엇인가? 누구 교회의 다른 사람을 거룩하지 않다고 간단 명료하게 판단하게 그들을 갈라내어 교회의 거룩함을 유지할 것인가? 이런 사고 방식은 몇가지 역사적인 연원에 근거해서 이름을 붙이자면 “청교도적 사고”(PURITAN) 방식이라고 할 수 있는데, 자신들만이 “정결하다”는 식의 도덕적 엄격주의의 옷을 입고 등장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교회는 예수님께서 말씀하신대로 가라지와 알곡이 섞여 있을테고, 그것을 가리는 일은 우리들의 일이 아니라 마지막 때의 하느님께서 하실 일로 남아 있다고 보는 것이 더욱 성서적이라고 생각합니다. .

그러니 이렇게 생각하면 어떨까요?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함에 근거한 만큼 그 그리스도의 몸에 초대된 그리스도인들은 거룩해야 합니다. 하지만 인간은 모두 하느님 앞에 선 자로서 마지막 때에 거짓은 거짓으로, 진리는 진리로 드러날 것입니다. 그 마지막 때의 하느님 앞에 설 자로서 ‘나’는 이 교회를 통하여 나를 얼마나 거룩하게 하고 있는가 하는 물음이 앞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교회는 하느님의 백성으로서, 광야를 배회하며 약속의 땅을 밟은 이스라엘 백성과 같은 “순례하는 공동체”이기에 거룩함을 향한 그 순례의 과정에 충실할 때만이 “거룩한 교회”의 이상이 썩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즉 “거룩한 교회”라는 믿음은 어떤 추상적 개념 정의가 아니라, 이 순례의 과정 속에서 드러날 “아직 아닌” (NOT YET) 종말론적인 공동체의 상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점에서 한국교회는 대체로 “칭의론”(행위가 아니라 믿음으로 의롭다고 인정받는다)에 대한 편견과 과도한 집착으로 인해서, 신앙인의 “성화”(SANCTIFICATION)의 순례적인 개념을 상실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입니다. 죄인이 의인으로 인정받은 것으로 신앙 사건이 끝난 것처럼 오도되고, 신앙과 교회 공동체의 사귐 속에서 발전시켜야 할 “거룩함”에 대한 지속적인 순례의 여정은 끝난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하느님께서 당신과 계약을 맺은 백성을 두고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여라” (레위기 19장 2절)

Advertisements

Written by skhfaq

5월 27, 2004 , 시간: 2:38 오후

답글 남기기

아래 항목을 채우거나 오른쪽 아이콘 중 하나를 클릭하여 로그 인 하세요:

WordPress.com 로고

WordPress.com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Twitter 사진

Twitter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Facebook 사진

Facebook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Google+ photo

Google+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s에 연결하는 중

%d 블로거가 이것을 좋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