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회 질문 답변

an Korean Anglican FAQ blog

토마스 머튼 신부님의 성공회 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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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님의 평화

심미경 교우님의 질문 1

칠층산의 저자 토머스 머턴은 왜 성공회 신자에서 가톨릭 신부가 되었을까요?
토머스 머턴의 성공회에 대한 입장을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토머스머턴은 성공회에 대해 그리 긍정적이었던것 같진 않던데요… 많은 글들에 대한 부제님의 답변 내용으로 보면 성공회가 너무 이상적인 종교 같은데(예:중립과겸손)…부제님의 답변내용이 성공회 신학과 상당부분이 일치하는 건가요 ? 아님 부제님 개인적인 생각이신가요?)

답변 1. 토마스 머튼 수사 신부님의 성공회 비판에 대해서

토마스 머튼은 천주교뿐만 아니라 그리스도교계가 자랑할 만한 영성의 대가입니다. 그분의 신앙적인 노정을 절실히 풀어놓은 것이 {칠층산}이라는 저작인데, 제가 이 책을 읽은 지도 오래거니와, 당시에는 성공회는 잘 알지 못했기에 그런 비판에 별 신경도 쓰지 않았습니다. 다만 심미경 교우님의 글을 읽고 어떤 분이 제 메일로 아래와 같은 이야기를 보내서, 그분의 허락을 받고 옮깁니다.

지금부터 인용 ^^

참, 주신부님의 홈페이지 ‘질문있어요’란에 심미경씨가 올린 최근의 질문을 읽어보셨습니까? ‘칠층산’의 저자 토머스 머튼에 대해서 이야기 한 것 말이죠. 제가 천주교를 나가겠다고 대모님께 말씀 드렸을 때, 빌려주신 여러권의 책 중의 하나입니다. 읽고서 무지 흥분했던 기억이 나네요.

토마스 머튼은 일단 유럽인으로서의 우월감과 카톨릭 교리에 대한 맹신적인 모습을 보이더군요. 물론 그 사람의 개인적이고 시대적인 환경을 고려하여 이해하려고 노력했지만, 화가 나는 것은 어쩔 수 없었습니다.

그 분이 쓴 성공회에 대한 비판입니다.
“…사실상 영국교회(성공회)는 계급 종교다. 국가 전체가 아니고 소수 지배층이라는 특정한 사회와 그룹의 종교다. 바로 이 점이 오늘날까지 영국 교회가 비교적 강력한 결속을 지탱하고 있는 주된 기반이다. 대다수가 은총이나 성사를 믿지 않기 때문에 교리적 일치는 별로 없는 것이 확실하며, 신비적 유대는 더욱 보잘 것 없다.

그들을 단합시키고 있는 것은 사회적 전통이라는 강력한 매력과 그들 자신의 이익을 위하여 특정한 사회 계급과 관습을 고수하는 완고한 집착이다. 영국 교회의 존립은 거의 전적으로 영국지배계급의 연대의식과 보수주의에 의존하고 있다. 이 세습적 계급을 결속시키는 강한 사회적 혈통적 본능에 있는 것이다….영국은 영국교회에 달라붙어 있다.”

이 외에도 개신교 목사에 대한 비판과, 흑인들을 그저 불쌍한 족속(죄를 대신 짊어진)으로 바라보는 시각도 그 두꺼운 책 사이사이에 계속 나오더군요. 이 책은 그저 그 사람만의 것으로 소급시켜야 하는데, 현대의 독자들이 이 책을 접하고서 현실에 적용한다는 것이 문제인듯 싶습니다. 그렇게 되면 역시 카톨릭만이 정통적이고 진정한 종교의 유일한 형태구나… 하는 생각이 들거든요. 이 사람이 프랑스에 대해 보내는 침 튀기는 찬사 또한 마찬가지로 선입견을 갖도록 만들 수 있고요. (이 자서전이 출판된 때가 1948년이고, 책머리글을 보면 이 저자를 이렇게 말합니다. “이 책은 대학 시절에 이미 명성을 떨쳤고, 영문학자요 문학평론가요 시인으로서 성공하였으며, 현대 미술에도 조예가 깊고, 한때는 재즈 음악에 열중하였던 저자가 26세의 나이로 이 세상의 모든 쾌락과 명성을 포기하고 트라피스트 수도원의 고독 속으로 잠겨들기까지의 과정을 그린 심금을 울리는 정직한 고백이다. 미국이 낳은 저명한 설교가 풀톤 쉰 대주교는 이 책을 일컬어 ’20세기의 성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이라고까지 극찬했다.”)

