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회 질문 답변

an Korean Anglican FAQ blog

별세자를 위한 기도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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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 인도해주신 관계로 지금은 성공회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청년입니다.

예배중에 별세자를 위한 기도와 관한 의문이 있어.. 여쭙니다.

개신교에서 성도의 교통이라는 말과는 달리 상통이라는 말을 씀으로 의미가 죽은성도까지 확대된다는 얘기를 들은거 같은데..

별세자를 위한 기도와 관한 성공회의 신학적 근거를 좀 얻어 들을수 있는지요?

항상 이 사이트를 통해 여러모로 좋은 지도 받고있습니다.
감사합니다.

+ 주님의 평화

제가 어떤 식으로 성공회로 형제님을 인도하게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성공회 안에서 함께 신앙 생활을 하게 되어 매우 기쁩니다.

좋은 질문 주셨는데, 게으름을 피워 대단히 미안합니다.

“별세자를 위한 기도”에 대해서는 성공회 안에서도 의견과 해석이 분분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의견들은 천주교의 주장과 다른 개신교의 주장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어떤 차이가 있을까 먼저 살펴보고,
성공회의 이해를 알아볼까요?

1. 천주교의 이해 – 연옥 교리와 관련하여

천주교에서는 “별세자를 위한 기도”가 곧바로 “연옥 교리”와 관련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지옥에 떨어질 정도는 아니지만 완전한 구원을 받기에는 부족한 사람들을 위한 처소로서 연옥이 있는데, 여기에 있는 분들은 연옥에서 자신의 죄를 참회하고, 이승에서 살고 있는 분들이 가도와 봉헌을 하면 마침내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지요. 이러한 주장의 성서적인 근거는 개신교에서는 외경으로 치지만 천주교에서는 제 2경전으로 보고 있는 마카베오하 12장 40절-45절에 근거한 것입니다. “죽은 자들의 죄를 용서해 달라”는 기도가 그 내용입니다. 그리고 연옥은 대체로 세례받지 않고 죽은 “어린이를 위한 곳(림보)”(limbus infantium)과 구약성서의 “신앙 선조들을 위한 곳”(limbus patrum)이 있지요.

2. 개신교의 이해

개신교 종교개혁 처음에는 별세자를 위한 기도를 인정하는 분위기였습니다. 그러나 이 기도가 곧바로 천주교의 연옥교리와 결부되어 있는 것을 보고, 이 기도를 인정하면 곧 연옥 교리를 인정한다는 의미가 있을까봐 거부하기 시작했습니다. 게다가 성서의 근거도 빈약한 것이었습니다(마카베오서는 외경으로 간주하므로). 그리고 믿음은 그 개인 당사자의 것이므로, 다른 사람의 공력과 봉헌으로 이룬다면 이는 곧 개신교의 원리였던 “믿음에 의한 구원”에 위배되어 “공덕에 의한 구원”(종교개혁자의 천주교 비판 방법)이 될 위험이 있으므로 이를 경계해야 한다는 의미도 담겨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별세자를 위한 기도는 여러 개신교에서 사라지게 된 것이지요.

3. 그렇다면 성공회의 이해는 어떠한가?

성공회는 종교개혁 당시부터 천주교의 “연옥 교리에 대하여” 분명히 반대하고, 이는 무익한 교리와 관습이라고 주장해 왔습니다(“성공회 39개 신앙신조 22조). 그러나 별세자를 위한 기도의 관습은 그대로 남아 있었고, 현재도 많은 성공회 기도서는 이 내용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천주교의 이해와는 전혀 다릅니다.

성공회는 이러한 이해의 기초를 죽은 자들에 대한 예수님의 태도와 더불어 “사도신경”의 “성도들의 상통”(communio sanctorum)에서 찾으려고 합니다.

우선 예수님께서는 별세한 자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죽음으로 보지 않으셨습니다. 즉 주님께는 죽음의 개념이 우리와는 전혀 달랐습니다. 예를 들어 주님께서 죽은 자들을 일으켜 세우신 기적을 통해서 볼 때도, 그것은 사람들이 슬피 울 죽음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그저 주님 보시기에 “잠 자는 것”일 뿐이었습니다(마태 9:24). 게다가 주님께서는 제자들을 부르시면서 “죽은 자의 장례는 죽은 자들에게 맡기라”고 말씀하시지 않습니까?(마태 8:22) 이 때 죽은 자들은 누구를 말합니까? 우리 육체의 생리적 상태가 죽음을 판단하는 근거가 아니라는 말씀이 아닙니까? 죽음은 여전히 신비에 가려져 있지만 우리의 상식적인 이해와 주님께서 죽음에 대한 이해는 달랐던 것이 분명해 보입니다.

그리고 사도신경에서 언급하고 있는 “성도들의 상통”(혹은 통공)(communio sanctorum)에서 별세자를 위한 기도의 근거를 찾습니다. 이는 쉽게 말하자면 성도들의 교제 혹은 친교라고 할 수 있겠는데, 문제는 “성도”에 대한 해명입니다. 성공회는 기본적으로 이 “성도”(saints)는 지금 이 세계에 살아있는 신자들과 이 세상에서는 돌아가셨지만 부활을 기다리는 모든 별세한 신자들을 포함한다고 봅니다. 오해의 여지를 없애기 위해 부연하자면, 이 때 별세한 신자들을 위한 기도는 이 세상에 살아있는 사람들의 기도로 그분들의 죄가 덜해지거나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 신자들이 서로를 위해 기도하듯이 그렇게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찬례가 끝나고 나서 사제는 “별세한 신자들의 영혼이 평안히 안식하기를” 위해서 기도합니다. 성찬례의 모든 과정 속에 지금까지 이 세상에 왔다가 돌아간 모든 신자들과도 함께 주님을 찬양하며 그 안에서 친교를 나누었다는 뜻이지요.

마지막으로 이 세상을 살다가 떠난 사람들(별세자)들이 어떻게 될 지에 대해서는 그 모든 일이 하느님의 크신 종말사건 속에서야 분명히 드러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주님께서 죽으셔서 “음간”(죽음의 세계)에 내려가셨다고 부활하셨다는 신비로운 사건도, 이것이 “음간”에 대한 정체에 대한 질문으로 꼬리를 물 것이 아니라, 구원을 위한 그리스도의 수난과 희생이 이 어둠의 세계까지 알려지고 그 빛으로 그 죽음의 세계에 속해 있던 영혼들이 다시 새로운 생명으로 이끌릴 것이라는 보편적 구원사의 한 징후를 보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이 문제들은 모두 종말의 사건과 관련이 깊습니다. 그러나 우리 인간은 주님의 위대한 구원 계획의 한 귀퉁이만 붙잡고 아주 조금 이해할 뿐입니다. 우리 인간의 어떤 “교리적인 확정적 진술”도 하느님의 크신 진리를 담아내기에는 역부족입니다. 위에서 시도하려 했던 제 답변도 이런 교리적인 진술을 피하려 했지만, 여전히 인간의 이해에 한정되어 있습니다.

주낙현 신부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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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skhfaq

2월 15, 2002 , 시간: 10:38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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