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회 질문 답변

an Korean Anglican FAQ blog

말씀보존 학회? 천주교에도 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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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찬미 예수

좋은 질문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나그네. wrote :

부제님은 말씀 보존 학회에 대해서 어찌 생각하십니까? 그들은 흠정역만을 진짜 성경이라 여기며, 다른 성경 번역본들은 사탄의 성경이라 무시합니다. 그들의 주장에 대해서 성공회의 입장은 어떠 합니까?

성서의 번역사는 매우 장구합니다. 그리고 아다시피 성서의 원본이란게 없어 여러 사본들을 구성해서 성서의 텍스트를 정하고 이에 따라 번역합니다. 당연히 사본 연구가 다양하고 이에 따른 텍스트 정하는 일도 복잡하기 그지없습니다. 게다가 그 번역의 역사는 또한 장구합니다. 예를 들어 최근 대한성서공회가 펴낸 [표준새번역] 성서의 경우 구약에는 독일성서공회에서 펴낸 <비블리카 헤브라이카 슈투트가른텐시아>(1967/77)의 히브리어 마소라 본문을, 신약성서의 경우는 세계성서공회연합회의 <그리스어 신약전서>(제 3판 1983년)을 대본으로 번역했지요. 또한 이 텍스트를 다른 언어로 번역하는 과정은 매우 어려운 작업입니다. 예를 들어 히브리성서의 그리스어번역인 70인역(셉투아진타)의 경우를 현대 본문 연구의 성과에서 보면 오역이 눈에 잡히기도 합니다. 이처럼 성서의 번역은 매우 어렵습니다.

이런 처지에 약 400여년 전의 성서, 그것도 영어로 “번역된” 성서만을 오류 없는 성서라고 말하는 것은 무리가 있습니다. 흠정역성서(King James Version – 이는 미국식 명칭이구요)은 영국종교개혁의 산물입니다. 그리고 그 공식명칭은 <공인성서>(Authorized Version of the Bible)이지요. 1611년에 초판이 나와서 영문학에도 깊은 영향을 끼친 훌륭한 번역으로 정평이 나있습니다. 하지만 400여년의 성서 원어 사본 연구를 무시할 만한 성서 번역인지에 대해서는 의문스럽습니다. 게다가 그 말 한마디 한마디를 따진다면야 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각설하고 이런 말씀보존학회의 주장은 한국개신교의 잘못된 성서축자주의의 또다른 얼굴이라고 생각합니다. 성서에 대한 문학비평적인 접근 혹은 역사적 접근과 같은 다양한 접근 방식을 무시하고 글자에만 얽매여 교리를 구성하는 일부 근본주의적인 성서관에서 생겨난 아류라고나 할까요? 개인적으로 그런 생각이 드는군요. 게다가 이 단체에서는 장로교의 칼빈주의에 대해서도 극렬히 비판하는데 이 또한 보수적인 한국 장로교 일부의 지나친 칼빈주의적 교리, 특히 5대교리(TULIP)의 지나친 문자적 해석에 대한 반대급부로 읽힙니다. 극단은 그 안에서 똑같은 논리와 모양의 극단을 낳는 게 생리인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나그네. wrote :

그리고, 부제님은 천주교 신자도 구원이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뿐인 대속자요 구원자로 믿는 모든 사람은 하느님의 구원 아래 있다는 것이 그리스도교의 기본적인 가르침입니다. 이를 거부한다면 이른바 그리스도교적인 구원을 언급할 의미가 없겠지요. 로마 가톨릭의 경우 이러한 그리스도교적인 가르침 아래 있지요. 물론 성모 마리아의 문제와 연옥 교리와 같은 논쟁적인 교리가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성공회는 역사적으로 이런 문제에 대해서 “아디아포라”(하찮은 것, 부수적인 것)라는 감각으로 살폈습니다. 즉 구원에 필수적인 부분에서 동의한다면 “아디아포라”(부수적인 것)에 너무 집착하지는 말자는 주장이랄까요?

성공회는 이런 점에서 교회 일치의 네 가지 기준을 마련했는데요. 1) 구원에 필요한 모든 것을 담고 있는 성서, 2) 예수님께서 실제로 제정하신 성사, 즉 세례와 성찬례, 3) 역사적인 신앙고백인 니케아 신경과 사도신경, 4) 지역에 따라 역사적으로 적용된 주교직이 그것입니다. 이 부분에서 동의한다면 그 밖의 일은 좀더 깊은 대화 안에서 풀어나갈 일이지 구원의 여부를 놓고 따질 일이 아니라는 말이지요. 또 하느님의 구원 역사는 우주적이요 보편적일 터이므로, 그 깊은 구원계획을 쉽게 판단하는 것도 인간으로서는 무모한 일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우리 인간은 복음을 듣고 기뻐하며 이 구원의 복음을 선포하는 일에 힘써야지, 그리스도 안에 있는 다른 형제의 구원 여부를 두고 말한다는 것은 아쉬운 일이겠지요. 제가 잘 쓰는 표현대로라면 하느님의 뜻을 자신의 손바닥 안에 다 잡은 것처럼 해서는 안되겠다는 것이지요.

도움이 되셨길 바랍니다.

주님 안에서 하나된 형제 주낙현 요셉 부제 드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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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skhfaq

1월 23, 2001 , 시간: 12:39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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