제 답변이 아니어서 대단히 죄송하지만, 나중에 그분께서 성공회를 비판한 것에 대해 좀더 자세히 알게되면 또 말씀드리겠습니다.

한가지 토마스 머튼 신부님의 이런 비판이 전혀 근거없다는 것은 아닙니다. 특히 국교회로서 영국성공회는 이런 비판의 여지가 많습니다. 하지만 지나친 면도 있거니와 이 비판을 성공회 전체에 적용할 만한 것은 못된다고 봅니다. 예를들거 중남미 쪽의 로마 가톨릭의 혼합주의적인 종교 행태를 두고 로마 가톨릭 전체를 싸잡아 비난할 수 없듯이 말입니다. 물론 이런 비판을 겸손히 받아들임으로써 성공회는 잘못된 신앙 행태에서 벗어나고 영적으로 더욱 성숙할 수 있겠지요. 이미 이런 비판은 성공회 내부에서 오래 전에(머튼 신부님의 비판 훨씬 이전에) 나왔고 영적 쇄신의 길을 걸어왔습니다. 한편 머튼 신부님은 로마 가톨릭의 성모 마리아론과 같은 문제가 많던 로마 가톨릭 교리에 대해서는 침묵하시거나 오히려 당신의 신앙적 성향 속에서 높이 옹호하셨던 분입니다. 앞서 제 대신 질문하신 분처럼 머튼 신부님도 그 시대적인 제약 속에서 자유롭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제가 이 홈페이지를 통해서 답변하는 내용은 성공회 신학의 일반이라기 보다는 제 나름대로 성공회를 통해서 그리스도교 신앙의 여정을 참여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느끼는 행복을 말한 것이라고 보아주십시오. 저야 제 답변이 성공회 신학의 핵심에 가깝다고 보고 이렇게 답변하고 있지만, 그렇지 않다고 손들 분들도 많을테니까요. 어떤 조직이나 신학이든지 주님의 발치에서 보면 보잘것없는 것이겠지요. 그러니 더욱 중용과 겸손이라는 덕목이 그리스도인들에게 필요한 것인지 모릅니다. 다시 돌아와 현실의 성공회라는 교단에서는 이를 실현해 나가려는 신앙인의 노력이 있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정신과 신학을 가졌다 해도 의미가 없을 것입니다.

이 정도면 될까요?

주님 안에서 하나된 형제 주낙현 드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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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skhfaq

5월 28, 2001 , 시간: 2:19 오후

Uncategorized에 게시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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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개의 답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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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지나가다 몇자 덫붙여 봅니다.
    토마스 머튼 신부님의 경우, 영국 성공회에 대한 비판은 비교적 젊은 시절에 이루어진 내용입니다. 그분이 만년에 이르러서는 불교등 타종교와도 긴밀한 관계를 유지한 것으로 보아, 아마도 만년의 성공회에 대한 그분의 태도는 많이 달라져 있었으리라 확신합니다.
    만일 만년까지 그런 비판적 시각만 가지고 있었다면, 그분이 보였단 관상의 열매들은 참된 것이 아니었겠지요. 성공회는 영국국교회만 가지고 평가할 수 없으며, 그 당시 1930년대라는 시대적 배경, 그리고 미국 컬럼비아 대학으로 유학을 오는 자유로운 학풍추구를 보건대, 그당시토마스 머튼은 무척 비판적인 젊은이었으리라 여겨집니다. 영국국교회가 성공회 모두를 대표하지 않듯이, 토마스 머튼의 젊은 날의 비판적 견해가 그의 평생을 지배했다고 보여지지도 않습니다. 게다가 같은 이유로, 토마스 머튼은 100% 옳다고 여겨지지도 않구요. 이 점에 있어서 성공회 신학은 장점이 있습니다. 성공회는 “우리도 틀릴 수 있습니다.”라고 말하는 교회니까요.

    지나가다

    8월 17, 2008 at 12:53 오후

  2. 지나가다 / 옳은 지적입니다. 또한 그분이 보지 못한 – 젊은 혈기때문에? 혹은 당시 영국 성공회의 패착들 때문에? – 성공회의 중요한 전통을 잘 지적해 주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성공회는 “우리는 틀릴 수 있습니다”라고 말하는 교회입니다.

    fr.joo

    9월 12, 2008 at 4:50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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