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회 질문 답변

an Korean Anglican FAQ blog

증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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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번에 증산도엘갔습니다.거기선 예수가 구세주가아니며 증산상제님이 선천시대에 내어놓은 성자에불과하구 부활은 그제자들이 그를 받들기 위해지어낸것이라합니다.

저는 그에반박하기위해 성서에서 예수의부활,구약에서 그리스도의탄생 예언한부분을읽었고 그를 진실로 믿으나 오늘 그들과 만나기로했습니다.그들을 어떻게 뿌리며, 도대체 강증산이 진짜 하느님인지,그의 인생에대해알고싶습니다.글구 그서적을 읽었으나 자꾸 유혹을당하고 예수님을 가슴아프게하는 짓거리(그들을 만날때마다)를하는거 같아 죄책감이듭니다…(아! 그리구 저번에 답장주신거 감사합니다 진정 주님의 사도가 되시길빌구여.궁금해서 묻는건데 영세명이 어떻게되시나여?)

+ 주님의 평화

답변이 상당히 늦어졌군요.
곧바로 답변하겠다고 생각하다가도 다른 종교에 대한 질문에 대해서는
좀더 공정한(?) 답변을 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에 마음에 묵힌다면서
결국에는 때를 놓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좋은 결론을 내는 것도 아닌데… ^^

증산도에 대해서 물어보셨지요?
종교 전반에 걸쳐 많은 관심과 고민이 있으신 것 같군요.
증산교에 대해서는 저도 딱히 이렇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지식이 있거나
전문가가 아니라서 적절한 답변을 할 수 있을까 고민스럽습니다.
다만 오래 전에 한국종교사를 배우는 과정에서 증산교에 대해서
조금 살펴보고, 제 고향이 증산교의 발생지인 곳이어서
증산교의 종교적 사회적 발생 상황에 대해서는 관심이 있었습니다.
그러니 이런 부분에서만 간단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증산교는 기본적으로 19세기 한국의 동학운동과 관련이 깊습니다.
19세기 말 외세의 강점에 따라 우리나라의 주권은 그 의미를 상실하고
더욱이 민중들의 삶은 피폐해졌습니다. 이 때 등장한 것이 바로 동학사상입니다.
동학은 기본적으로 종교적 사상이었지만, 그 급진적인 종교적 인본주의로 인해서
사회 운동에 깊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특히 민중의 삶에 대한 깊은 애정을 갖게 되었죠.

그 결과 동학운동은 갑오농민전쟁을 통해서, 그 힘을 발휘하게 이릅니다.
그러나 일본군이 가세한 조선관군에 의해서 갑오농민운동과 동학은 철저하게 짓밟히게 됩니다.
동학도는 모두 잡혀 처형당하거나, 체포되고,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이제 농민들, 민중들에게는 어떤 희망도 없었습니다.
바로 그때 동학사상과 동학운동의 근거지인 전북 지역에서
증산 강일순이라는 분이 나타나서, 자신이 하늘에서 내려온 상제라고 주장했습니다.
지금까지 상제로서 수많은 예언자들을 보냈고, 특히 동학의 전봉준을 보냈으나
이른바 “천지공사”를 완수하지 못해서 상제인 자신이 직접 내려왔노라고(강생) 주장하고는,
흩어지고 실의에 빠진 농민들과 민중들을 치료하고 보살피며
흩어진 동학도를 규합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새로운 종교로 등장하게 되었던 거지요.
이후 증산교는 동학과 같은 정치적 색채는 거의 상실하고, 한국의 기복 신앙을 기반으로 급성장하게 되었습니다.

현재 증산교는 약 20개의 교파를 가지고 있는데
그 중 최대교파가 대순진리회입니다.
길거리에서 “혹시 도에 대해서 들어보셨습니까?”라고 묻는 분들은 대부분
증산교 그 가운데 대순진리회 신자들인 경우가 많습니다.
저도 몇몇 분들을 길에서 만나 한참이나 이야기를 나눈 경험이 있는데,
이 분들의 특징은 다른 종교에 대해서 무척이나 배타적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다른 종교에도 ‘도’가 있을 수 있지 않겠느냐고 물었더니,
그런 일은 없다는 거지요. 우리나라 종교문화의 특징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대목입니다.

최근 이 대순진리회는 몇 가지 사회적인 물의를 일으키고 있는 것으로 보도되고 있습니다.
특별히 헌금에 대한 강조가 지나쳐서 재산을 다 바치도록 강요하는 경우가 있고,
미래에 대한 염려가 지나친 우리들의 마음을 이용하여 불길한 예언을 하면서
자기네 종교로 유인하고 기부하게 하는 경우가 많아 사회적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는 것이지요.

어떤 종교에 대해서 판단을 내리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증산교, 특히 대순진리회와 같은 경우에는
우선 종교의 ‘사회적 공익성’이라는 점에서 큰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그런 문제는 대순진리회만의 문제는 아닌 것 같습니다.
하여튼 이런 종교들은 여러모로 그 진실성에 의심을 하기에 충분합니다.

개인적으로 양승우 형제님께 부탁드리는 것은,
다른 종교에 대한 관심과 연구는 매우 중요하지만,
우선 자기가 갖고 있는 신앙에 대해서 좀더 열심히 탐구하고 기도하는
성실한 자세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도대체 예수 그리스도가 ‘나’에게 어떤 분인가에 대한
끊임없는 물음과 도전 속에서 신앙의 길을 감지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이것이 밑바탕에 없다면 다른 종교들과의 대화는 반목으로 끝나거나
서로 이해하지도 못하는 논리적인 교리 논쟁에 휘말려서
스스로를 파괴하게 됩니다.

특히 역사가 긴 종교일수록 실수도 많고
수많은 주장들이 교차하는 관계로 논리적인 결점도 많은데,
신흥종교들은 이를 파고드는 경우가 많지요.
이런 함정에 빠져들면 금방 넘어가기가 쉽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한국의 그리스도교의 전도 운동도 이런 방식을 많이 채택했기 때문에
이런 싸움에서 깊은 신앙적 식별로서 이를 이겨내기보다는
다른 종교에 대한 무조건적인 적대감이나 배타심으로 무시하려고 하지요.
어쩌면 이것은 동전의 양면입니다.

그런 점에서 자기 신앙에 대한 깊은 헌신과 식별이 중요합니다.
그것은 자신의 신앙 경험에 대한 깊은 신뢰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이런 점들을 잘 이해하시면서 다른 종교에 대한 관심도 넓혀 나가시길 바랍니다.

홀로 주님이신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

주낙현 요셉 신부 합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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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skhfaq

5월 27, 2002 , 시간: 10:55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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