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회 질문 답변

an Korean Anglican FAQ blog

성직이 뭐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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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들어오면, 개신교 다니다가, 성공회 성직자 되고 싶다고 질문 하는 사람 많은데, 왜 이런 사람이 요즘 부쩍 늘었는지?

신부님옷이 멋있어서 그러는지?

성직자의 길이 생각하는만큼 멋있고 화려한 길이 결코 아닙니다. 오히려 인내와 고난으로 가득한 좁고 힘든 길입니다.

예배집전하는 모습만 보고, 폼난다고 여러가지 변명들이대며, 나도 성소 받은것 같으니까 성직자 되고 싶다, 뭐, 미안하지만, 솔직히 그런 인상들이 강합니다.

성직자는 일절 세속인과는 그 생활방식이 달라야 하며, 주님과 자기의 양떼를 위해서는 모든것을 희생하는 불타는 소명의식과 처절한 자기희생이 있어야 되는겁니다.

이런것 진정으로 생각들 해보셨나요? 나는 이런것 생각하면 성직자는 정말 아무나 하는거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성직자가 폼난다고 할 생각하지말고, 처절한 자기희생과 인내, 절제를 감당할 수 있을지 진정으로 다시 생각들 해봅시다.

+ 주님의 평화

궁금이님께서 매우 중요한 지적을 해주셨습니다. 이 게시판이 어떤 의문에든지 성실하게 답변하려는 것이었기에 저는 그동안 이런 지적들을 직접적으로 드러내지 않고 답변을 시도했습니다. 이미 성소에 대한 질문을 던지시는 분들은 이 문제를 이미 많이 생각하고 있으리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궁금이님께서 중요한 지적을 하신 것을 핑계삼아서, 이와 관련된 제 생각을 나누는 것도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궁금이님의 이 문제 제기는 사실 간과하기 쉬운, 그래서 상당히 위험한 문제들을 건드리고 있습니다. 성직은 하느님이 주신 소명인가? 아니면 나의 개인적인 결단인가? 많은 성직지망자, 그리고 서품받은 성직자들마저도 여기서 혼란을 겪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상하게도 “주님의 종”이라는 본뜻과는 전혀 모순되게도, 이 용어를 쓰면서 목회자로서의 온갖 권력을 행사하거나, 짐짓 존경을 강요하는 개신교의 혼란이나, “존재의 격이 다른 사람”으로 사제를 이해하는 로마 가톨릭 교회의 혼란에서, 성공회도 사실 자유롭지 않습니다. 결국 “성직자”라는 것이 하나의 신분 상승을 의미하는 것이거나, 궁금이님께서 지적하시듯이 “짐짓” 권위있는 “체”하려는 것이라면, 그것은 성직의 본 뜻과는 거리가 먼 것이 분명합니다.

또한 매우 현실적인 이유로 특별히 성공회 성직에 대해서 관심을 가질 수도 있습니다. 한국 개신교의 철저한 개교회주의에 따른 난립과 경쟁때문에, “좀더 안정적인 체제”를 갖고 있다고 “보이는” 성공회에 관심을 갖는 경우도 있습니다. 또 앞서 지적한대로 내면화된 권위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한채 “멋있게 보이는 것”이 성직 자체에 대한 사람들의 존경을 자연스럽게 부추길 수 있다는 기대를 하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그동안 교회의 개혁과 사회의 변화 속에서 끊임없이 제거하려고 했던 교회 역사의 나쁜 잔상들에 불과합니다. 아무리 멋있는 “성직자 복”도 곧 닳아 헤어지기 마련이며, 한국에서 성공회는 매우 가난한 교회인 것이 현실입니다.

이런 처지에서 보면 결국 드러나야 할 것은, 그리고 드러나고 마는 것은 하느님 앞에서 완전히 발가벗겨진 한 개인의 존재이며, 그 가냘픈 존재에게 하느님께서 맡기신 공동체에 대한 인도와 책임입니다. 그러므로 바로 여기서 부르심을 받았느냐 하는 식별이 매우 중요하게 떠오릅니다.

또한 성공회는 그리스도교 전통이 발전시킨 하나의 신앙 생활 전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말은 어찌 보면 전혀 새로운 전통 안에서 새로운 삶의 방식을 받아들이겠느냐, 그 전통과 생활 방식이 요구하는 신학과 신앙을 발전시키겠느냐는 문제와 연결됩니다. 교단은 단순히 어떤 외적인 조건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역사 안에서 발전된 신앙의 축적에 자신을 던질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성공회 안에서 성직 소명을 찾으시는 분들은 이런 점들을 생각하며 그 소명을 좀더 분명하게 식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한가지 저는 궁금이님과는 다른 생각도 가지고 있습니다. 물론 그런 뜻으로 하신 말씀은 아니라 생각합니다만, 성직자는 세속과 전혀 동떨어진 사람이 아닙니다. 철저히 세속 안에서, 세속적인 삶을 통해서 오히려 하느님을 드러내 보이는 것이 성직이라고 생각합니다. 즉 예수님이 그러셨던 것처럼, 이 추한 세상이 오히려 하느님을 드러나는 아름다운 마당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찾아주고, 그 실마리를 많은 사람들과 함께 나누는 것이 성직자라고 보기 때문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세속과 성직이라는 작위적이고 인위적인 구분이 바로 권위주의를 낳는 싹이라고 보며, 실제로 많은 목회자와 성직자들이 이를 바탕으로 오히려 위선적이며, 권위적인 생활을 정당화하는 경우가 많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점에서 저는 이 게시판에서 오래 전에 “성사로서의 사제직”에 대한 성찰을 이야기한 적이 있었습니다. 아쉽게도 많은 이곳에 오시는 많은 분들은 그런 내용에는 관심이 적은 것 같습니다. 조회수를 보니 금방 두드러지더군요.

궁금이님의 지적에 대해서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이미 많은 분들이 성공회 안에서의 성직에 대한 질문을 하셨고 그에 대한 답변을 드렸습니다. 그 내용을 다시 간추리자면, “하느님의 부르심인가 내 결단인가?”에 대한 식별, 그리고 성공회 신앙 공동체의 경험과 그 안에서의 식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 저는 샌프란시스코 그레이스 대성당에서 열린 성직 서품식에 다녀왔습니다. 그 축하의 장에서 설교하신 마이클 잉햄 주교님(캐나다 성공회)은 분명하게 이렇게 단언했습니다. “교회를 위한 봉사라는 일을 정확히 식별하지 않고 성직자가 되는 것은 단연코 자신을 파괴하고, 나아가 공동체를 파괴할 것이다.” 이 대림절의 절기에 사제인 제 자신이 되새기고 성찰해야 할 식별의 경고문이라는 것을 새삼 깨달았습니다.

혹시 검색 명령어를 통해서 “성소” “성직” “사제”와 관련된 내용을 찾아 읽어보시면 부족하나마 도움이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스쳐지나갈 수 있는 중요한 문제를 지적해주신 궁금이님께 다시한번 감사드립니다.

힘없는 아기로 오시는 예수님을 바라보며,

주낙현 신부 합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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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skhfaq

12월 8, 2003 , 시간: 1:35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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