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회 질문 답변

an Korean Anglican FAQ blog

미사, 성찬례에 대한 간단한 설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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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카엘님께서 남긴 내용]
부제님 안녕하세요.
오랬만에 글을 적습니다.
다름이 아니오라 저희 모임에서 발표를 해야 하는데 미사에 관한 내용입니다.
저희 성공회에서 드리는 거룩한 미사에 대한 의미와 개신교회에서 드리는 예배의 차이와 성서적 의미를 짧게 알고자 합니다. 말씀의 전례와 성찬의 전례로 드리는 천주교회나 성공회식의 미사와 개신교의 예배는 약간은 다른것 같습니다… 그 미사라는 말의 의미를 알고 싶습니다.. 부제님 강건하십시요..

그리스도의 형제된 성프란시스성당, 미카엘 드림

+ 주님의 평화,

아기 예수님의 탄생을 기다리는 대림절입니다. 설레는 마음으로 힘없고 천진한 아기로 오신 예수님을 찬양합니다.

먼저 답변이 늦은 점 대단히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좀더 생각을 해서 성실한 답변을 올린다고 미루다 보니, 답변은 고사하고 질문하신 분만 지치게 만들고 있군요. 대단히 죄송합니다.

성공회는 초대교회가 그랬던 것처럼 성찬례를 매우 중요하게 여깁니다. 성찬례 안에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죽음, 그리고 부활을 기념하기 때문입니다. 이 성찬례는 다양한 이름이 있습니다. 미카엘 형제께서 물으신 미사(Missa)와 감사제(Eucharist), 주의 만찬(Lord’s Supper), 그리고 거룩한 교제(Holy Communion) 등이 그리스도교 예배의 핵심인 성찬례의 다양한 이름들입니다.

먼저 ‘미사’라는 말에 대한 해명이 필요하겠군요. 사실 이 말은 그 뜻이 정확하지 않습니다. 다만 예배 말미에 외치는 “Ite, missa est”(이제 끝났습니다)라는 말에 비추어 파견의 의미를 갖지 않았나 추측합니다. 어떤 분들은 라틴어 mittere(파견하다)의 변형인 missio에서 나왔다고도 하지만 확실하지는 않습니다. 어떤 점에서 미사는 정체불명의 용어라는 말이지요. 하지만 성찬례(Eucarist)를 일컬어 약 4-5세기부터 ‘미사’라는 말을 쓰던 흔적이 있다고 합니다. 하여튼 미사라는 말은 그리스도교의 성찬예배에 대한 별칭이라고 하면 좋을 것입니다. 하지만 최근에는 이 용어를 잘 쓰지 않는 경향이 있습니다. 성공회는 더욱 그렇습니다만 아직 많이 쓰고 있는 현실이지요.

미사와 예배를 구별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앞서 말한대로 예배에 대한 그리 적절치 못한 별칭이 미사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핵심은 예배입니다. 예배는 구약성서와 신약성서에 다양한 근거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이 우주를 창조하신 하느님께 깊은 경의와 존경을 표하는 모든 행위를 말합니다. 예배는 모든 그리스도인의 의무라는 점에서 leiturgia라고도 합니다. 바로 예전/전례를 뜻하는 liturgy의 어원이지요. 즉 예배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하느님을 자신의 창조자요 주인으로 모시며 깊이 사랑하는 것을 표현하는 모든 행위라고 할까요? 이런 예배에 대한 우리 인간의 자세는 요한복음 4:24을 참조하실 수 있습니다. 아주 익숙한 구절입니다.

이렇게 보면 로마 가톨릭과 개신교의 예배가 형태상으로는 많은 차이가 있지만 그 핵심은 큰 차이가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다만 개신교는 16세기 종교개혁의 과정에서 로마 가톨릭의 중세적인 예배 전통을 거부하면서 매우 단순한 예배 형태를 취했습니다. 이들이 취한 예배의 모양은 매우 다양했습니다. 영국의 경우 로마 가톨릭의 미신적인 예배 행위를 제거하는 동시에 초대교회에서 발전되었던 예배 전통을 유지하고자 했습니다. 그러다보니 형태적으로는 로마 가톨릭과 흡사한 면이 많지요. 하지만 이것은 로마 가톨릭과 흡사한 것이 아니라 초대교회에서 발전된 예배에 되돌아가고자 한 결과라고 해야 옳습니다. 또한 루터교도 전통적인 예배 양식을 많이 받아들였지요. 이른바 개혁교회들은 좀더 급진적인 예배 개혁을 단행했지만, 역시 초대교회의 다양한 예배 전통에 기대고 있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성공회의 전통적인 아침기도(조도)양식과 개신교 예배(성찬례를 생략한)이 매우 흡사하다는 것입니다. 한번 기도서를 펼쳐놓고 비교해 보시지요. 이 상호간의ㅌ 영향사에 대한 연구도 있습니다. 다만 개신교가 말씀의 선포에만 집중한 나머지 성찬례에 대한 인식이 소홀했던 것은 아쉬운 일입니다. 하지만 요즘 들어서는 성찬례를 자주 거행하며 말씀과 성찬이라는 예배의 균형과 그 관계를 재정립하려는 시도가 자주 엿보입니다.

윌리암 템플 캔터베리 대주교는 “예배한다는 것은 하느님의 거룩함에 힘입어 양심을 되살리는 것이며, 하느님의 진리를 마음의 양식으로 삼는 것이다. 또한 하느님의 아름다움을 통해서 잡생각을 비우는 것이며, 하느님의 사랑에 마음을 개방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하느님의 뜻에 나의 의지를 바치는 것이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이 말에 성실한 그리스도인인지를 항상 되물으며 성찰했으면 합니다.

도움이 되셨길 바라며.

그리스도의 교제(communion) 안에 있는 주낙현 요셉 부제 드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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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skhfaq

12월 5, 2000 , 시간: 1:16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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